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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그네이셔스의 뚱뚱한 풍체만큼이나 크고 웅장한 에드벌룬이 이 책의 시공간에서 시종일관 둥둥 떠다닌다. 그것을 저 하늘 높이 날아 올리는 힘은 그의 터질것 같은 뱃속 가스처럼 내내 가벼운 웃음을 유발하는 기운들, 그리고 도리질을 계속하게 만드는 에너지로 가능해 보인다. 읽는 내내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분명 큰 매력으로 작용하지만 그 못지 않게 조금만 더 가스가 찼다가는 펑하고 터져버리거나 보지 못할 먼 곳으로 날아갈것 같은, 과잉의 감정이 아쉬운 소설이다.
만약 이그네이셔스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익살스러움을 넘어서 말도 안되는 상황을 제 의지와 잣대로 잘도 빠져나가는 밉상,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꾀돌이 캐릭터. 그러나 이 책을 덮었을 때는 분명 여기 나온 바보들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꺼이 팬클럽 회장이라도 하고 싶은 생활의 활력과 에너지를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무모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이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만큼 끊임없이 사건을 만드는 나대기 사고뭉치 위인들은 이렇게나 오래 누군가에게 지켜보일 수 있다는 것만해도 소임을 다하는 듯 하다. 어쨌든 이 책의 캐릭터의 힘은 꽤나 크고 중요한 사건과 같다.  
그러나 만약 현실의 이그네이셔스를 상상해 본다면 그다지 호락호락한 삶을 살아내지는 않았을 것같다. 소설에 나오는 일보다 더 황당하고 어려운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곁에서 그의 개성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대못하나쯤 박혀 폐인이 되거나 부적응자로 의기소침해 있을 게 뻔하다. 그런데 다행이게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현실 속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아주 독특한 성정을 지닌 이들이다. 다시 말하면 이그네이셔스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어딘가 모자라지 않으면 과잉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이들을 보고 평범을 자부하던 우리가 대단한 우월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보면 개성없이 점잖만 빼고 살아가는 우리의 가식을 반성(?)하게 만든다. 바보같은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의 풍자인지, 아니면 단순히 한 마을의 독특한 전경을 마음껏 상상하고 싶었는지 작가의 의도를 곰곰히 탐구하게 된다. 어쨌거나 이런 이들과 좌충우돌 이야기를 뚫고 지나가는 여정은, 한 놈만 패는 과격함과 안타까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편한 여행과 같다. 차라리 모두가 한 대씩 때리고 얻어 맞고 시작하는 모든 경계가 사라진 상태, 망가지고 우스꽝스런 루저들과의 동행길은 참으로 유쾌하다.


 
이 책이 온마음을 다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는 ‘괴짜’를 인정해 주는 사회가 아닐까로 읽었다. 어느 사회고 괴짜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좁은 통로라는 것은 그가 내보이는 독특한 재능과 성격, 이것의 발현이 사회적 업적을 이룰만한 큰 성과를 올렸을 때나 활짝 열리는 법이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안정을 추구한다는데 괴짜들이 사회적 통념을 깨거나 이들의 기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인 언행을 보면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게 당연하다. 결국 괴짜가 살아남는 법은 사회적 업적이라는 비례와 상충되어 높은 폭발력을 가졌을 때 긍정의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됐을 때의 상황은 그가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고 온화한 성품을 지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극대화된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럴 때 ‘괴짜’를 괴물이 아닌, 매력있는 '비범한 자'로 읽을 수 있게 된다. 잘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 모차르트, 아이슈타인이라던가 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특별히 기억하는 것도 어쩌면 이들이 괴짜였기 때문은 아닐까.
어쨌거나 성공한 괴짜는 화제를 몰고, 이그네이셔스는 짜증을 몰고온다. 여기 이그네이셔스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요건이라고는 그가 딴 석사 학위뿐이고, 정작 제대로 된 직업하나 없어 일이나 벌리고 다니는 가여운 청년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괴짜적 요소들, 즉 사회를 비꼬고 변혁을 꿈꾸는 작은 외침들이 사람들에게 어필되기는 커녕 사고뭉치에 짓궂은 백수로 읽혀 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씁쓸하기 그지 없다.  

이그네이셔스가 결국 바람하던 변혁을 크게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회비판적인 글과 생각들은 적잖이 놀랍다. 그것은 충분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었음에 틀림없고 작은 불씨가 되었음을 믿게 해준다. 사람들은 그의 비정상적인 외모를 우스꽝스러워 하고, 비상식적인 언행을 깔보지만 사실 이그네이셔스의 생각은 그 나름의 상식적인 선 안에 있다. 말하자면 세상의 고정관념 안에 있기를 거부한 좀 더 확장된 상식 선의 잣대로 바라본 시선이라는 것이다. 부조리를 못견뎌한 것 뿐이며 다만 세상이 좀 더 상식적으로 바뀌었으면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배워온 지식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아마 그를 더 괴팍하게 내몰고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를 보면 현대사회가 얼마나 괴짜들에게 살아가기 힘든 곳인가를 체감하게 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야 말로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는 바보 이그네이셔스에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시종일관 사람냄새 나는 미국 한 마을의 정겨운 냄새와 수다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유의 언어가 싸구려 맥주집의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떠들썩하고 맥주 냄새와 엉켜서 뉴올리언스라는 정겨운 마을의 이미지를 만든다. 주인공 개인이 뿜어 내지 못하는 전체적 인상과 풍광을 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느껴진다. 사소하게 비꼬고 웃어 넘겨버릴 작은 이야기에도 이들에게 풍겨나오는 정신, 뿌리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고장, 카트리나 재앙이 휩쓸고 간 곳으로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곳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의 이미지가 책으로 말미암아 왜 재즈의 고장이라고 하는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티격태격 싸우고 바보들 아닌가 할 정도로 어리석어 보이지만 자신이 처한 삶의 애환을 노래로 치환시킬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소울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소소한 사건들과 이그네이셔스의 독특한 벨탄샤웅이 충돌하는 싸움은 이 고장이기에 거대하고 멋진 에드벌룬을 띄우는 일로 승화된다. 그것은 작은 바람이라도 일으키고자 한 바보들의 작은 입김들로 모아진 멋진 비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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