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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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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세 번째로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그 때를 떠올리면 분노할 의욕도 뭣도 없었고 그냥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 나야? 두둑하지도 않은 내지갑은 왜 자꾸 사라져?’ 속절없이 마른하늘만 올려다보며 어이가 없군, 이랬었다. 다만 두가지 사실에 의아했는데 내가 쓰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있어 보이는 행색이 아니므로), 그리고 요즘도 소매치기가 명맥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어렸을 때 명절날 시골로 내려가는 만원 시외버스에서 가방 밑에 숨겨둔 여비를 칼로 그어 감쪽같이 쓰리해간 일. 당시는 카드 보다 현금을 많이 들고 다녔기에, 소매치기들이 도처에서 활개를 떨칠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것도 벌써 오래전 일이다.
    
나카무라후미노리의 <쓰리>를 읽고 나서야 그동안 잊혀진 소매치기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행위를 드러내거나 그렇지 않거나 범죄자라면 대부분 극명한 존재감을 갖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소매치기란 자들의 존재감이란 마치 '손'만 붕붕 떠있는 느낌이다.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마치 다른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에 갇힌 불행한 거미 한마리의 느낌. 꼼짝없이 그 구역에서 다른 거미들을 끌어 들이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하려는. 서서히 그 더러운 관계망 속을 허우적 거리며 오랫동안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가를 묵묵히 지켜 보았다. 

독자는 이내 주인공이 보이는 '손'의 유려함에 아찔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오랜 세월 연마되어온 기술이 그렇거니와, 사람들의 습관마저 한눈에 파악할만큼 노련한 눈썰미 또한 놀랍다. 그것은 마치 오십년간 한 일만 해온 장인의 훌륭한 솜씨로도 견줄 수 있을 만큼 예리한 것이고, 빛과 같은 속도감에는 박수까지 쳐댈 심경이다.

다시 소매치기란 존재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천하는 자들이 사는데, 소매치기에게 드는 생각은 어떤가. 폭격 수준으로 날려버리고픈 악당이 있는가 하면, 시궁창의 쥐처럼 덫이나 놓고 결코 더러운 손 묻혀가며 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같잖은 악당도 존재하는 법이다. 소매치기가 바로 이런 류는 아닐까. 재물을 훔친다는 건 목숨을 빼앗는 일에 비해 비교적 가벼워 보이니까. 작가가 말하려는 것도 어쩌면 우리 안에 이 작은 불편한 존재, 악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의 주머니 작은 구멍 하나쯤 넘나들며 야금야금 갉아먹는 쥐같은 존재. 이 하찮은 구멍을 들여다 보라고 덫을 놓은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소위 말하는 밑바닥 생의 인간류들이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발견한다. 아무리 아등바등 살아봐야 작은 구멍 하나만을 파괴할 뿐인, 그래서 그 몸부림마저 안타깝고 처연하게 느껴지는 삶. 결국 이들이 하는 노력이란 것도 그렇게 뿌리 내려준 누군가에게만 가능한 단어일지 모른다. 애초에 제거된 환경에서는 노력이란 것 마저도 선택일 뿐인 것. 빼앗기는데 너무도 익숙한 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와 윤리는 사치에 불과한 것. 그러니 힘들게 노력하는 삶이란 하면 손해인 영역 그런 셈이다. 그래 서로 속이고 죽이고 이용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 밖엔 모르는 거고, 벗어나고 싶은 작은 구멍에서조차 허덕이며 여기까지 온 거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온몸으로 항변하는 작은 구멍의 그들이 산다.

 
작은 구멍새라도 얇게 비치는 빛을 느낄 수 있다면 이들에게도 ‘희망’은 있는 것이다. 따뜻한 것을 따뜻하다고 느끼는 것, 그 느낌을 다른 이에게 체온으로 전달할 수 있는 손길. 그거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스스로 버려질 것을 원하는 ‘아이’의 선택은 그래서 참 아름답다. 어둠의 세계와 단절하는 손. 선택을 제안한 주인공은 진짜 어른이 된 셈이고, 아이는 다시 태어날 용기를 얻는다. 아이에게 품어진 온기를 목도했으므로,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용서’라는 단어를 품어 본다. 그리고 비로소 아이에게 두 팔 벌려 진짜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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