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세계 - The Show Must Go 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배우 송강호와 감독 한재림이 만났다. 영화 <우아한 세계>는 그들이 함께 작업한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아낸다. <연애의 목적>으로 독특한 연애담을 선보이며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한재림 감독은 <우아한 세계>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한껏 선보이며 장르 비틀기의 재미를 보여주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송강호는 역시나~ 관객의 기대치를 가뿐히 뛰어넘는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그들의 찰떡궁합에 <우아한 세계>는 한층 우아한 영화로 거듭난다.

직업만 조폭일 뿐인 여타 다른 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는 강인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조폭의 옷을 입은 '가족영화'다. 정해진 러닝 타임 안에서 극적인 상황 연출과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해 선택된 직업이 조폭일 뿐, 이 영화는 확실히 그의 직업인 '조폭'보다 '생활인 아버지'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생활인 아버지'를 잡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은 가히 놀랍다.

그러나 주인공의 직업이 조폭이고 조폭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한 축을 차지하니 이 영화는 또한 '조폭영화'다. '40대 가장'의 피곤과 고단함에 중심을 둔 전반부를 지나면 조폭들의 칼부림이 스크린을 핏빛으로 적신다. 요즘 유행하는 개그처럼 '이건 조폭영화도 아니고 가족영화도 아니여'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조폭영화이면서 가족영화가 아닐까 싶다.


 

피곤에 찌든 40대 가장 강인구. 천톤도 넘어보이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며 멍한 눈으로 졸음운전을 하는 그의 모습이 화면 가득 채우는 영화의 오프닝은 앞으로 <우아한 세계>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은근슬쩍 보여준다. 그리고 피곤하고 피곤하고 피곤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이 운전대를 잡고 졸고 있는 강인구에게 겹친다.

들개파 중간 보스인 강인구는 물도 잘 안 나오는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정원이 딸리고 채광이 좋은 멋진 전원주택을 꿈꾼다. 이번에 잡은 건설업에서 크게 한 몫을 챙기면 그런 집으로 이사해 우아한 생활을 즐기리라 마음먹고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지금 당장 캐나다에 유학중인 아들의 학비에도 허리가 휘고, 직장(?)에서는 무능한 넘버 2인 노상무의 견제로 피곤하며, 거기다 강제 계약으로 접수한 아파트 건설건 마저 기존 이권자들로 버티기와 상대 조직들의 견제로 순탄치 않다. 거기다 조폭인 아버지를 소 닭 보듯 하는 딸과 조폭생활을 청산하지 않는 남편을 원망어린 눈으로 보는 아내로 인해 그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 이런 조폭 강인구의 모습은 직장 상사에게 치이고, 동료들과 서로 견제하며, 행여 후배들에게 밀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우연히 펼쳐본 딸의 일기장에서 자신을 경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글을 발견하던 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딸에게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아버지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가 않았다.

또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엔딩씬이었다. 늘어진 런닝셔츠에 사각팬츠를 입은 강인구가 라면이 담긴 그릇을 들고 멍한 눈으로, 화면속의 행복해 죽을 것 같은 가족들을 보던 그 장면. 그들의 행복에서 혼자 소외된 자신의 초라함이 분노로 변해 잠시 폭발하지만 이내 그것마저 직접 치워야 하는 서글픔. 요즘 유행처럼 번진 소위 '기러기 아빠'의 모습이 그에게 덧씌워지면서 가족에게서 소외된 아버지의 분노와 서글픔과 처량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던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가장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자녀들의 조기교육을 위해 가족들을 모두 해외로 보내고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기러기 아빠의 모습은 처음엔 처량하고 불쌍해 보이지만 이내 조금 한심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기유학 보낼 형편이 안되는 자의 질투인 지는 모르겠으나, 가족이란 가장 중요한 울타리를 깨고 돈 대주는 기계같은 초라함과 외로움까지 느껴야 할 만큼 유학이 중요한 것일까, 저들의 저런 희생이 과연 값진 것일까.. 뭐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작품성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우아한 세계>는 아주 재미있다. 눈물도 웃음도 그리고 한숨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꽤나 리얼하다. 공사판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조폭들의 모습이나 피곤에 찌들고 처량한 자신의 처지에 눈물을 삼키는 40대 가장의 팍팍한 삶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 리얼한 현실감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와 캐릭터에 동화되어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이 영화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을 중간중간 웃음을 유도하는 상황과 장치를 설정함으로써 가볍게 만들어 주는데, 예상치 못한 웃음코드는 이 영화를 더욱 즐겁게 볼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무거운 싸움씬에 쿵짝쿵짝~ 신나는 음악을 넣는 등 꽤나 유쾌했던 칸노 유코의 음악 또한 상당히 좋았다.


<연애의 목적>으로 충무로의 시선을 빼앗었던 한재림 감독은 그의 두 번째 작품 <우아한 세계>에서 자신의 재량을 한껏 뽐낸다. 이 작품으로 인해 그는 이제 충무로에서 가장 기대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확실한 찜을 당했고, 관객들의 뇌리에 한.재.림.이란 이름 석자를 또렷이 새기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감독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았다. 

<우아한 세계>에서 보인 감독의 연출력을 볼 때 그런 대접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생활 누아르'라는 이색 장르를 내세우며 '누아르'라는 장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일상 생활의 면면을 완벽하게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관객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음은 물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호연을 펼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카피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가 아닐런지. 

극한 감정을 한순간에 폭발해내는 연기의 달인이 설경구와 최민식이라면, 마치 우리의 주변을 보는 것 같은 '생활 연기'의 달인은 단연 송강호일 것이다. 스크린 속에서 마치 옆집 아저씨를 보는 것 같은 그 한없는 자연스러움이란!! 매번 그의 연기를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친구인 현수에게 노회장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는 장면이나 딸의 일기장을 보고 난 뒤에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모습, 티비속 단란한 가족을 보며 라면그릇을 들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하며 눈물 짓다가 이내 분노하던 장면 등은 강인구라는 인물을 한심해 하다가도 그를 동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건 바로 배우 송강호의 힘일 것이다.

조폭과 평범한 아버지라는 극과 극의 캐릭터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한 몸으로 녹여내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관객들조차도 하나같이 손가락을 치켜들게 만든다. 우리 시대에 이런 배우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


그 외 오달수, 박지영, 윤제문 등의 조연들도 호연을 선보인다. 톡톡 튀는 감초연기의 달인인 오달수는 역시나 막강한 포스를 뿜어내고 한동안 그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박지영은 조폭 남편을 둔 피곤한 주부 역을 멋지게 소화해 낸다. 무엇보다 <로망스>에서 비열한 형사를 징글징글하게 연기했던 윤제문은 몇 개 안되는 장면에서 내내 맞거나 찔리는 연기가 대부분이라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물론 극중에선 충분히 맞을 짓을 하는 캐릭터지만. 그리고 첫장면에 백사장 역으로 우정출연한 이대연의 그 리얼한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조폭을 그만두지 못하고 가족들과 점점 멀어지는 강인구.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의 책임감에 허덕이는 그를 보며 가슴이 뜨뜻해지다가도 여전히 자신이 무얼 잘못하고 있는 지 알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한심하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지면 '나는 강인구처럼 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보다 '아이고~ 우리 아부지~ 저렇게 외롭고 힘드셨구나! 오늘 집에 가서 힘껏 안아드리기라도 해야지. 앞으로 아부지한테 좀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부양 가족과 생활에 갖혀 꼼짝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가 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서글프게 웃고 있는 포스터 속의 송강호의 얼굴 옆에 얹혀있는 '웃어라, 아버지니까'라는 카피가 좀 더 가슴을 꽂혔다. 

후반부 피비린내가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혼신을 다한 연기와 훌륭한 연출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우아한 세계>는 후회하지 않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개봉 당시 평단의 반응에 비해, 그리고 나의 예상치보다 적은 흥행을 기록한 점은 내내 아쉬운 대목이다. 한재림 감독과 송강호가 만들어낸 <우아한 세계>는 우아한 세계를 꿈꾸지만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기회가 된다면 챙겨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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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
멕 로소프 지음, 김희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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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씩 뜻하지 않게 멋진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이책이 그랬다. 멕 로소프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한 줄의 책소개만으로 마음이 동해 읽었던 이책은 꽤나 큰 감동과 잔상을 남겼다. 그래서 이 만남이 더욱 반가웠고 고마웠다.

엄마가 죽고 아빠가 재혼한 새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데이지는 점차 먹는 것을 거부하며 거식증에 시달린다. 불안한 가족 관계를 벗어나고자 데이지는 영국에 있는 펜 이모 네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네 명의 사촌들을 만난다. 높은 빌딩과 바쁜 사람들로 가득찬 뉴욕이 아니라 낡은 저택에 한가로운 풍경을 두른 영국의 시골에서 사촌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데이지는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마중나왔던 사촌 에드먼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일 때문에 펜 이모가 해외로 나가고 얼마되지 않아 불안한 국제 정세가 갑자기 전쟁으로 치닫게 되고 공항은 폐쇄된다. 그러나 폭탄이 터지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런던과 달리 사람이 많지 않은 영국의 시골마을은 전쟁을 피부로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연인 티비로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소식으로만 전쟁을 접할 뿐 마을은 여전히 한가롭다. 부모님이 없는 상태에 놓여진 다섯 명의 아이들은 온전히 자신들만의 천국을 형성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이어간다.

그러나 작은 마을도 언제까지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만은 없다. 평화롭던 낡은 저택에 군인들이 밀어닥치고 아이들은 제각각 다른 곳으로 흩어진다. 한동안 휴전 전세를 띄었던 전쟁은 급기야 다시 한 번 크게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폭탄과 총알이 빗발친다. 항상 에드먼드와 다른 사촌이 있는 곳으로 갈 계획을 마음에 품고 있던 데이지는 자신과 함께 있는 파이퍼와 함께 혼란을 틈타 어드먼드와 아이작이 있는 북동쪽 마을로 길을 떠난다. 험난하고 불안한 여정을 거쳐 가까스로 목적지에 닿지만 에드먼드는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다. 단지 즐비한 사람들의 시체만이 그녀들을 반길 뿐이다. 전쟁이 휘몰아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데이지는 자신들의 사촌을 다시 만난다. 그러나 그들 사이를 휩쓸고 간 전쟁은 그들을 결코 이전과 같은 시간대로 돌려주지 않는다. 서로를 사랑했던 데이지와 에드먼드의 관계까지도.

불안하게 형성된 가정 속에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거식증에 시달리던 소녀 데이지가 영국으로 보내져 따듯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촌들을 통해 영혼의 치유를 받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전쟁으로 깊은 상처와 고통을 겪지만 그것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촌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이겨낸 데이지는 전쟁을 통해 더욱 강해졌고,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내가 사는 이유>는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을 찾는 성장의 과정을 다룬 동시에 전쟁이라는 인류의 쓸모없는 짓거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전쟁을 적당한 구실로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파렴치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상냥하고 사려깊었던 에드먼드의 눈빛을 초점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변하게 한 참혹한 전쟁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책을 덮으며 데이지와 파이퍼, 에드먼드와 아이작처럼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이 전쟁의 고통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시대가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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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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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지식의 단련법 | 다치바나 다카시  |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얼마전 선물받은 <청춘표류>를 통해 다치바나 다카시를 처음 알게 됐다. 알고보니 그는 인문, 사회, 과학 등 경계를 나누지 않는 전방위적 저서 활동을 통해 '지(知)의 거장'으로 불린다는 일본 최고의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두번째로 만나는 그의 저서 <지식의 단련법>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가공ㆍ정리해 글쓰기에 활용하는 자신만의 총체적인 지식 활용법에 대한 책이다. 

<지식의 단련법>은 크게 정보를 '입력'하는 방법, '출력'하는 방법, 그리고 '입력에서 출력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듯 지식을 다루는 것 또한 제각각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있기에 일반적인 이론으로 뭉뚱그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책에 담긴 내용들 또한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라 저자 자신이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 자신만의 방법임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하여 정보를 관리하고 그것을 이용한 글쓰기를 함에 있어서도 타인의 방법론은 그저 참고만 할 뿐 그것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데 매진할 것을 권고한다.


- 책은 소모품임을 늘 염두에 두어 인색하게 굴지 말고 더럽히면서 읽어야 한다. (103쪽)

정보의 입력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신문, 잡지, 도서관, 컴퓨터, 기타 자료의 검색 등을 통해 수집된 정보들은 저자는 스크랩북, 독서 카드 등을 통해 가공, 정리한다. 방대한 자료들을 어떻게 선별해서 수집하고 다시 필요에 따라 재분류 정리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그중에서도 정보를 찾기 위한 책을 고르는 법과 읽는 법, 기초 지식이 없는 생소한 분야에 도전할 때 입문서에서 시작해 전문서로 나아가는 방법, 책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 등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곱씹어 볼만 했다. 

그러나 저자가 많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는 스크랩북이나 독서 카드 같은 것들은 인터넷에 접속해 자판 몇 개만 두드리면 웬만한 정보들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같은 정보화 시대에 활용하기엔 너무나 고전적인 방법들이라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알고보니 이책은 일본에서 초판이 출간된지 거의 이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란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데, 이십 여년의 세월은 손수 신문을 잘라내어 스크랩북을 만들던 시대에서 검색 한 번으로 온갖 정보를 만날 수 있는 인터넷 시대로 변하기엔 충분한 시간인 셈이다. 그러나 비록 그 방법들은 구닥다리가 되었지만 정보를 선별하고 정리하는 근본적인 자세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배울 점이 있었다.

정보의 입력이 끝나면 그것들의 활용 단계인 정보의 출력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입력 부분의 내용이 너무 예스러워 흥미도가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보의 출력은 궁극적으로 나의 관심사이기도 한 글쓰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부분이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글을 쓰기 전에 글의 지도와 같은 콘티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나 직접적인 글쓰기 방법을 다루는 문장표현 기법 등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바로 입력과 출력으로 이어지는 과정 동안 일어나는 '사이'에 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준비된 재료가 술이 되기 위해서는 효모의 발효 과정을 거치듯 입력된 다양한 정보가 글쓰기라는 출력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재조합하는 일련의 무의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말한다. 지적 생산은 특히 이런 무의식의 과정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의식화하여 기술,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방법을 무작정 따라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입력과 출력 '사이'에 해당하는 이 무의식의 능력이 커질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다행스럽게도 노력 여부에 따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양질의 정보 입력, 즉 좋은 문장을 많이 읽고 즐기기를 권한다.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하다보면 그것이 무의식에 쌓이게 되고 과정화되어 자연히 좋은 글을 쓰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 아무래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면 매끄러워질 때까지 손을 본다. 손을 보는 가운데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무엇이 좋을지 자신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일이 간혹 생긴다. 그럴 때는 과감히 쳐내는 방향으로 손을 댄다. 매꺼럽지 않은 부분은 반드시 긴 문장이다. 그러니 우선 수식어(수식어구)를 덜어내고 연문, 복문은 단문화 하여, 가능한 한 단순하고 짧은 문장으로 만들어 본다. 그래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으면 문장구조를 바꿔본다. 구체적으로는 주어를 바꿔본다. 주어를 바꾸면 문장 전체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주어를 바꾸자마자 지금까지의 신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문장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일이 흔히 있다. (155쪽)


<지식의 단련법>에 소개된 정보의 수집, 정리, 활용 방법들은 얼핏보면 저자와 같은 저널리스트나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내용처럼 느껴지지만, 궁극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조합해 자신만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어떠한 형태로 접한 정보의 입력이 있기에 출력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책이 씌여졌던 시대와 소개된 지금 시대 간의 시간차가 적지 않아서 지금 바로 활용하기엔 적합치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정보를 대하고 단련하는 근본적인 부분은 변함이 없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적절히 취사선택한다면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언젠가 자신의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있다면 다치바나 다카시식 정보 활용법을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자신이 읽을 책 정도는 스스로 골라 스스로 사고 늘 곁에 두면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93쪽)






 

- 2009.03.29. 햇살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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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류기>를 리뷰해주세요.
대한민국 표류기
허지웅 지음 / 수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처음엔 이책, 별로 땡기지 않았다. 왜냐고? 글쎄. 뾰족한 이유는 생각이 안 난다. 그냥 그랬었다. 또 표지를 얼핏 봤을 때는 만화인가 했다. 만화면 뭐? 만화라서 안 땡기더냐? 아니, 사실 나, 만화 무진장 좋아한다. 그럼 오히려 만화가 아니라서 실망한 건가. 에잇, 몰라.

그렇게 책장에서 잠재우다 어느날 얼핏 책제목이 새롭게 보였다.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땅의 표류기라, 뭔가 가슴을 콕,하고 찌른다. 이 시대를 표류하는 이가 어디 한둘이랴. 이책엔 어떤 표류기가 들어있는 걸까. 책을 들고 고민하고 있는데 소인국에 도착해 결박당한 걸리버처럼 온 몸이 묶인 채 소인들의 탐색을 받는 표지의 걸리버 아닌 걸리버가 어쭈, 빤히 쳐다본다. 뭔가 심드렁한 눈빛. 그러지 말고 한번 읽어보지? 생각보다 꽤나 재미있을걸? 한다. 그래? 나 요즘 사는 게 심드렁한데 그럼 어디? 첫장을 넘겼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겼다.

처음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쭈욱 이어진다. 첫 번째 꼭지인「작은 사람들의 나라」다. 고시원 생활, 반지하 전세 생활, 직장과 이직, 연애, 그리고 가족 이야기로 이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나도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사는구나. 이런 삶과 연애와 치기어린 실수도 저지르는구나. 조금 민망하거나 안쓰럽거나 한심하거나 대견하거나 부럽다.

그러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살짝 지루해졌다.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그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중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휘릭,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유유히 넘어갔다. 책을 꼭 앞에서 뒤로 읽으라는 법이 있나. 때때로 뒤에서 거슬러 읽어 올라오거나 중간중간 엿보며 읽는 것도 꽤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다 재미있으면 거기서 계속 달리는 거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렇게 만난 글은 작년 말 조용히 개봉해 예상 외의 큰 흥행을 이끌었던 영화 <과속 스캔들>에 대한 리뷰다. 그렇게 나는 이책의 세 번째 꼭지인「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필름 2.0>, <GQ>를 거쳐 <프리미어>에서 영화기자로 일한다는 저자 소개가 생각났다.

예전보다 많이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 이야기면 또 반짝,하는 내가 아니던가. 저자의 맛깔스런 글을 읽으면서 나와의 공감대를 찾고 또 미처 내가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다 헉, 헐크와 스피드레이서와 핸콕과 록키와 마주치고는 살짝 당황했다. 그들을 아직 안 본 것이다. 본 영화를 헤아려보니 <과속 스캔들>과 함께 <미쓰 홍당무>, <추격자>, <슈퍼맨이 된 사나이(이건 영화리뷰라기 보다는 전지현,이 상징하는 스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다)>가 전부다. 아직 보지 않은 영화의 리뷰와는 조금 뒤의 만남을 약속하며 또다시 책장을 휘릭, 넘긴다.

그러다 안착한 곳이 MB와 촛불과 미친쇠고기와 뉴라이트와 영어공교육에 대한 이야기다. 두 번째 꼭지 「큰 사람들의 나라」다. 가장 몰입해서 읽었고 가장 공감했고 또 가장 재미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견해가 다른 부분이 있었으나 '경제 대통령'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온갖 일들을 맛보아야했던 2008년이 생각났다. 만약 이책이 조금 더 늦게 출간되었더라면 얼마전 일어난 용산 참사에 대한 부분까지 언급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분노와 한탄이 함께 가슴에 일렁거렸다. 제목처럼 진정 이땅을 표류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을 그대로 피부로 느끼게 해준 꼭지였다.

<대한민국 표류기>는 찌질한 개인사에서 시작해서 이땅을 뒤흔드는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담론으로 옮겨간다. 그의 글은 재미있다. 다소 껄끄러울 때도 있지만 참 맛깔스럽다. 그리고 솔직하다. 유머도 있고 재치도 보인다. 그 가운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기득권층과 사회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고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도 한다. 물론 그가 적을 두고 있는 영화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책은 대한민국에서 힘 없고 백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표류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저자의 개인사에 우리들의 찌질한 삶이 겹쳐지기도 하고 분통 터트리며 통곡했던 그 분노가 다시 되살아나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기득권층에게 어퍼컷을 날리는 그의 글을 통해 잠시나마 통쾌함을 맛볼 수도 있다.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했다가 눈에 촛불의 불꽃을 내뿜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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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통해 배우는 평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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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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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샌들 한 짝
카렌 린 윌리암스 글, 둑 체이카 그림, 이현정 옮김 / 맑은가람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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