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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ㅣ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책 읽을 시간을 '뽑아' 내기가 참 힘든 일주일이 지나갔다..
회식이니 직장 동료의 결혼이니 뭐니해서 연 사흘을 술자리를 가졌더니..
술에 취해 잠이 들었던 며칠간이라..
성석제의 '인간의 힘'을 무려 일주일 가까이 붙잡고 있었고..
주말을 맞이하여 한강의 새 소설을 보고..
바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쓰지 못한 리뷰가 열편 가까이 밀려 버렸는데..
그 중..
가장 추천하고픈 책이라 읽은 순서에 상관없이 먼저 소개를 해드리는 바이다..
'간서치(看書痴)'란 말이있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
1761년 스물한 살의 이덕무가 쓴 '간서치전'..
그 짧은 이야기를 보고 이 책의 저자인 안소영씨는(에로배우 아님 -_-)..
이덕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단다..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국사책에서 한번쯤은 보았을 이덕무란 이름..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덕무 청장관전서..
이덕무 청장관전서..
이 여덟 글자를 얼마나 기계적으로 달달 외우기만 했는지..
아직까지도 그 여덟자로만 필자의 뇌리속에 남아있던 사나이..
'청장(靑莊)'은 푸른 백로를 말한다..
청장은 고요히 물가에 살면서, 눈앞에 지나가는 고기를 필요한 만큼만 먹고사는 맑고 욕심 없는 새라고 한다..
그의 호처럼..
그도 그리 살고 싶었다 한다..
달리 누리는 것이 없어도 좋으니 그저 약간의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책 속의 글귀들로 머리와 가슴을 채우며 고요히 한자리에서 살고 싶었다고..
학창시절 그 뜻을 알았더라면..
그 여덟자를 그렇게 기계적으로 암기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단편적인 예지만..
이 나라의 교육은..
이래서 잘못 되었던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첫번째 이야기인 이덕무의 독서 습관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백탑에서 인연을 맺은 벗들과 스승들의 이야기..
청나라를 방문한 이야기와 규장각에서의 생활..
그리고 끝으로 그의 여생과 후손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다 좋지만..
그 중 첫번째 이야기는 많은 것을 반성하게끔 만드는 아름다운 이야기라 생각된다..
지금 책을 보고 있는 내 방을 한 번 둘러볼까..
혼자 자취하는 총각의 방이라..
그리 넓진 않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꾸며놓은 나만의 작지만 소중한 책장이 있고..
그 책들을 볼 수 있는 편한 의자와 침대가 있고..
초고속 인터넷을 장착한 컴퓨터에서는 잔잔한 음악도 흘러나오고..
책을 보다 목이 마르면..
술과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가 있고..
그러다 무료해지면..
80여개의 채널이 나오는 케이블 티비와..
VTR, DVD 심지어는..
플레이 스테이션 2까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것을 환히 밝히고 있는..
천장의 4개의 밝은 형광등..
하지만..
그 시절 이덕무에겐..
그 '빛'조차 여의치 못했다..
그래서..
아침일찍 동무들과 바깥에서 놀다가도..
자기의 방으로 빛이 들어올때 즈음이면..
집으로 달려들어가..
그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햇빛에 의지해..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책상을 옮겨가며 독서를 했다고 한다..
피의 반은 양반인 서자 출신인지라..
자신이 갈고닦은 학문을 토대로 큰 뜻을 펼치며..
생활을 유지할 녹을 받을 수 있는 관직으로의 출세길은 일찌기 막혀있었고..
그렇다고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 있는..
시쳇말로 반양반으로서 '가오' 떨어지는 일로 풀칠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항상 어려웠던 가정형편..
그 시절..
그는 책읽기의 이로움을 이렇게 써두고 자위를 했었나 보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유달리 추운 어느 해 겨울이었다고 전해진다..
얇은 홑이불 위에 한서(漢書)를 덮어 추위를 막고..
문틈새로 불어드는 바람을 논어(論語)로 막으며 흔들리는 등불을 달래며..
독서를 하였다는 이야기..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마치 따스하고 포근한 이불을 덮을 때처럼, 미덥고 든든한 벗이 함께 있을 때처럼.
그날 밤 나는 분명, 나를 위해 이불이 되어 준 한서의 몸놀림을 보았고, 제 몸으로 바람을 막아 보라는 논어의 목소리를 들었다.'
( p.30 )
그리고..
거듭되는 흉년에 온 식구가 오래도록 굶주려 있을 때..
아끼던 맹자(孟子) 한질을 돈 이백전과 바꾸어 양식을 얻었다..
그리고 나서 서글픈 마음에 찾아갔던 가까운 벗 유득공..
이덕무가 말하였다..
'자네, 오늘 내가 누구에게 밥을 얻어먹은 줄 아는가?'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유득공..
'글쎄, 맹자께서 양식을 잔뜩 갖다 주시더군. 그 동안 내가 당신의 글을 수도없이 읽어 주어 고마웠던 모양일세.'
그러자 유득공은 서글픈 표정을 감춘 채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면 나도 좌씨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먹어야겠습니다.
그래도 허물없을 만큼 그의 글을 꽤 읽었지요.'
그리고는 책장에서 '좌씨춘추(左氏春秋)'를 뽑아, 아이를 시켜 술을 사 오게하였다..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이덕무가 백탑(원각사지 십층석탑) 근처로 이사를 하면서 만났던 벗들..
서자 출신 답지않게 항상 온화한 미소와 밝은 성품을 가졌던 '발해고'를 지은 유득공..
직설적인 성격으로 싸가지 없다란 평은 받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벗을 잘 위하고..
특히 조선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탐구에 정열을 쏟았던 외로운 녹색 눈빛의..
'북학의'를 저술한 박제가..
이덕무의 처남이자 무인 출신인.. 훗날 '무예도보통지'를 공저한 백동수..
나이차는 많이나고 서자가 아닌 미래가 보장된 적자 출신이지만..
책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어린 천재 이서구..
그리고 이덕무의 스승들..
천문과 수학 및 거문고에도 능했던 담헌 홍대용..
당대를 대표하는 실학자..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
그렇게 백탑라인을 구성하며 평생을 교류하게 된다..
우린..
'규라인'이 어떠니 '유라인'이 어떠니에 낄낄 거리고..
에스라인과 브이라인만을 쫒아 가지만..
진정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그 때의..
백탑라인 멤버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서자로서의 태생적 한계에 부딪혀도 열심히 학문을 탐구하고..
책을 읽었던 그들은..
결국엔 청나라 까지 다녀오고..
또한 그곳에서 내 나라 조선의 부흥을 위해 고민하고..
정조로 인하여..
규장각이 세워졌을때..
초대 검서관으로서 드디어 관직에도 오르게 된다..
그후에도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며..
그렇게..
아름다운 여생을 보내며..
이 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더랬다..
할 이야기는 무척 많지만..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하면서..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책을 읽고 늦은 저녁을 사먹으러 집을 나와 분주한 거리로 향했다..
오늘이 어느 누구가 만든지도 모르는..
빼빼로 데이라지..
그래서 그런지..
형형색색의 선물용 빼빼로 색상만큼..
세상은 흥청망청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우린 책만 보는 바보로 살것인가..
아니면..
책도 보지 않는 천치로 살것인가..
난..
형광등 밝은 불빛 조차도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