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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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충고지만 '아마추어 독서가'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책 읽기에 관한 책인만큼 시작은 필자의 개인적인 독서 이야기로 시작 하고자 한다. 초등학생때 까지 책벌레란 소리를 종종 듣던 필자는 사춘기를 기점으로 근 20년간 일년에 책을 너댓권 읽을까 말까한 지극히 평범한 독서 습관을 지닌 사람으로지내왔었다. 더이상 책벌레란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냥 벌레란 소리는 들어본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3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이던 작년 세상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마음의 안정을 가지기 위해 택했던 일이 바로 책 읽기였다. 다행히 어릴적 책을 즐겨 읽던 습관이 남아있었고 책 읽을땐 남들보다 집중도 잘하는지라 다시 시작된 책에 관한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꾸준히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그 지나간 20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더랬다. 그래서 그 20년간 안보고 살았던 책에 한이라도 맺힌듯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연봉의 10%를 뚝 떼서 책을 샀다. 그리고는 그 책들을 한권 한권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집에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 책이 나오면 일단 또 산다는 것이다. 책을 사는 속도를 책을 읽는 속도가 따라잡기란 만만찮았다. 어디 한군데 꽂히면 아주 끝장을 보고야 마는 필자의 성격탓에 그야말로 책을 죽기살기로 보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출퇴근길이나 식당에서 책보는건 기본에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보지를 않나 책보느라 밤새고 출근하는 경우도 잦아지고 요즘은 아주 운동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런닝머신을 좁아터진 방안에다 사다놓고 퇴근후에 잠들기전까지 몇시간씩 걸으면서 책보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필자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게 된 독서방법은 다독과 속독이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의 저자인 히라노 게이치로가 권하는 책을 읽는 방법인 '슬로리딩'과는 전혀 상반된 독법이라 할 수 있겠다. 스물넷이란 어린 나이에 '일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일을 가능케 한 저력의 근원이 바로 지독과 정독의 습관에 있었다는 사실은 필자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 그가 제안하는 슬로리딩에 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본인과 같은 다독과 속독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따끔하게 혼 날 각오를 하고서 말이다.

 


지면 관계상 기초편은 생략하고 제2장인 테크닉편을 살펴보면 그가 가장먼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른바 속독책들이 말하는 이해율 70%의 덫에 관한 이야기다. 필자또한 속독법이라고 따로 배워 본 적은 없다. 또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이 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속독에 관한 책들과 이론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정독을 하든 속독을 하든 이해율은 대략 70% 정도라는 것이다. 어차피 비슷하게 이해하는데 빠르게 더 많이 읽는것이 낫다는식의 주장인데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 대목에서 그 남겨진 30%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독의 위험함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그 외 조사와 조동사등을 특히 꼼꼼히 살펴보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를 권하고 매순간 의문이 들 때 마다 사전찾는 습관을 기르기를 권하고 있다. 영어사전은 잘 들여다 보면서도 과연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본인 또한 그런편 이었지만 독서에 취미를 붙이고 책에 관한 독후감을 꼬박꼬박 쓰고 있는 요즘은 점차 영어사전 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횟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게이치로에게 칭찬을 받은(?) 대목이었다.

 


다음에 소개되는 '창조적 오독'에 관한 챕터는 특히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오독에도 종류가 있다. 단순히 말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빈곤한 오독이요, 슬로 리딩을 통해 심사숙고한 끝에 작자의 의도 이상으로 흥미 깊은 내용을 찾아내는 것은 풍요로운 오독이다.'

 

(P.63)

 


이 내용을 사르트르와 자크 데리다등을 비롯한 프랑스 사상가들이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을 창조적으로 오독함으로써 독자적인 사상을 키워나갔다는 사실과 포르투갈의 빵이 일본의 카스테라로 진일보 했던 사례등을 통하여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어 특히나 기억에 남는 대목이었다.

 


그외 소리내어 읽거나 배껴쓰기는 비효율적이다라는 주장 등은 실제로 그런일이 잘 없기에 통과 하도록 하고, 밑줄과 표시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습관이지만 책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관리하는 필자로서는 선뜻 따라할 수 없는 것들 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제3부에서는 슬로리딩의 실천편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카프카의 '다리', 푸코의 '성의 역사'등을 아주 세밀하게 슬로리딩 독법을 통해 분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줄거리만 쫒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작자라든지 그 배경에 관해 많은 의문과 생각을 품으면서 보다 더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소개되고있어 상당히 유용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필자가 제안하는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야겠다. 슬로리딩에 포함된 내용도 자연스럽게 실천 가능해지는 방법인데 바로 한권의 책을 읽고나면 바로 바로 그 책에 관한 글을 써보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기록을 위한 비공개적인 독후감이든 독서관련 인터넷 까페나 도서사이트등에 공개적으로 올려 타인에게 추천하는 서평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사람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글자 한자한자 빼놓지 않고 오랜 시간을 들여 책을 보았다고 해도 그걸 100% 기억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럴때 그 책에 관한 글을 써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슬로리딩이 제안하는 재독이 가능하게 될것이고 '왜?'라는 작자의 의도도 파악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다 보는건 아니지만 글 쓰기를 위해 다시 책장을 펴들면 처음 볼때와는 다르게 전체적인 구조가 눈에 좀 쉽게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구조 파악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학창시절 뛰어나게 공부를 잘했던 필자는 아니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런 교과서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잘 정리하는 능력에 있었다. 수학같은 과목은 원리부터 파악해야 하니 불가능할지 몰라도 특히 국사나 정치,경제 같은 과목은 그 목차와 순서만 잘 정리할 수 있어도 훨씬 공부하기가 수월하리라고 생각된다.

 


비록 다독과 속독의 습관을 지닌 필자지만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리딩'을 통한 독법은 일전에 보았던 다치바나 다카시식의 독법이나 최근에 출간된 래버리지 리딩식의 하루에도 몇권씩 필요한 부분만 골라 뚝딱뚝딱 조져버리는 독법보다는 충분히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독법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책 띠지의 표현처럼 히라노 게이치로나 다치바나 다카시는 '프로 독서가'가 아닌가. 직업적인 이유로 끊임없이 책을 봐야하고 글을 써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반면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독자들은 '아마추어 독서가'인 것이다. 생계를 위한 직업은 따로 있고 그 일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으로 보고싶은 책을 사고 또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아닌가. 마음의 안정을 위해 지적 호기심을 위해 말이다.

 


좋은 충고지만 아마추어 독서가들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책에 관한 글을 쓴다고 누가 돈을 주기라도 하는가? 왜 그냥 좋아서 취미로 하는일인데 단지 책을 많이 읽고 빨리 읽는다고 프로 독서가에게 혼날 걱정을 해야 하는가.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될것이다. 그리고 국어 공부하듯 책에다 온갖 표시를 해가며 한자한자 빼놓지 않고 보아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그런 독법의 방식이 아닌 진정 책을 사랑해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는 그런 습관을 가지는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정보를 받아 들임에 있어 필자는 아직까지 책읽기 만큼 많은 능동적인 자세를 가지게끔 하는 행위를 보지 못했다. TV든 인터넷이든 그저 뒹굴거리며 눈으로만 즐기는 수동적인 것들이 만연해 있지 않은가.

 


끝으로 필자는 보다 많은 이들이 책을 즐겨읽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주제넘은 제안을 해본다. 그래서 소개팅 자리에서도 책 이야기를 하면 별 이상한 놈 다보겠네란 시선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일도 없어지고 한달에 서른권의 책을 읽고 서른편의 서평을 썼다고 해도 놀라는 사람이 없어지는 그런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정으로..

 


솔직히 책보는거 재미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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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4-1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책보는 거 정말 재밌죠.
근데, 사람들은 왜 그 재밌는 걸 안 하는 걸까요???

책을든남자 2008-04-18 01:35   좋아요 0 | URL
님 좀 짱인듯 ㅋ

marine 2008-05-0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너무 재밌어요
정말 소개팅에서 책 좋아해요, 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 "이상한" 풍토 좀 없어졌음 좋겠어요
슬로리딩에 대해 말하자면, 저도 한 때 윗글에서 소개된 방법처럼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 다 찾아가고 지도 펼쳐 가면서 주변 지식까지 주워 섬기는 독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만, 한 두 권은 그렇게 읽을 수 있어도 몽땅 그렇게 읽기는 너무 힘들어요. 지친다고 해야할까? 저 방법대로 읽으려면 한 주에 한 권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요. 1년에 100여 권 이상 읽는 사람에게는 좀 무리일듯... 나름 장점도 많은 방법이긴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정말 많은 지식이 생기거든요. 책값 아깝다는 생각은 안 할 거예요

책을든남자 2008-05-09 00:52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는 만든지 얼마 안되나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글까지 남겨주시고 감사합니다 ㅎ(이 미천한 블로그에 남겨진 몇안되는 방문자들의 흔적중 절반이 마린님꺼라 ㅋ) 책 한권 일주일 볼 성격은 못되구요 (워낙 성격이 급해서 -_-) 원체 박리다매식(?) 독서를 하다보니 그중에 뜻하지 않게 맘에 드는 책 발견하면 뭐 그런 기분이 들때가 좋은 장점도 생기더군요..;; 진작에 시간남아돌던 20대때 그렇게 꼼꼼하게 책보기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ㅎㅎ;; 암튼 즐거운 독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