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맘 케어 - 아이와 엄마가 행복해지는 천연비누 & 화장품 만들기
안미현 글.그림 / 넥서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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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코맘 케어 | 안미현 | 넥서스books | 2010.02 


피부 트러블을 달고 사는 편이라 작년에 큰맘먹고 천연화장품 만들기 과정을 배웠다. 내친김에 자격증까지 땄다. 천연화장품은 아직 나라에서 인정하는 공인자격증은 없는 상태라 교육기관에서 주는 민간자격증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손에 쥐니 내심 뿌듯했다. 그뒤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나름 이것저것 만들어서 써보고 있는데 이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효과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쓴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봤겠냔 말이지. 정말 아는 게 힘이다.

얼마전에 친구의 임신 소식이 들었다. 결혼 후 한참이나 기다렸던 아이 소식이라 친구 부부의 기쁨이 더욱 컸다. 그런 친구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어 고민하다가 천연화장품을 떠올렸다. 아이를 위해 좋은 것만 먹듯 화장품 또한 좋은 재료로 만든 안전한 것을 쓰면 좋을 테니 말이다. 임신 기간 중에는 이것저것 가려야 할 것들이 많은데, 천연화장품의 재료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아로마 에센셜 오일은 더욱 그렇다. 재료 선택이 조심스러워 관련책을 찾던 중 이책을 만났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에코맘 케어》는 천연화장품을 다루되 그 대상을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임산부로 특화한 책이다. 대상이 분명한 까닭에 책의 내용 또한 크게 '임신 중'과 '출산 후'로 나뉘어 있는데, 임신과 출산은 둘 다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관리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 꼭지 아래에는 얼굴, 복부 및 하체, 가슴, 바디, 모발 관리 등 임신과 출산으로 변화된 신체 관리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세부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본격적인 레시피 소개에 들어가기 앞서 왜 천연화장품을 사용해야 하는지, 임산부에게 좋거나 피해야 할 천연재료는 무엇인지, 각 재료의 특성과 사용법은 어떠한지 등 천연화장품에 관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내용들을 실려있다. 더불어 천연화장품과 천연비누 만들기에 필요한 제작 도구, 그것들을 만드는 기본 원리와 테크닉, 임산부를 위한 안전 가이드 등이 담겨 있어 천연화장품을 처음 접해보는 이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임부와 산부를 위한 책인 만큼 《에코맘 케어》에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엄마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한 책이다. 임산부에게 필요한 다양한 천연 재료를 이용한 천연 케어 품목들이 소개되어 있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이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천연화장품을 만드는 과정을 책의 앞부분에 사진과 함께 종류별로 한꺼번에 설명해두고 정작 본문에서는 레시피와 글로만 적어둔 구성은 아쉬움이 남는다. 천연화장품 만들기도 요리와 비슷해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이들은 레시피와 몇 가지 주의점만으로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생소하고 조심스러운 초보들에게 이런 설명 방식은 다소 난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레시피마다 만드는 과정을 사진으로 첨부해주는 배려가 아쉽다. 

세정 제품 레시피의 경우 보통 쉽게 구할 수 있는 천연재료가 아니라 직접 가성가리를 이용해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어 조금 생소했다. 물론 직접 물비누 베이스를 만들어 쓰는 게 시중의 재료보다 훨씬 안전하고 좋겠지만, 안그래도 주의해야 할 것이 많은 임산부인 만큼 취급이 조심스러운 가성가리를 직접 사용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가성가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자의 경우에는 아예 그 제품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가성가리에 대한 불안감이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와 엄마가 행복해지는 천연비누 & 천연화장품'이란 부제를 보면 천연화장품과 함께 천연비누를 만드는 방법도 함께 다룰 거란 인상을 주는데, 정작 천연비누에 대한 내용은 앞부분에서 개괄적으로 다루는 천연비누의 종류와 기본 원리가 전부다. 물론 그것만 알아도 천연 비누를 만드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몇 가지 정도는 세부 레시피로 다루어도 좋지 않았을까. 또한 이책에는 '아이'를 위한 레시피도 없다. 부제가 엄마가 천연제품을 사용함으로 뱃속의 아이도 함께 행복해진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아쉽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니 이미 천연 비누, 아이를 위한 천연비누 관련 책이 출간되어 있었다. 궁금하면 그책을 보라는 의미인걸까?)

임산부의 경우에는 신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어야 하는 까닭에 부기나 튼살 등 여러가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이왕이면 피부와 아이에게 자극이 되지 않는 천연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다. 처음엔 그저 막막해 보이는 천연 화장품 만들기도 하나씩 배우다 보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내가 쓸 것을 직접 만드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화학제품에 찌들었던 피부가 천연재료로 만든 화장품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직접 만드니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천연 화장품은 만들기의 기본 원리와 천연재료의 특성만 제대로 익힌다면 기존의 레시피를 응용해 어렵지 않게 나만의 레시피를 찾을 수 있다.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재료에 대한 폭넓은 소개와 임산부를 위한 다양한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는 만큼 이책 또한 하나의 길잡이책으로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다만 한 번도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완전 초보라면 만드는 과정을 사진과 함께 설명해 주는 다른 책들을 먼저 접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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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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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꾼 :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 이화경 | 뿔(웅진출판사) | 2010.01 


소설을 좋아하고 또 즐겨 읽는 편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해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즐거움을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책으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한때 잠시의 변심으로 소설을 멀리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가까운 또는 가장 즐기는 장르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이야기를 담은 소설책이다. 흔히 소설은 삶의 이야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소설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겪으면서 나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또다른 삶을 이야기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더 깊은 인생을 배워간다. 때때로 잠시나마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는 일탈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소설책을 잡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기나긴 부제는 소설 《꾼》의 내용을 한줄로 압축해준다. 그럼에도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대목은 여전히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물론 그 '책'은 '공자 왈 맹자 왈'을 외는 양반네들의 점잖은 책이 아니라 조선 후기 급속히 번성했던 '패관소품', 즉 이야기책을 뜻한다. 조선 후기 이야기책을 생각하니, 책 읽어주는 남자는 아니지만, 당대의 문장가인 주인공이 필명으로 몰래 음란 소설 쓰기에 빠져드는 내용을 담은 김대우 감독의 영화 「음란서생」이 떠올랐다. 또한 같은 감독의 최근 개봉 영화 「방자전」에서도 방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는 작가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만큼 조선 후기에 많은 이들이 이야기책에 매료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운득은 성균관 유생들의 잡다한 심부름이나 하던 미천한 신분의 반인이었다. 성균관에서 패관소품체에 빠져있던 이결 선생을 모시게 되면서 운득은 이야기의 맛을 알게 된다. 그러나 패관소품체로 나라님의 노여움을 산 이결 선생은 성균관을 떠나고, 그뒤 운득은 윤 상좌 일행의 금강산 유람에 따라 나섰다가 죽을 고비를 맞는다. 겨우 살아난 그는 비천한 반인의 운명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스스로 지은 이름은 김흑(金黑), 검은 쇠, 검은 놈이란 뜻을 품었다. 등짐을 지고 정처없이 전국을 떠돌면서 김흑은 이야기에 즐거워하고 분노하고 눈물짓는 사람들을 보며 더욱 이야기에 매료되고, 우연히 본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진정한 이야기에 눈 뜨게 된다.

소설 《꾼》에는 주인공 김흑 외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야기와 사랑에 미친 이야기꾼 김흑의 이야기를 기둥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과거의 어린 운득, 이결 선생, 나라님 정조 대왕, 영의정 노옹과 그의 걷지 못하는 딸 유리의 이야기들이 제각각 이어지며 서로 얽히고설킨다. 성균관 인연에서는 운득과 이결 선생이, 패관소품체와 문체반정에서는 이결 선생과 정조 대왕이, 사도세자의 복권에서는 정조와 노옹이, 부정(父情)과 사랑의 삼각 관계에서는 노옹과 유리와 김흑 등의 관계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는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와 그것에 빠져든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알알이 엮여들며 잔재미를 선사한다.

-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가? 그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인가? 자네는 아는가?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왜냐하면 세계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오직 생각 속에서만 열리고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일세. (중략) 이 무서운 존재와 세상의 이야기가 시시한 우리를 구원한단 말일세.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위대하고도 위험한 것일세. 알겠는가? (108-109쪽)


《꾼》은 이야기에 매료되고 사랑에 미친 사내 김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가 살았던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패관기서와 소품들이 성행하던 조선 후기에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풍경과 그런 시대적 상황에 발맞춰 등장한 '책을 읽어주는' 책비의 존재가 그것이다. 레몽 장의 소설 《책 읽어주는 여자》에서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는 그저 '책만' 읽어주는 게 아니다. 그들이 가진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어준다.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김흑 또한 책 속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들의 가슴 속 응어리를 매만진다. 물론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야기를 빙자한 '조선의 카사노바'라고 할 수 있겠다. 유리에 대한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그런 반감을 희석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과연 모든 대가댁 마나님들은 그의 또다른 서비스(?)를 한결같이 즐거워했을까? 정녕 순수하게 이야기만 듣고 싶어한 이는, 그의 행위에 반감을 가진 이는 없었을까? 이책에서 그런 의문은 거의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그리고 이책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정조다. 패관소품에 열광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인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대한 신념과 고집, 평생의 숙원인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둘러싸고 깊어지는 고민, 그리고 꾸며낸 이야기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는 동안 쌓인 아픔 등 정조에 대한 이야기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이어지며 김흑 못지 않은 자리를 차지한다. 초반에 산속 나뭇꾼이 들려준 '여덕아국(유대)의 야소(예수) 이야기'는 김흑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계기가 되면서 동시에 야소의 고난을 사도세자의 비극과 견줌으로써 그 시대에 일어난 진짜 놀라운 이야기에 대한 포석을 깔아둔다.

- 소설이 없는 것을 꾸며내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어린 운득은 그 모년(某年)의 화변이야말로 정작 소설이 되어버리고 만 니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금은 그토록 끔찍하게 소설체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비의 죽음을 없었던 이야기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대해 그건 허구가 아니라며 맞서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나라님의 마음을 감히 뉘라서 어찌 알 수 있겠는가. (91-92쪽)


이화경의 소설 《꾼》은 사랑에 빠진 이야기꾼 김흑과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임금 정조와 함께 조선 후기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인물들의 사연이 제각각 흘러가다 보니 시선이 분산되어 전체적으로 산만하게 느껴졌다. 때때로 현실이 이야기인 듯 이야기가 현실인 듯 전개되는 대목은 사극 판타지의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독자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러나 주인공 김흑이 이야기에 매료되고 책 읽는 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더뎌 다소 지루하고, '이야기 하나로 조선을 희롱'했다고 하기엔 김흑의 이야기와 사랑과 비극이 큰 역할을 보이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허나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욕망을 표현해냈다는 점은 소설 《꾼》의 장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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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The housemai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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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녀 │ 임상수 감독 │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서우, 박지영 │ 2010.05.13



2010년 상반기 개봉작 중 가장 큰 기대와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단연 《하녀》가 아닐까 싶다.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칸의 여왕’ 전도연의 출산 후 3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며 故 김기영 감독의 걸작 《하녀》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끄집어내는 문제적 감독 임상수 감독의 연출작이자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강도 높은 노출씬에 대한 궁금증이 한데 어우러져 영화 《하녀》는 그 모습을 공개하기까지 호기심을 부추겼다. 그와 함께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와 함께 칸 영화제 경쟁부분 진출이라는 낭보는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욱 증폭시켰다. 



나 역시 그런 기대로 말미암아 개봉 첫주에 부랴부랴 영화관을 찾았다. 나를 영화관으로 부른 건 화제성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것보다도 전도연과 전도연과 임상수라는 배우와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전도연의 영화는 데뷔작 《접속》부터 《하녀》까지 대부분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만났고 모든 영화를 빠지지 않고 챙겨봤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가 좋았다. 행여 영화는 그냥 그렇더라도 그녀의 연기는 늘 빛났다. 어떤 역을 맡든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그녀는 늘 실망시키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배우 전도연에 대한 믿음은 그녀의 연기와 작품들을 바탕으로 커져갔다. 그렇기에 전도연이 출연하는 영화가 궁금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임상수 감독과의 첫 인연은 《바람난 가족》으로 시작됐다. 《오아시스》에서 반했던 문소리가 출연한다기에 봤던 영화지만 온가족이 바람난 콩가루 집안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황석영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본 뒤론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원작소설 만큼이나 영화도 좋았다. 반면 많은 화제를 낳았던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오랜 기간 법정다툼 끝에 영화의 앞부분이 암흑으로 뒤덮였다는 문제작 《그때 그 사람들》은 아직 보질 못했다. 그러고보니 《하녀》는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이다. 이번에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나쁘진 않았다. 점점 임상수 스타일에 빠져들 듯하다. 



영화 개봉 전 만난 대부분의 신문기사에는 영화 《하녀》를 ‘상류층 가정의 하녀로 들어간 한 여자가 주인집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파격적 스토리를 그린 에로틱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다. 허나 영화는 예고편이나 스틸컷만큼 그렇게까지 에로틱하진 않다. 노출 장면이 적지는 않지만 그 강도가 그리 쎄진 않다. 워낙 개봉전 노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상대적으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김기영 감독의 원작처럼 이 영화 또한 스릴러일 거라고 기대했었으나 스릴러라고 하기엔 극의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파격적 또는 황당한 결말 또한 스릴러라고 부르기엔 다소 애매함을 느끼게 해준다. 스릴러라기보다는 오히려 블랙코미디에 가깝지 않나 싶다. 즉, 노출이나 반전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 그만큼 실망하기 딱 좋다는 이야기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작이지만, 상류층 가정의 하녀로 들어간 주인공이 주인집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어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기본적인 골격 이외에는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할 수 있단다. 시대가 바뀐 만큼 주인공들의 나이나 직업, 주변 상황들이 확연히 달라졌다. 영화 속 모든 일을 꿰뚫어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해주며 중간중간 웃음을 전해주는 캐릭터인 늙은 하녀 병식 또한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라고. 물론 결말도 다르다. 그럼에도 《하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故 김기영 감독의 원작 《하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하녀》 속에 기억되는 장면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다큐 같던 오프닝과 블랙 코미디 같던 묘한 엔딩 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밤거리에서 투신 자살하는 한 여자를 보여주는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 은이가 속해 있는 현실과 사람들의 무관심 등을 보여주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을 깔아둔다. 일하던 식당을 그만두고 은이가 하녀로 일할 대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그녀가 살았던 현실의 풍경은 사라지고 대신 제한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인 대저택에서 극화된 상황들이 펼쳐진다. 다큐에서 연극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버림받고 상처받은 은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감행하는 충격적 또는 황당한 반전 뒤 끝을 알리는 엔딩 크레딧 직전에 등장하는 짧은 엔딩씬은 영화의 결말보다 더 기묘하다. 영화의 충격(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반전 못지 않게 그들이 등장하는 엔딩씬은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에 충분했다. 나 또한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같이 본 친구와 그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을 정도니 말이다. 갖가지 추측과 짐작이 난무하던 그 의문은 칸을 찾은 임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됐다. 하지만 조롱이 아닌 트라우마를 표현했다는 감독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감곧의 냉소 어린 시선이 여전히 느껴지는 건 나뿐일런지. 



임상수 감독은 대가의 작품을 리메이크 하면서도 특유의 자기 스타일을 고수한다. 원작을 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원작에 대한 정보가 거의 백지에 가까운 상태로 영화를 본 나는 그런 임상수 스타일이 나쁘지 않았다. 감독과 미술팀이 특별히 공들였다는 대저택의 사치스러운 상류층의 모습은 영화의 때깔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영화는 은이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관객의 공감을 넓게 형성하지는 못한 듯하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힘도 없고 백도 없는 하녀인 은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작 은이 자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점에서 관객은 은이의 선택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다소 늘어지는 전개와 결말에 관한 설득력의 부족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허나 배우들의 연기 만큼은 최고였다. 상류층 대저택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주인집 부부와 하녀라는 정해진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다 보니 영화 《하녀》는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전도연은 몸을 던지는 연기로 그녀가 왜 ‘칸의 여왕’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전도연이 있기에 영화 《하녀》가 이만큼의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하녀》는 전도연에 의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또한 사건의 전말을 지켜보는 늙은 하녀 병식 역의 윤여정 또한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준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으로 중견 배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뼛속까지 하녀 근성에 젖은 속물 병식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서우 또한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낸다. 《미쓰 홍당무》, 《파주》의 가능성을 가진 신인 배우에서 어느덧 배우 서우로서의 자리를 잡아가는 그녀가 대견하다.

영화 속 유일한 청일점인 이정재는 그간의 댄디한 이미지를 벗고 친절하면서도 비열한 주인집 남자를 연기하며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전도연보다 이정재 노출이 더 과감한 듯 느껴지기도). 첫만남에서 세 명의 여배우들의 기에 눌려 체했다는 농담을 한 그는 상대적으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극의 핵심을 이끄는 인물인 훈을 매끄럽게 연기했다. 제작발표회나 포스터 상으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또 한 명의 여인 박지영은 후반부에 등장해 속물의 전형이자 사건을 만드는 주요 인물인 해라 엄마를 멋지게 소화했다. 그외 《바람난 가족》으로 임상수 감독과 인연을 맺은 문소리가 산부인과 의사로 깜짝 출연해 즐거움을 주기도 했고,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황정민이 은이(전도연)의 친구로 등장해 반가웠다.  



임상수 감독은 영화 《하녀》 속 인물들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에는 하녀인 은이와 주인 부부인 훈과 해라, 해라의 엄마, 그리고 늙은 하녀 병식은 은이와 훈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서로 얽히고 설키며 각자의 입장에 따라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난한 은이는 돈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은 주인집 사람들에게 짓밟히며 상처받고, 모든 것을 가진 주인집 사람들인 훈과 해라, 해라 엄마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욕망의 노예로 살아간다. 그들의 모습에서 빈부 격차로 인한 현대판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 물질적인 부가 만들어낸 권력에 의해 무너지는 인권, 누구나에게 있는 인간 본연의 속물 근성 또는 하녀 근성 등을 곱씹게 한다. 

쉬운 영화도 완전히 공감되는 영화도 아니었지만, 생각지 못했던 엔딩에 다소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서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때깔 좋은 스타일리쉬한 영상과 터질 듯 말듯 팽팽한 기가 서로 맞닿으며 긴장감을 유발하던 배우들의 열연과 찬찬히 곱씹을수록 하나둘 떠오르는 영화 속 메시지들과 잔상들이 나름 괜찮은 영화였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결말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 만큼 공감하지 못함은 다소 아쉽지만, 배우들의 호연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



참, 이번 칸영화제에서도 많은 기대를 모았던 영화 《하녀》는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시》로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과 《하하하》로 비경쟁부분 대상을 차지한 홍상수 감독에게처럼 수상 축하의 박수를 보내지는 못하지만,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칸 영화제의 경쟁부분에 초청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배우 전도연의 다음 작품을 살며시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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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요시다 슈이치의 단편집 <도시여행자>를 읽었다. 담백한 이야기들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여행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들을 간략히 정리해 봤다. :)





 

  워터 / 북스토리 / 2005

요시다 슈이치를 처음으로 만났던 건 그러니깐 그의 중편집 《워터》를 통해서였다. 하릴없이 도서관 책장을 기웃거리다 신간코너의 꽂혀있는 파란색 제본의 작은 양장본을 집어들었다. 한창 일본소설이 붐을 일으키던 때라서 작가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저 일본소설 한번 읽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대출했는데, 그책이 바로 《워터》였다. 그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한동안 뜸했던 도서관을 다시 드나들면서 《상실의 시대》, 《키친》, 《공중그네》 등의 일본소설을 만나기 시작했던 2006년 쯤이 아니었나 싶다. (방금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대출 내역을 찾아보니 정확히 05년 말에서 06년 초였다. ;)  

  워터, 최후의 아들 / 북스토리 / 2007

2005년에 내가 읽었던 《워터》는 두 편의 중편 「워터」와 「최후의 아들」로 함께 있던 중편집이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그책은 절판되었다. 대신 2007년에 《워터》와 《최후의 아들》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각각 재출간되었는데,  《최후의 아들》에는 단편 「파편」이 같이 수록되어 있단다. 그리고 이번에 알았는데, 《최후의 아들》은 제84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한 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이라고.

사실 한 권에 묶기에는 두 편의 중편의 성격이나 분위기가 너무 다르긴 했다. 《워터》는 수영을 소재로 최고기록에 도전하는 4명의 고딩 소년들이 엮어가는 발랄하고 유쾌한 성장스토리로 그 제목처럼 여름날 시원한 물이 주는 청량감을 주는 소설이었다. 반면 《최후의 아들》은 주위로부터 소외받고 외면받는 성적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소 어둡고 진지한 이야기라 읽을 때도 읽은 뒤에도 마음 한 켠에 답답한 짓누름이 남았던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워터>는 내가 가장 먼저 만났던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었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기 전에도, 그리고 읽은 후에도 이책의 작가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편집 <워터>가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이라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에 우연히 그의 작품 목록을 살피다가 발견했다. <워터>의 상큼함이 되살아나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여튼 우연히 읽은 <워터>의 그 이름모를 일본 소설가가 요시다 슈이치였다는 사실은 잠깐이나마 즐거운 사건이었다. 



   나가사키 / 밝은세상 / 2006.12

<워터>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기에 <나가사키>는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읽은 첫번째 작품이었다. 이책 또한 200쪽이 조금 넘기는 꽤 얇은 소설이었는데, 책두께와 달리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요시다 슈이치의 고향이기도 한 나가사키를 제목으로 삼은 이책은, 나가사키의 과거와 현재를 한 야쿠자 집안의 흥망성쇄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워터>의 청량감이나 <최후의 아들>의 무거움과는 달리 <나가사키>에서 그의 문체는 건조하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풍랑을 잘 이용해 번창했던 야쿠자 가문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모습을,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차분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풀어나간다. 너무 잔잔해 솔직히 초반에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짠한 감동을 전해주며 옛날 영화 같은 아련함을 남기는 책이었다. 



   악인 / 은행나무 / 2008.01

요시다 슈이치 하면 생각나는 대표작품으로 많은 이들이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동경만경>이나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제12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그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퍼레이드>를 많이 꼽는 걸 봤다. 하지만 아직 그 작품들을 만나보지 못한 터라 함께 공감할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책과 함께 그의 대표작에 또다른 책이 추가되었다. 바로 2008년 초에 출간된 <악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악인>을 읽은 후 점점 줄여가고 있던 일본작가 목록에 요시다 슈이치를 올려놓게 되었다. 그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인 책이었다. 

<악인>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인물들과 상황을 통해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악의를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로 풀어낸 소설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몇 읽지 않았지만 <악인>은 전보다 한결 자극적인 소재와 진지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단순히 악인으로 점찍혔던 범인의 숨겨졌던 속사정이 드러나고 선량한 보통 시민인 그들의 숨겨졌던 악의를 발견하게 되면서 독자들은 누가 진정한 악인인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악인>은 '일본 신문ㆍ잡지 서평담당자가 뽑은 2007 최고의 책' 1위에 올랐으며,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적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도시여행자 / 노블마인 / 2010.03

올해 출간된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단편집, <도시여행자>. 이책에는 작가가 등단 이후 10년 동안 틈틈이 쓰고 발표했던, 각기 다른 10개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1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열 편의 이야기는 제각각 다른 맛을 내보이는데, 그속에 녹있는 10년이란 세월을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열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도쿄, 오사카, 상하이, 서울 등 다양한 도시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공간도 인물도 주제도 분위기도 모두 다르지만,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의 미세한 순간 또는 감정들을 잡아내어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의 문체가 주는 맛은 여전하다. 옮긴이는 그런 일관된 기조를 '요시다다움'이라고 표현하는데, 이책을 읽다보면 그말에 동조하게 된다.



이책의 원제는 마지막 열 번째 단편인 「캔슬된 거리의 안내(キヤンセルされた街の案內)」와 같다고 한다. 그러니 <도시여행자>라는 제목은 우리나라에서 지은 제목일 게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원제보다 우리말 번역판 제목이 이책과 더욱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하드커버에 지도를 그려넣은 표지 디자인 또한 책과 잘 맞아떨어진 듯하다. 재미있는 건 커버의 지도를 자세히 보면 각 단편에 등장했던 장소들이 여기저기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단편마다 그 장소를 찾는 즐거움이 덤으로 주어진다. :)






 
 - 우리나라에 번역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들(최근 출간일 순) -








↑ 책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상세페이지로 연결된답니다. ^ㅅ^
 

 


이제껏 내가 읽었던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전부 5종 4권에 불과하다는 점은, 작가의 인기나 지명도에 비해서는 조금 놀라운 수치였다. 하긴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엄청난 수의 작품을 쏟아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도 아직 한 권 밖에 만나지 못했으니 그리 부진한 성적이 아닐런지도 모르겠다.

남자 작가지만 여자 작가들 못지 않게 소소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요시다 슈이치의 책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그만의 매력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데 모아둔 그의 작품들을 보니 궁금해지는 책이 점점 늘어난다.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동경만경>, <퍼레이드>은 물론 전부터 궁금했던 <일요일들>, <사요나라 사요나라>, <요노스케 이야기> 등도 언젠가 인연이 닿는 날이 있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




그나저나 이글을 읽는 당신~
그동안 요시다 슈이치의 어떤 책들을 만나보셨는지,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은지
제게 살짝 알려주시지 않으실런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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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털어라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 뉴욕을 털어라 (The Hot Rock)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 이원열 옮김 | 시작(웅진) | 2010.05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책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책은 바로 그런 때 만났고 비교적 적절한 선택이었다. 추리소설을 자주 접하진 않지만 즐겁게 읽는 편이다. 피범벅의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하드고어보다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심리스릴러를 더 선호하지만 사실 코믹함이 가미된 가벼운 추리소설을 가장 즐긴다.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고 중간중간 비집고 나오는 웃음에 유쾌해지는 게 좋아서 한동안은 이사카 고타로의 추리소설들을 여럿 읽기도 했다. 범죄를 소재로 하지만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의 활약(?)하는 《뉴욕을 털어라》 또한 그런 가볍고 코믹한 범죄추리소설이다.  

전문털이범 도트문더는 모범적인 수형 생활로 가석방의 특전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 그는 탈옥을 위해 자신의 감방에서 양호실까지 터널을 뚫어둔 상태였고, 갑작스런 가석방에 그 감방을 다른 죄수에게 300달러에 팔기로 했으나 교도소장이 정문까지 배웅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져 빈털털이로 교도소 정문을 나서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옛동료 켈프의 위험천만한 마중에 정신줄을 놓을 뻔 했던 도트문더는 그간 참았던 짜증을 쏟아낸다. 그러나 '새로운 건수'을 제안하는 켈프의 이야기에 도트문더는 전문가답게 불평을 접고 진지한 자세로 '한탕'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다.

아프리카의 탈라보와 아킨지는 영국식민지에서 벗어난 뒤 내분으로 갈라진 나라다. 여기에는 예로부터 신성시하던 거대한 에메랄드 보석이 있는데, 나라가 나뉘면서 에메랄드가 모셔진 곳은 아킨지의 소유가 됐다. 원래 보석을 지니고 있었던 부족인 탈라보는 보석을 원했으나 아킨지는 그것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보석을 포기할 수 없었던 탈라보는 UN 주재 아프리카 대사 아이코 대령을 통해 때마침 미국 순회 전시중인 에메랄드를 훔쳐 빼돌릴 계획을 세웠고, 그들의 의뢰를 받아들인 도트문더와 켈프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드림팀을 만들고 계획에 착수한다.

그들의 멤버는 뛰어난 차량 절도를 자랑하는 켈프, 모든 길을 꿰뚫고 있는 자동차 속도광 스탠 머치, 바랑둥이이자 장비 전문가인 앨런 그린우드, 세상의 모든 자물쇠를 무력화 시키는 자물쇠 털이 체프윅, 그리고 모든 계획을 세우고 진두지휘하며 팀을 이끌어가는 도트문더까지 다섯 명이다. 뛰어난 계획과 실행력, 그리고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드림팀은 철통보완 속에 전시중이던 에메랄드 보석을 훔쳐내는 데 성공하지만, 보석을 갖고 있던 그린우드가 경찰에 잡히면서 가뿐하게 끝내려던 그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에멜랄드를 포기할 수 없는 탈라보의 아이코 대령은 그들을 닦달하고 도트문더와 그의 멤버들은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워 완전 범죄에 도전한다. 그리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에메랄드 절도 사건은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태클을 걸며 그들의 소망과는 달리 계속해서 꼬여만 간다. 기필코 에메랄드를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다시 뭉친 그들의 에메랄드 절도 범죄는 점점 그 스케일이 커지고 대담해진다. 그들은 과연 에메랄드를 훔쳐낼 수 있을까. 그러나 사라진 에메랄드를 되찾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로부터 미스터리 작가 최고의 영예인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받은 미국 추리소설계의 거장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는 어느날 '만약 실패를 거듭하여 같은 물건을 네댓 번 훔쳐야 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도 범죄자인 안티 액션 히어로이지만 소시민적인 성향을 가진 주인공으로 내세운 범죄물을 즐겁게 써내려가던 그는, 그러나 어느 순간 슬럼프에 빠져 글쓰기를 멈춘다. 그렇게 버려질 뻔했던 원고 뭉치는 기적적으로 2년 후 옷장에서 발견되었고 그후 세상에 태어났다. 이런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안고 탄생한 책이 바로 이책 《뉴욕을 털어라》다.

《뉴욕을 털어라》는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도트문더와 그의 친구들이 탈라보가 의뢰한 에메랄드를 손에 넣기 위해 계속해서 절도 범죄를 반복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찌나 지지리도 운이 없는지 '머피의 법칙'이란 말은 그들을 위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꼬여가는 그들의 운과 다시 그것을 풀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이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또한 두서없는 말로 도트문더를 짜증에 빠뜨리는 켈프나 바람둥이 그린우드, 락음악과 속도에 미친 머치, 밤엔 남의 자물쇠를 따지만 아내에겐 한없이 상냥한 체프윅 등 각자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앙상블 또한 이책의 재미다.

코믹범죄추리소설 《뉴욕을 털어라》는 거듭되는 범죄와 실패, 배신, 그리고 깜짝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범죄추리소설이라고 하나 전개와 결말이 예상 가능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이책이 발표된 시기가 70년대임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치밀하고 놀라운 범죄계획보다 거듭되는 계획의 실패와 등장인물들이 좌충우돌하며 엮어내는 웃음에 더 포인트를 두는 책이기에 읽는 동안 가볍게 즐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무료하고 심심한 날 가볍게 읽기에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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