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화의 숲에서 사랑을 만나다 - 신화 속에 감추어진 기이한 사랑의 이야기들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3월
평점 :
마치 한 여름밤의 꿈을 꾼 듯하다
살면서 그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다들 한번씩 볼것이다. 물론 필자도 학창시절 수차례 보았던 경험이 있다. 성인이 되고나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옛날 생각이 나서 사두었으나 아직 펼쳐보지 않은 관계로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은 실로 오랜만에 접한 신화에 관련된 책이었다. 비록 그 수많은 신화 속 이야기들 중 사랑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이지만 잃어버린 기억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그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6년으로 기억된다. '울티마4'라는 롤플레잉 게임이 있었다. 미지의 브리티쉬 왕국을 모험하며 뜻을 같이하는 다양한 직업군의 동료들을 모으고 각종의 몬스터와 싸우고 그 전리품으로 무기를 업그레이드 시키며 여덟가지 고매한 정신의 가치를 찾아 그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22년전 그 당시로서는 실로 무척이나 방대한 스토리의 게임이었다.
필자는 이 게임을 80년대 당시 초등학생 용돈으로는 엄청난 수준이던 거금 만원을 들여 정품으로 샀었고 영어 사전을 찾아가며 정말정말 열심히 플레이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영어가 흔히 쓰는 영어가 아닌 고어인지라 사전을 찾아봐도 그 뜻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때 주로 나왔던 적들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상당부분 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되었던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서양 문화권에서 이 그리스 로마 신화가 끼친 영향력은 그렇듯 대단한 것이었나 보다. 이젠 기억이 오래되어 이름조차 가물거리는 그 신화 속으로 한편의 잘 짜여진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이 책의 책장을 펼쳐보았다.
신화 속에서 나타난 신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놀랍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요즘말로 '개인기'가 만만찮은 수준이다. 원하는 형태로 무엇이든 변신을 하는가 하면 자연의 현상들조차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다. 앞날을 예견하는 능력은 기본에 죽은자를하늘로 던지면 저 하늘의 별이되어 수천년을 지나오며 영원히 반짝거린다. 별자리의 유래가 된 사연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보았던 대목이다. 밤하늘의 반짝거리는 별들이 그러한 저마다의 애절한 사연을 품고서 유구한 세월을 보내왔다는 사실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이제 별을 볼 때도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생각나겠지.
신이란 그 위대한 능력만큼이나 사랑을 하여도 숭고하고 우아할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신화 속에서 나타난 신들의 사랑이야기는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질투와 모략, 탐욕과 욕정이 부르는 강간에 근친상간, 세월을 앞서나간 동성애까지 뭔가 환상같은것이 깨어지는 느낌이다. 그 중 신들의 왕 제우스는 난봉의 극치이다. 필이 꽂히는 여인을 보면 아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여자를 자기것으로 만든다. 유독 나이트 클럽이나 단란주점 상호에 제우스란 이름이많다는 사실이 다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이렇게 삐뚤어진 사랑 이야기 말고도 가슴이 찡한 사랑 이야기도 꽤 있다. 오디세우스와의 사랑의 맹세를 지키기 위하여 20년동안 절개를 지켰던 페넬로페. 수많은 청혼을 밤마다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고 스스로 다시 풀며 시간을 끌며 정절을 지켰던 여인. 페넬로페란 이름은 원앙 오리를 뜻한다고 한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잃은 슬픔에 인간의 신분으로 저승으로 가는 스틱스 강을 건넜던 오르페우스. 신들과 산천초목들 까지도 감동 시켰던 그의 애절함이 담긴 리라 연주와 순애보. 그리고 특히나 인상깊었던 데메테르의 페르세포네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 사계절이 존재하는 이유는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를 벗어날때 하데스가 건넨 음식을 먹어서 1년중에 넉달은 하데스의 아내로 지내야하는데 대지의 신인 데메테르가 슬픔에 빠지고 씨앗의 신인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로 돌아가 싹을 못틔우는 시기가 바로 겨울인 것이다. 딸이 돌아오면 데메테르는 다시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봄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또한 요즘처럼 완연한 봄이 왔다고 생각하다가도 한번씩 꽃샘추위에 어깨를 움츠리게되는 이유는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를 생각하며 치를 떠는 순간이라는 전설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해석이다.
신들의 사랑 이야기가 인간들의 그것과 흡사한 이유는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때 자신들의 모습을 본떠서 그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먼 옛날의 비과학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거울삼아 보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우쳐가는 여정도 무척이나 흥미롭고 뜻깊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젠 롤플레잉 게임속의 이름으로 그리고 밤하늘 별이 되어 외롭게 반짝거리는 신들의 모습..
마치 한 여름밤의 꿈을 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