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품절


책 한 권을 버리기가 얻기보다 훨씬 힘겨울 때가 많다. 우리는 궁핍과 망각 때문에 책들과 계약을 맺고, 그것들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지난 삶에 대한 증인처럼 우리와 결속되어 있다.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우리는 축적의 환상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책을 읽을 때마다 정신적인 소득을 기입하듯 해와 달과 날을 기록하곤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첫장에 자기 이름을, 공책에 빌려갈 사람의 이름을 적고 난 연휴에야 책을 빌려주곤 한다. 공공도서관처럼 도장을 찍고 소유자의 카드를 꽂아놓은 책들도 본 적이 있다. 책을 잃어버리는 걸 달가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반지나 시계, 우산 따위를 잃는 편이, 다시는 읽지 않더라도 낯익은 제목만으로도 우리가 과거에 누렸던 감정을 일깨워주는책 한 권을 잃는 것보다 훨씬 낫다.-17쪽

애서가로서 우리는 친구들의 서가를 심심풀이로 염탐하곤 한다. 읽고 싶지만 수중에없는 책을 발견할까 해서, 또는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짐승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의 동료들은 혼자 응접실에 있게 되면 분명 책장 앞에 서성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18쪽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거의 진동이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철자들을 발음하곤 합니다. 책읽기란 완전한 침묵에 잠기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언제나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기가 악보를 연주하듯이 목소리는 읽는 행들을 연주합니다. 그리고 이런 읽기는 눈으로 읽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확신합니다. 단어와 문장들에서 음과 멜로디를 이끌어내는 거지요. -60쪽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는 훌륭한 그림이나 다름없어요. 작은 자음과 모음들에는 독자적인 리듬과 구성의 원리에 따라 쉼없이 만들어내는 형상과 선의 유희가 담겨 있지요. 그러니까 본문의 모양, 글자의 크기, 좌우상하의 여백, 종이의 질, 양끝이나 가운데에 매겨지는 쪽번호처럼 전체를 이루는 자잘한 모양새들을 어느 누구도 무시해선 안 됩니다. -61쪽

인간만이 책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82쪽

일이백년 또는 이천 년의 세월을 견뎌내는가 하면 모래 속에서도 살아남는 저 내구성 있는 물체와 인간의 관계는 결코 무해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옳다. 저 부드럽고 쉽게 소멸되지 않는 책이라는 사물은 인간과 숙명적으로 맺어져 있다고.-83쪽

나는 내가 어떤 책 한 권에라도 흥미를 느낄까봐. 그래서 그걸 집으로 가져가 점점 손쓸 겨를 없이 불어나는 책들의 거대한 식민지에 추가하고, 그 책들이 벽을 따라 쌓이고 복도로 넘쳐날까 봐 지레 겁이 났다.-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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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6-04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괜찮죠? ^^

토트 2006-06-04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아주 좋았어요. ^^

물만두 2006-06-04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토트 2006-06-0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안좋아할수는 없을거 같아요.^^

카페인중독 2006-10-2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동감 가는 말이에요...^^

토트 2006-10-2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았어요. 읽어보셨나요? ^^

카페인중독 2006-10-20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님 덕분에 보관함에 모셔져 있습니다...^^

토트 2006-10-20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