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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어딘지 모를 우울의 기운들이 모르핀을 맞은 듯 정지된 고통의 무아로 내몰거나, 모든 감각들이 오래 날뛰고 비틀어지다 못해 더 이상 통증이 아닌 듯 침잠의 시간으로 천천히 물들일 때, 그럴 때에 우리는 생의 이면을 맛보는 뜻밖의 풍경과 맞닥뜨린다벗어나려 할수록 몸부림은 우스꽝스러워지고 남들에게 동정이나 살 수 있으면 그나마도 다행인 일일우울은 그냥 그 무엇도 아닐 비루한 일들을 하게 하는시간을 버리는 듯 그저 버텨낼 뿐인 고됨만을 겪게 해주지 않는가. 단언컨대 이런 무참한 때의 위로란 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차라리 없다라고 믿는편이 다른 면에서의 가능한 위로가 아닐까? 
만약 누군가로 부터 건네 받은 한 잔의 커피가 마음을 치유해준 약이 됐다면 그것은 그나마도 위로가 가능한 층위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의 층위 중 비교적 높은 층위에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만약 가장 낮은 층에서였다면, 치유란 겨우 시간이 약이 될 수 있다말 뿐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고통을 더는 일인지 뚜렷한 근거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무뎌지게 하는 각성제 역할쯤은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사람이 살면서 이런 최악의 시간을 맞이하고 조금씩 무뎌져갈 때 이럴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여러 위로의 길들을 모색해보는 것이 좋다. 보통 이런 때의 위로라면 향이 좋은 한 잔의 커피이거나, 누군가의 작은 어깨를 의지하는 일일 수 있고, 눈물을 쏟게 해준 감동의 영화 한 편이 될 수 있다. 겨우 이 정도의 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 의외이긴 하다. 어딘가 좀 싱겁고 낭만적인 데가 있으며, 들인 일보다 훨씬 더 큰 힘이 되주는 이 작은 공력이란 것. 위로가 되는 순간 만큼은 인간이 조금 더 성장해 가는 지점이 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커피 한잔 따위의 위로를 처방전으로 알고 의지를 다지는 일도 살아가는 데 깊이를 더하는 소소함일 것이다.


볕이 적당하게 내리 쬐는 창이 넓은 방에 앉아서 평소 읽고 싶던 책을 읽게 되는 날에도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날이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제 나름의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내가 하는 처방전이라면 주로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하는 것으로 기분을 어르는 편이기는 한데 잠을 자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우습게 여긴 적은 없지만, 한 번도 먹는 행위로 하여금 극복해보려 한 일은 없었다. 예전의 나를 돌아보면 적당의 음식을 먹어서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이었고, 특히 먹는데 돈 쓰는 것을 지독히 아까워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던가 먹는 게 남는 것따위의 말을 듣는 것을 질색했고, 비웃을만큼 조롱해대는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면서 편식을 하는 습관이 크게 지적 받을 만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뭐든지 같이 먹거나 같이 소비하고, 같이 노는 문화에 적응 하면서부터는 급속도로 내 방식들의 여러 단점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 역시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맛집을 쫓아다니거나 양송이와 치즈가 듬뿍 들은 한 접시의 스프에 열광 할 줄 알게 되었다. 물론 영혼의 맛같은 깊은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 애석한 일이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섭생의 주제를 인지했다는 일로도 다행인 일이다. 먹는 행위를 우습게 아는 인간처럼 우스운 인간도 없다는 것을 겨우 알게 된 셈이다.

신세계를 알게 된 내 값싼 입이, 헛된 앎이 아닌 걸 보상해주듯 이 책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 전하는 그들만의 소울푸드가 가득하다. 각각의 방에 초대되는 근사한 기분은 내내 설레이게 한다.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만큼의 좋은 음식 냄새가 군침을 돌게 하고 원기를 북돋아 주는 용기를 조금씩 얹어 준다. 저마다의 삶의 허기를 채우는 맛이 내가 먹어 본 그 평범한 밥상과 다르지 않음에 위로가 되는 것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호젓하게 단절된 나만의 요리보다는 모두가 어울어져서 같은 음식을 먹는 유대의 식탁이 훨씬 맛있어 보이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익은 직접 담근 엄마표 된장국, 정직한 맛이 일품인 친구의 콘과자, 청춘의 모든 것이었을 빨계떡, 달콤쌉싸름한 와인 한모금,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이 보태져 그 맛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그윽한 향과 훌륭한 맛의 기대를 한껏 북돋는다. 음식이 왜 철학이 되고 신비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리는지 숭고한 순간들을 맛보는 것이 참 특별하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안에는 천재가 살고 있다. 그는 내게 먹는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라고 한다.’ 달리가 자신의 천재적 감각이 음식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니 조금은 의외이지 않는가. 미감각을 자극 당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감각이 입에서 시작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맛의 신경을 거쳐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칠거라는 믿음은 그의 음식에 대한 사랑이 왜 신성시되고 집착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그에게 요리는 감각을 일깨우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예술로 향하는 통로이자 도구였던 것이다
<소울 푸드>에서
모든 작가들의 영혼을 울린 그 지점에 어김없이 음식이 등장한 이유도 어쩌면 우리가 필연적으로 만나는 관문 마다 허기를 채우는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거라는 생각이 든다. 헛헛한 공허의 기분을 미감에 퍼지는 기운으로 감각을 되찾는 일인 것이다. 울거나, 화를 내거나, 자학하거나, 운동 하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일은 모두 채우려는 노력이다. 그 중 가장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일은 역시 먹는 것일 것이다. 무언가를 버리는 행위 보다는 역시 물리적인 것으로 채우는 일이 확실한 채움의 방점을 세우는 일이기는 하다. 이 책은 각자의 특별한 맛만을 전해주는 것 뿐인데도 어딘가 있을 내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일을 근사한 호기심으로 채근하게 한다. 

머지않아 나만의 맛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입안에 군침이 가득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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