[빌뱅이언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 사는 빌뱅이 언덕길에 들어서서 온 마음을 달래고 추스르는 동안 몇 뼘의 생각은 자라난 것 같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의 소리와, 냄새, 작은 움직임들 그것들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왜 하필 이 언덕에서 수많은 가르침들을 배우게 된 건지 새삼 알 것도 같다.

 

 

선생이 이야기하는 가르침은 한 번도 그 전모가 훤히 드러나는 법이 없는 바람의 풍향 같은 것이다. 아주 가깝고도 세밀하며 조화로운 관계의 틈들을 조망하도록 타이를 뿐이고 스스로 일깨우도록 일러주는 자연의 가르침과 닮아 있다. 그러니 그의 삶의 결들을 다 헤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주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헤는 일처럼 수많은 역사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차마 아름답다라는 단어로 귀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삶의 무늬는 촘촘하고 아주 아름답지만 이러기 위해 스스로 엄격했던 삶의 하루만을 돌아보아도 참으로 먹먹해지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온몸으로 실험하고 실천하면서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삶을 사는 이의 길은 얼마나 고독한 것이었겠는가. 어찌 이리도 왜곡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몇 번이고 그의 작은 언덕길을 오르내리게 하는 이유였다.

 

 

 

권정생 선생은 마치 그가 평생 섬겨온 예수처럼 가난에 활짝 열려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사랑과 용서가 한가득인 마음을 다스리며 내 밖의 현실과 부딪히고, 내 안의 반성과 성찰이라는 싸움과 평생을 투쟁하면서 살았다. 예수가 결국 자신을 넘어선 또 다른 를 낳았듯이 권정생 선생이 살아온 발자취 또한 진정한 구도자의 삶, 오롯이 일 수 있는 생각하는 본질적 인간을 낳았음에 틀림없다. 언제나 성찰하고 자연의 생명을 아끼며, 이름 없는 것에도 기꺼이 사랑을 쏟는, 그러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을 행복한 마음으로 부리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정말 그것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이타의 습관이 몸에 밴 덕분인지 맨 마지막의 자리에서 꼴찌라는 자유의 이름으로 누리고 기어코 가장 낮은 곳의 세상을 사셨다. 그곳에 남아서 풍성한 터를 일구고 가난은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라는 말의 융숭한 깊이를 다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로 깊고 넓게 펼쳐갔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소외의 열매만을 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맑고 풋풋한 언어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러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의 철학과 인생관이 곧 자연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이를 닮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참으로 향기로운 감염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무엇이든 차고 넘치며 화려하고 획일화된 규범 속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폭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날것 그대로, 유아 상태인 순수함, 때로 정밀하면서도 예리한 암시와 성토, 그의 내면을 엿보는 내내 생생한 자취는 한결같다.

 

 

 

 

또한 이 책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상상이라는 가공의 세계를 증폭시키고 무한인 황홀경을 맛보게 해주는 큰 기쁨이다. 가난의 시, 천진난만한 눈으로 보는 세상, 자기만의 놀이에 빠진 무아지경의 순수함 같은 것들은 선생이 왜 아이들에게 주목하고 이들에게서 진정한 신의 선물을 목도하심인지 알 수 있다. 자연에 마음껏 뛰놀며 상상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세계관은 곧 예술의 본질이기도 해서 참 된 순수함의 결정체를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는 또 그가 펴낸 수많은 동화와 시, 산문들이 왜 그렇게 슬프고 아름다웠는지 그 뿌리가 되었던 사건들의 고백이 이어진다. 가끔 그가 사는 작은 언덕, 손바닥만 한 방, 소박한 밥상을 떠올리면 아이와 이웃을 사랑하는 그였더라도 슬픔을 채워주기는 그 어떤 것이기도 힘들었겠구나 하는 이해가 들었다. 그에게 가난은 평생 자발적 가난자이게 한 수많은 사연과 사건이 있어서였고,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자이기를 기꺼이 꿈꾸게 한 마음의 부채가 있어서였다. 그를 결코 떠나지 않을 한 많은 불행과 그들이 있어서였기 때문에. 상실의 땅에서 매일 입고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웃들이 있는 한 그의 번민은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의 소유하지 않은 남루한 그에게서는 세상 그 어떤 이에게서도 나지 않는 품위와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흐른다.

 

 

그가 사는 언덕 위에도 어김없이 봄이 되면 풀씨가 날아다니고 빛 좋은 꽃과 열매들이 맺힐 것이지만 자연의 이러한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수많은 눈물과 소외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선생의 삶은 말해주고 있다. 고독하지만 살아가야 하는 이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되 변화를 위한 실천적 행동을 해야 함을 상기하라고 가르친다. 그의 소박한 죽음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정확히 인지시켜주는 강렬한 실천이었다.

 

 

 

 

문득 어김없이 시간이 되면 울려 퍼지던 교회의 은은한 종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궁핍의 언덕, 소중하고도 푸른 꿈이 잉태되는 예술의 방, 빌뱅이 언덕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진심의 기도를 올리던 한 가난한 종지기의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가만히 꿈꿔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