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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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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신예작가 베르나르 키리니의 <육식이야기>는 총 14편의 단편을 통해 환상의 진수를 넘나들며 삶의 파노라마를 펼치는 독특한 시선의 소설집이다. 보물섬이 새겨진 지도를 발견하듯 사뭇 진지하고 기이한 세계를 향한 경쾌한 호기심들로 시종일관 전진하며 증폭된다.  


작가가 본 세상은 어떤 것일까? 일상에서 주목하는 시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로 만들 때의 시선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내내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한참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실타래에 감겨 꼼짝없이 눈만 끔뻑 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치밀하고 대단한 정교함을 구사하지 않는데도 완곡하게 짜놓은 미로에 덩그라니 놓인 기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몇 번이고 장애물을 넘다가 의심의 시선을 과도하게 던지고 난 후에라야 확 풀리면서 작가의 진면모를 맞딱드리게 된다. 작가가 놓은 덫에 보기 좋게 넘어지게 되었지만 내가 정말이지 내내 즐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이 용수철같은 이야기에 누구든 빠져들수 밖에 없다. 

과연 단편마다의 제목만 놓고서도 이 소재로 어떻게 여기까지의 상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든다. 이야기마다의 개성이 차고 넘치는 것, 작가가 상상해낸 진로가 궁금해지고 그 예상을 정확히 빗나간다는 것은 역시 대단한 저력이 아닐 수 없다. 상상력의 기이함, 낯섬이 주는 해방감 베르나르 키리니라는 이름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밑천이 될터다. 아주 사소한 소재였거나,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되지만 모든 이야기에서 사건은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빼놓지 않고 선사한다. 

각각 단편들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지만 작가가 주목하고 발현하는 요소들은 통일감을 준다. 가령, 각 에피소드마다 환상성과 현실을 정대비로 짜놓은 것이 그것이다. 완연하게 비현실적인 구성만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이야기가 아주 일상적인 평범함 안에서 출발하여 이윽고 기이한 현상을 그럴듯하게 꾸며 놓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평범함 속에 미처 알아내지 못한 수많은 내적 의미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이한 현상들은 소설안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무수한 가능성을 열어 두는 일종의 장치였는데 그것이 언제 톡하고 터졌는지 눈치챌 수가 없다. <육식이야기>에 나오는 환상성은 실현의 유무를 놓고 따지기 보다는 열린 현실의 독특한 방식으로 보는 도구로 보는게 좋을 것이다. 현실이 미처 목도하지 못한 우리 안의 보다 더한 진실일 수도 있음을 극명한 방법으로 실현시키는 셈이다. 만약 환상에 치우치거나 했다면 이야기의 진중함이 현실감을 벗어나 조금은 이질감을 느끼게 했겠지만 현실에서의 진지함 즉 평범한 시선이 무게를 잡고 양 진영을 골고루 안배되었기 때문에 환상의 미가 일상 안에서 돋보이게 된다.

<육식이야기>가 펼쳐 보이는 또다른 매력은 바로 명확한 이미지로 떠올르는 상징들이 암호처럼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각각 단편들에서 느껴지는 요란한 색, 냄새,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하게 만드는 강렬한 표현들이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는 평범한 삶 안에서 불씨가 갑자기 피어오르는 자극제로서 일종의 증폭제 역할의 장치로 요소요소마다 피어오른다. 이것들의 폭발과 함께 단편마다의 강렬한 색이 퍼지고, 냄새가 진동하고, 소리가 귀를 멤돌기 시작한다. 분명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평범함 속의 환상성에 대한 기묘한 여운을 한껏 증폭시키는 또다른 매력이다. 
 

어느 단편이건 그가 보이는 세계는 마치 과거 속을 여행하는 듯 진중하고 정교하게 짜놓은 역사 속을 헤매이게 한다. 작품 하나하나에 탄탄한 스토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오랜 취재와 고민을 한 흔적으로, 이야기는 보다 깊고 넓은 뿌리를 갖게 된다. 짧은 단편임에도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만큼 소설의 정통적인 맛을 느끼게 해주고 비현실 속의 또다른 리얼리티라는 풍미를 선사한다. 


이러한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말미암아 <육식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삶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작은 상상 놀이터에서 전해지는 건강한 기운을 우리는 기분좋은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펴서 여행하면 된다. 그가 안내하는 초대장 하나만 들고 마음껏 탐닉하면 또다른 세계가 보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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