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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김용택 지음 / 푸르메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생각해보면 고향을 가진 우리들은 다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
회사에 친한 누님이 계셨더랬다. 필자가 독립을 하던날 밥그릇이며 국그릇을 하나하나 신문지에 싸서 집들이 선물로 주시던 물심양면으로 본인을 아껴주던 분이셨다. 그 누나의 아들이 건강이 안 좋아졌단다. 일하는 엄마탓이라 생각했던 누나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떠나던 날 난 한권의 책을 선물했다. 시인들이 쓴 사랑 이야기를 엮은 책이었다. 그 때 누나가 하던말이 떠오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김용택 시인이야 이 책에 김용택씨의 글이 있어 참 좋아라고.. 그런 종류의 책을 몇권 봤던지라 항상 그때마다 내 눈길을 끌던 시인이라 본인도 꽤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역시나 누나는 내 소울메이트였다며 그렇게 일찍 결혼만 안했더라면 운운하던 그 날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본인에게 있어 이런 책은 항상 50점은 바닥에 깔고 들어간다. 얼마나 좋은가.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이런 책들. 책 표지의 김용택 시인의 모습은 무척이나 정겹다. 동실동실한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시고 작달막한 키로 세벌에 3만 9천9백원 잭필드 3종 면바지 셋트로 추정되는 면바지를 입고 거니는 모습. 동네슈퍼에 담배사러 가다가 흔히 마주칠법한 동네 아저씨 모습 그대로다.
이 책은 그 김용택 시인이 만난 사람들에 관해 쓴 책이다. 어린 시절 고향의 친구들, 청년시절 문학하고 예술하던 친구들, 마암분교 선생님 시절 가르쳤던 어린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김용택 시인은 필자의 어머니와 동년배이신지라 이제 주위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하나 둘씩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많을법한 시기이다. 이 책에서도 유독 이젠 아스라한 구름의 저편으로 떠나간 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는 편이다. 그럴때마다 시인은 시를 썼다. 그 사람을 그리며 못다한 사람과의 정을 그리며 그렇게..
시인이 들려주는 고향의 이야기는 훈훈하다. 장롱밑에 들어가 있던 500원짜리 동전을 발견한듯한 기쁨을 가져다 준다. 짓궂은 장난으로 점철된 그 시절의 기억이라도 그것이 고향이었기에 따뜻하다. 비록 시인과는 다른 비오는날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만들던 모래성과 지렁이, 화단의 사루비아, 간장만 쪽쪽 연신 빨아먹어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도 크기가 줄어들지 않았던 50원짜리 오뎅들.. 그런 필자의 도시스러움과 촌스러움이 공존하는 고향의 기억이지만 그것이 지금의 아이들처럼 피시방과 각종 학원에 얽매인 그런 추억이 아니었음에, 막차를 타고 늦게나마 그런 시대를 살아왔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나도 늙어간다. 머리에 흰머리가 나고 눈이 흐려진다. 이 글을 쓰다 말고 교실 유리창 밖을 내다본다.
......
저쪽 강길로 책보를 어깨에 둘러메고 까만 머리통을 흔들며 뛰어가던 그 길에 우리들의 어린 날의 그 강에, 그 강변에 지금 봄이 오고 있다.
나는 늘 이렇게 여기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리라. 용택이는 복 있는 놈이라고, 지금까지 서로가 그리운 그곳에서 살고있는 참 복 있는 놈이라고. 생각해보면 고향을 가진 우리들은 다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
(P.23)
김용택 시인은 50년 가까운 세월을 학교에서만 보낸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다. 2학년 짜리 어린 제자를 꾸중하는 일이 잦아졌던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김용택 선생님의 그 제자의 눈에서 평소에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과는 다른 겁먹은 눈을 보았다고 한다. 그제서야 선생님인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그 눈빛을 다시 평화롭고 안정되게 돌이키기 위해 밤새 뒤척였다던 이야기에서는 참스승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특히나 좋았다.
흔히들 사람을 뜻하는 한자인 사람 人 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들 한다. 이 모진 세상 그렇게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일까란 생각을 새삼 해보았다.
요즘 여러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술자리를 거의 안하다시피 했더니 필자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차츰차츰 무너져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술을 안 마시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수도없이 많지만 너무 혼자 바쁜척 잘난척 유난떨었던것 같아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은 요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한권의 책은 내 주변의 '사람'을 다시보며 반성하는 기회를 얻게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