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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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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되고 지난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화려하게 치장을 하거나 지나칠 정도의 웃음기어린 표정에 행복을 가장한 사람을 본 일이 있다. 그녀는 오랜 세월 가난과, 아픈 가족들의 병수발, 내적 학대를 감내하면서 정작 가까운 누구에게도 표현한 일 없는 완벽한 라이어였다.  불행을 호소하며 동정을 구하는 대신 행복의 도가니에 자신을 넣고, 실재하지 않은 연기를 해내는 삶, 그녀는 마치 희극을 가장한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살았다. 
뒤늦은 고백으로 그녀의 진짜 모습이 공개 되었을 때, 조롱과 배신감 보다 경의를 표하게 되는 것은 그녀의 삶이 진정 위로가 필요한 시점임을 저절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불행한 처지였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순간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이고 싶은 그 소박한 꿈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여기 <검정도 색깔이다>에 등장하는 여인의 삶 고백 역시 끝없이 펼쳐지는 불행의 땅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삶이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호기롭게 풍파를 이겨내는 당찬 목소리가 온 세상을 검게 물들이려는듯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녀는 참 당당했다. 마음껏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온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사명이라도 받은 건지 물질을 멈추지 않는다. 불리한 상황에 빠져서도 그녀는 오히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고, 수많은 남자들에 이용당하며 고생을 밥먹듯 하면서도 행복을 찾아 흙묻은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랑스런 여인이다. 자신의 한심스런 처지를 가장 낮은 수위까지 내려와 비관하는 태도였다면 그녀의 삶은 일찌감치 그 심지를 다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른 흑인을 찾아 헤매고 자신과 아이들이 누울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입에 들어갈 식량을 구하며, 부지런한 삶을 영위해 나갈 줄 아는 자주적인 여성이다. 물론 그녀가 하는 매춘이란 당위의 기로에서 선뜻 이해를 하기란 망설여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삶이 그렇게 흘러가더라 하는 체념어린 시선으로 참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수가 없다. 삶은 언제나 간단한 도덕적 신념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 세상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매춘의 기로에 선 당시의 기억을 그녀는 '천국으로 통하는 치욕스런 비밀의 문'이었다고 고백한다. 역겨운 성체의 빵을 얻으려 그녀는 선을 넘게 되었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된다. 이 사소한 출발로 그녀의 삶은 엄청난 회오리 바람을 안고 정처없이 유랑하는 방랑자의 처지가 된다.  애초 빌을 사랑해 긴 여정을 떠나온 연유도 생각해 보면 참 단순하다. 순수한 사랑, 열정 이 하나뿐이었다는 것이 황당할 정도로 순수하며 순백색을 띤다. 흑과 백, 사랑과 증오, 불합리함과 투쟁, 구속과 자유. 그녀는 아이들과 빌을 비롯해 수많은 남자들의 입으로 들어간 빵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과, 살, 눈물로 이루어진 성체를 구하러 떠난다.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매춘의 시선과 불합리한 처사를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육체는 성스러운 빵을 위한 터전, 그녀만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만의 우주에 돌을 던질 수 없다.   

삶의 생채기를 주었던 백인들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검정을 찾아 헤매는 삶은 참 이색적이다. 새로운 지옥을 찾아서, 유목민의 피를 확인하는 삶이기라도 하듯 떠돌고 내쫒기는 삶을 반복한다. 여기도 저기도 지옥이긴 매한가지, 돌아보면 애정 줄 일 없이 무심히도 불행은 지나가고 또 어느새 쫓아 버린 줄 알았던게 온몸을 덮치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다. 좀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떠나는 그녀의 발치에는 항상 검은 그림자가 멤돌았다. 그러나 그 가녀린 체구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로막고 서있는 불행의 검정을 그녀는 '사랑'하는지 모른다. 그것은 그녀의 운명이었을까. 한사코 투쟁하며 쟁취하려 한 것이 이런 암흑 속의 한 줄기의 빛처럼 사소한 것이었다면 이 얼마나 가련한 삶인지. 생각해보면 불행의 씨앗인 블랙은 그녀를 더욱 영롱하게 빛나게 해준다. 왜냐하면 그녀는 블랙안에서 가장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녀를 좌절하게 만든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과도한 세상의 시선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내뱉는 삶의 자취는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그저 지나간 날의 한 컷 한 컷 슬라이드로 흘려보내는 그 무심한 태도라는게 놀랍다. 그 무대에 선 여인은 '당신들이 들어주지 않아도 나의 투쟁은 계속 된다'라는 듯이 언제나 당당한 여운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결국 그녀는 끊임없이 떠도는 인생,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흘러보낸 인생사다.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면 안위가 보장되더라도 가차없이 떠나는 당당하고 도도한 자신만의 신념이 살아있다. 이 순수한 매력때문에 기꺼이 더럽고 추악한 어둠으로 기어들어가는 삶을 반복하더라도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평범한 삶을 거부한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평범함에 '자유'가 결핍된 게 아닌가하는 반성이 든다. 그녀는 단지 가장 본인답게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우리 안에 진짜 '나'가 있을까?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의 떠도는 별은 영원히 빛날 것처럼 떠있다. 그녀는 세상의 온 검정을 가졌고 그녀의 혁명 또한 조용한 바람이 되어서 우주를 떠돌 것 같다. 검정은 거대한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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