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연애편지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 서간집 시리즈
김다은 엮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연애편지 이야기 한 번 해볼까..
 


Episode 1.


그땐 핸드폰이 없었다..

파발이나 봉화 조차도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난..

편지를 썼다..

 

1991년 이었다..

그때 난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첫사랑을 하고 있었다..

 

내 여자친구는 어떤 사장님의 늦둥이 딸인..

공주같은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걔네 부모님들이 얼마나 끔찍히 아꼈겠는가..

 

'아버지가 무척 엄하셔..'

 

이 한마디에 난 그 집에 전화를 못했다..

그건 이운재의 거미손같이 너무나 내겐 견고했던 것이었기에..

 

날 만나고 다니는것 조차도 탐탁찮게 여기셨나보다..

난 마마나 홍역 또는 볼거리등의 법정 전염병이 없었슴에도 불구하고..

 

16년이 지난 지금도 난..

전화로는 여자에게 말을 못한다..

성장기에 겪었던 그런 연유에서인가 보다..

 

그래서 난..

편지를 썼다..

 

주말에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적어도 월요일엔 편지를 보내야 했다..

몇월 몇일 몇시에 어디서 만나라고..

답장을 기다리는 몇일간의 설레임..

 

난..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런 낭만이 남아있던 시절에..

내 사춘기를 보냈었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 대판 싸운적이 있었더랬다..

내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내 가슴에 지퍼를 달아 열어 보일수도 없고..

학교를 파하고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아 난 또 편지를 썼다..

 

중학교때 시현이랑 친구와

어떻게 하면 글씨를 좀 더 멋지게 쓸까..

어떻게 하면 편지지를 더 예쁘게 접을까 따위를 연구했던 기억이 나는데..

 

막상 연애편지질(?)을 시작하고 나니..

중요한건 그런 외형이 아닌 진실된 내용이라는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우린 서로..

항상 모닝글로리에서 나온 노트용지 비슷한 Wrighting pad 에 연필로 편지를 쓰곤했다..

그걸 한장 다 채울려면 상당히 많은 분량의 글자가 들어가야했었는데..

 

암튼 그날도..

그 종이에 편지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딱 지금과 같은 시간대였다..

새벽이 밝아오고 씻고 학교를 가야하는 시점..

편지를 쓰느라 밤을 꼴딱 새버린 것이었고..

책상위에 쌓인 스물 다섯장의 편지들..

 

등교하는길에 우체통에 넣으려고 고이 접어 봉투에 넣으려는 순간..

규격봉투에 들어가지 않는 스물 다섯장의 편지..

그래서 도화지를 사와서 봉투를 만들었다..

그녀인지..우체부 아저씨인지.. 체신청인지..

괜히 미안한 마음에..

우표도 몇장 더 붙였던걸로 기억이 된다..

 

그땐 핸드폰이 없었다..

파발이나 봉화 조차도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난..

편지를 썼다..

 


Episode 2.

 

 

난 축구를 못한다..

소위 말하는 개발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사나이로 태어나 군대에서 고참들에게..

가장 빨리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은..

축구를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축구도 지지리도 못하고..

하다못해 삽질조차도 남들보다 어설펐던 필자의 군대생활은..

고난의 연속이겠구나란 생각에 겁부터 덜컥 났더랬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시었다..


난 남들보다 목소리가 컸으며..

군가나 복무신조 , 병공통과제 따위를 단시간에 달달 외울 수 있을만큼..

기억력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연애편지를 잘썼다..

 

그리하여 주말이면 항상 고참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던 일이 일과였다..

모르는 수많은 여인네들에게 애틋한 언어를 피를 토하듯 쏟아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피를 토하며 맞았을것이다 아마..

-_-

 

'당신의 편지는 한 폭의 수묵화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예요..'


이런 과찬의 말씀을 담은 답장을 받아든 우리 소대 내무반장의 뿌듯한 미소..

그후로 난..

고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하는..

귀염둥이로 다시 태어났더랬다..

 

그로인해 필자의 군생활은 휴가를 열번이나 나오며..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졌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래..

연애편지를 잘쓰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래..

신께서 내게 이렇게 물으신다면..

난 다시한번 후자를 택하리라..

 

난..

보병 제 6사단 2연대 3대대 9중대의..

시라노 드 베르쥬락 이었다..

 


Episode 3.

 

 

필자가 살아오면서 주로 자랑했던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 엄마 예쁜거며..

둘째는 내 여동생 공부 잘하는거며..

셋째는 우리 아부지 글 잘쓰시는 거였다..

 

어린시절 한가지 의문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우리 아부지는 참..

키도 검소하시고..

별로 가진것도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엄마와 같은 당대의 절세 미녀랑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대체 어떻게 꼬셨..

아니..

'설득'하셨을까 하는 의문..

 

사춘기가 한참 지났을 무렵..

이사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다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보냈다는 수많은 연애편지들..

원래 한 동네서 알던 여동생이라고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어머님께서 넘어가신건 그 편지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내가 봐도 참 잘 쓰긴 잘 쓰신다..

필자처럼 요리조리 글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 수준도 아니고..

뭐랄까..

글에도 표정이 있다면..

그럼 애절함을 가득 머금은 표정의 글같았다..

 

막내 삼촌은 일찍 돌아가셨다..

본인이 고1때였으니..

사촌동생들은 아직 '죽음'의 의미를 알기 전이었던듯 하다..

그날 밤..

아마도 내 기억엔..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첨 본것 같다..

한참을 뭔가를 쓰시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시..

꺼이꺼이 통곡하시는 모습을 보았더랬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시고..

아버지의 책상에 놓여있던..

한통의 편지..

당신보다 먼저 떠난 막내동생에게 띄우는 마지막 편지..

나도따라 눈시울이 붉어졌더랬다..

 

필자는 요즘도 편지를 열심히 쓴다..

다만 그것이 정성들여 한자 한자 글씨를 써내려가고..

우체통에 넣어버리면..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그러한 편지가 아닌..

몇 바이트의 활자로 이루어진..

미니홈피 방명록상의 형태로..

멋대가리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발송을 클릭할때면..

항상 심장이 떨려온다..

자다 깨어 다시 받는 사람의 홈피로 들어가 그 글을 삭제하기도 여러번이고..

(이 부분은 예전보다 좋아진건지 아님 오히려 더 나빠진건지 모르겠다..)


월급쟁이들의 신화..

이명박씨는 이제 대권에 까지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난..

이명박의 신화보다..

편지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었던..

오래전..

우리 아부지의 신화를 아직도 더 믿는가 보다..

 

 

이제부터 책이야기.. -_-

 


우리나라의 편지도 서구나 일본에서처럼 하나의 '문학'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에..

김다은씨는 3년간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모았다고 했다..

 

편지란 항상 받는 사람이 보관을 하는 것이므로..

여기에 등장하는 편지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유명 작가들의 연애편지뿐만 아니라..

그들의 연인의 편지까지도 포함이 된다..

 

근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어떤게 우리가 아는 유명작가의 편지이고..

어떤게 그들의 연인일 소위 말하는 '민간인'의 편지인지 중간 중간 헷갈릴 정도이다..


사랑을 하면 다 '시인'이 된다더니..

 

우리의 상식선을 뛰어넘는 색다른 형태의 연애편지들도 많이 보이고..

아니 저게 '소설'을 썼던 사람의 편지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솔직하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그러한 내용의 그야말로 범인들이나 막 쓸 정도의 편지도 있다..

 

어느 네티즌 리뷰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연애편지란 지극히 사적인 언어들로 빚어진 것이어서 그 자체가 은밀한 것일텐데 어쩌면 소설가 하성란의 연애편지처럼 태풍과 같은 내 사랑의 언어들이 발기발기 찢어져 내 마음에 콕콕 박히는 아픔일 수도 있는데 이를 공개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일까.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권좌에서 내려온 평범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인간극장' 보듯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재미난 것인지.'


- 네이버 getupdoll 님

 


내용이야 구성이야 어찌하였던..

아무튼..

그 편지들의 쓸 그 순간의 그런 애절함들..

그 하나만으로도..

비갠뒤 하늘만큼이나..

아름다운 글들의 한바탕 잔치가 아니었을까..

 

끝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편지를 하나 고르라면..

그 서막을 열었던 하성란씨의 편지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하성란씨를 떠오를때의 이미지랑..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약간은 얼떨떨했다.. 애딸린 홀애비를 짝사랑 했었다니..!!)


반칠환 시인의 '결혼 십 주년 기념 편지'로 마무리 짓는다..

 

 

생각느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속에 열 개 성상이 흘러갔네.

십 년 동안 좋은 날도 많았고, 흐린 날도 더러 있었겠지만 나는 전체적으로 아주 맑음이었다고 생각하네.

자네 흐린 날의 원인을 이따금 내가 제공했다 하더라도 나는 자네가 있어 대단히 맑은 날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이기적이라 탓하실까?

설혹 내가 그림자를 드리운 날이 있다하더라도 어느 집에나 빨래를 다 걷은 다음에도 마당에는 실낱같은 빨랫줄과 바지랑대 그림자쯤이야 남는 법.

빨랫줄, 또는 그 위에 올라앉은 고추잠자리 한 마리쯤 그림자 드리운다고 흐린 날이라 여길 이 어디 있겠나?

 

우유부단하고, 좌충우돌하는 야생마 같은 날 만나 길들이느라 많이 수고하셨네.

하지만 야생마 잘 길들여 수레에 쌀가마니나 싣고 터벅 터벅 끌고 갈 때 그 한 끝에 걸터앉아 흔들리며 가는 재미도 꽤나 꼬숩지 아니한가?


이제 내 마음의 야생마도 많이 길들여져 결혼 십 주년에 말 궁둥이에 안장이라도 얹게 되었으니 그동안 낙마한 설움이 얼마나 기쁨이신가?

 

꽃이 있어도 꽃을 알지 못하고, 무지개가 있어도 무지개를 알지 못하는 눈에 아름다움을 틔워준 이가 있었네.

이마는 넓어도 속은 좁아 오로지 저만 아는 막무가내 굴딱지 같은 가슴을 열어주는 이가 있었네.

맑고 흐린 세상의 기후 알지 못해 비가 와도 빨래 걷을 줄 모르고 장독 뚜껑 닫을 줄 모르는 이를 깨워주는 이가 있었네.

밥을 지어주고, 빨래를 해주고, 청소를 해주고, 돈 벌어다주며 볼에 입 맞춰주는 이가 있었네.

바람처럼 달려와 구름처럼 안고 보듬어주는 이가 있었네.

별꽃 보고 기뻐하며, 작은 마음 한 조각에 가릉거리는 이가 있었네.

사람 보고 꽃으로 여기고, 짐승 보고 잎으로 여기는 이가 있었네.

그게 누구일까?

모두 알고 저만 모르는 이, 이 글을 읽을 것이네.


( 하 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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