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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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록산 게이는 키가 190센티이고 가장 많이 나갔던 몸무게가 261킬로였다고 한다. 직접 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책 띠지에 실린 사진에는 얼굴만 나와 있는데 무척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전에 그녀의 책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었을 때는 그녀에 대해서 잘 몰랐다. 작가이고 문화평론가라는 직업과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 정도 알고 있었다. '헝거'를 통해 그녀를 많이 알게 된 거 같아 좋고 나와 동년배라 정이 간다. 그녀와 같은 일을 겪진 않았지만 다수 여성들처럼 나에게도 폭력의 경험이 있었다. 공유되지 못한 폭력의 역사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고백이 폭력의 역사를 공유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용기가 존경스럽다.


록산 게이는 열두 살에 엄청난 일을 경험했다. 이렇게만 알고 싶다. 그 일을 자세히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알아야 한다. 폭력 피해자의 경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세히 감각하고 지각해야 한다. 열두 살이라는 나이를 떠올려본다. 몸이 변하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사랑과 연애의 감정에 들어서는 때이다. 성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성장 시기에 그녀는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 상대는 자신이 사귄다고 믿었던 남자친구와 그의 무리들이었다. 열두 살 소녀에게 이 경험은 어떤 고통과 상처를 주었을까. 그 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상상이나 짐작만으로 헤아리기에는 한계가 크다. 피해자의 경험이 알려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낱낱이 내보인 그녀의 마음 중 일부는 피해자들의 역사가 공유되고 치유가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함을 말하기 위해서 아닐까?


록산 게이는 어린 시절부터 '공허감과 외로움의 동굴'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것이 인간이 가진 본연의 심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 느낌을 알아차린 것일 뿐이다. 그녀의 표현을 다른 말로 하면 '정서적 허기'이다. 육체적 허기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듯 정서적 허기 또한 그렇다. 육체적 허기를 채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듯이 정서적 허기 또한 채우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 육체적 허기는 음식으로 채우면 되지만 정서적 허기는 무엇으로 채울까? 정서적 교류 혹은 정서적 상호작용으로 채운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타인과의 정서적 교류를 필요로 한다. 그녀가 열두 살에 남자친구를 사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열두 살 소녀가 처음으로 사귀었던 남자친구와의 정서적 교류는 완전히 실패했다. 실패라는 말조차 과분하다. 감당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다. 소녀의 정서적 허기는 배가되고 증폭되었을 것이다. 자신을 돌보고 달래기에는 상처가 너무 컸고 또 어렸다.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음식을 먹는 것뿐이었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음식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정서적 허기마저 음식으로 채우며 자신의 몸을 '요새'로 만들었고 자기혐오에 빠진 채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거대한 몸의 여성으로 살면서 또 다른 고통과 상처도 겪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지나 결국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몸과 인생에 직면하며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하고 치유를 믿기 시작할 수 있었던 그녀의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나는 지성(知性)이 그녀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고통 받고 상처입어도 그녀의 지성은 죽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언어를 찾았고 글을 썼다. 자신의 몸을 이해했고, 다양한 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문제를 알았다. 인간의 지성이 어떤 힘을 발휘해야하는지 나는 록산 게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통을 해석하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지성이라면 반쪽짜리거나 쓸모없는 지성이다. 고통 없는 삶도 없고 상처 없는 사람도 없다. 치유가 가능하지 않은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녀의 고백이 던지는 메시지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이 벼리고 벼리며 썼을까. 온몸의 떨림으로 썼을 그녀의 고백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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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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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작가 재밌는 사람이네. 그의 소설이 읽고싶어졌다. 아이슬란드에선 책을 한권 이상 출간한 사람이 인구의 10%란다. 깜놀. 그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에 나도 끼고 싶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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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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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해, 글이 되게 하기 위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자세히 관찰해야 하는 걸까? 시시한 글감은 없다는 걸 배웠다. 정성스러운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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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의 글쓰기 수업
정여울 지음,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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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좀 오글거리는 감이 있지만 저자의 진정성이 느껴지고 도움이 된다. 글을 쓰는 데에 필요한 자질이나 노력할 부분 중에 ‘용기‘가 젤 어렵지 싶다. 자신을 드러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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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읽는 국악이야기
하응백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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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중에서도 노랫말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그것대로 재밌다. 놀량사거리와 사당패, 박귀희 명창 이야기가 젤 인상적였다. 별 4개 주고싶은데 오타가 많아 3개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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