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 The housemaid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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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녀 │ 임상수 감독 │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서우, 박지영 │ 2010.05.13



2010년 상반기 개봉작 중 가장 큰 기대와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단연 《하녀》가 아닐까 싶다.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칸의 여왕’ 전도연의 출산 후 3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며 故 김기영 감독의 걸작 《하녀》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끄집어내는 문제적 감독 임상수 감독의 연출작이자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강도 높은 노출씬에 대한 궁금증이 한데 어우러져 영화 《하녀》는 그 모습을 공개하기까지 호기심을 부추겼다. 그와 함께 《밀양》으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와 함께 칸 영화제 경쟁부분 진출이라는 낭보는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욱 증폭시켰다. 



나 역시 그런 기대로 말미암아 개봉 첫주에 부랴부랴 영화관을 찾았다. 나를 영화관으로 부른 건 화제성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것보다도 전도연과 전도연과 임상수라는 배우와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전도연의 영화는 데뷔작 《접속》부터 《하녀》까지 대부분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만났고 모든 영화를 빠지지 않고 챙겨봤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가 좋았다. 행여 영화는 그냥 그렇더라도 그녀의 연기는 늘 빛났다. 어떤 역을 맡든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그녀는 늘 실망시키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배우 전도연에 대한 믿음은 그녀의 연기와 작품들을 바탕으로 커져갔다. 그렇기에 전도연이 출연하는 영화가 궁금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임상수 감독과의 첫 인연은 《바람난 가족》으로 시작됐다. 《오아시스》에서 반했던 문소리가 출연한다기에 봤던 영화지만 온가족이 바람난 콩가루 집안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황석영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본 뒤론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원작소설 만큼이나 영화도 좋았다. 반면 많은 화제를 낳았던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나 오랜 기간 법정다툼 끝에 영화의 앞부분이 암흑으로 뒤덮였다는 문제작 《그때 그 사람들》은 아직 보질 못했다. 그러고보니 《하녀》는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이다. 이번에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나쁘진 않았다. 점점 임상수 스타일에 빠져들 듯하다. 



영화 개봉 전 만난 대부분의 신문기사에는 영화 《하녀》를 ‘상류층 가정의 하녀로 들어간 한 여자가 주인집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파격적 스토리를 그린 에로틱 스릴러’라고 소개하고 있다. 허나 영화는 예고편이나 스틸컷만큼 그렇게까지 에로틱하진 않다. 노출 장면이 적지는 않지만 그 강도가 그리 쎄진 않다. 워낙 개봉전 노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상대적으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한 김기영 감독의 원작처럼 이 영화 또한 스릴러일 거라고 기대했었으나 스릴러라고 하기엔 극의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파격적 또는 황당한 결말 또한 스릴러라고 부르기엔 다소 애매함을 느끼게 해준다. 스릴러라기보다는 오히려 블랙코미디에 가깝지 않나 싶다. 즉, 노출이나 반전에 대한 기대가 컸다면 그만큼 실망하기 딱 좋다는 이야기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작이지만, 상류층 가정의 하녀로 들어간 주인공이 주인집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어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기본적인 골격 이외에는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할 수 있단다. 시대가 바뀐 만큼 주인공들의 나이나 직업, 주변 상황들이 확연히 달라졌다. 영화 속 모든 일을 꿰뚫어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해주며 중간중간 웃음을 전해주는 캐릭터인 늙은 하녀 병식 또한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라고. 물론 결말도 다르다. 그럼에도 《하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故 김기영 감독의 원작 《하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하녀》 속에 기억되는 장면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다큐 같던 오프닝과 블랙 코미디 같던 묘한 엔딩 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밤거리에서 투신 자살하는 한 여자를 보여주는 영화의 오프닝은 주인공 은이가 속해 있는 현실과 사람들의 무관심 등을 보여주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을 깔아둔다. 일하던 식당을 그만두고 은이가 하녀로 일할 대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그녀가 살았던 현실의 풍경은 사라지고 대신 제한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인 대저택에서 극화된 상황들이 펼쳐진다. 다큐에서 연극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버림받고 상처받은 은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감행하는 충격적 또는 황당한 반전 뒤 끝을 알리는 엔딩 크레딧 직전에 등장하는 짧은 엔딩씬은 영화의 결말보다 더 기묘하다. 영화의 충격(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반전 못지 않게 그들이 등장하는 엔딩씬은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에 충분했다. 나 또한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같이 본 친구와 그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을 정도니 말이다. 갖가지 추측과 짐작이 난무하던 그 의문은 칸을 찾은 임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됐다. 하지만 조롱이 아닌 트라우마를 표현했다는 감독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감곧의 냉소 어린 시선이 여전히 느껴지는 건 나뿐일런지. 



임상수 감독은 대가의 작품을 리메이크 하면서도 특유의 자기 스타일을 고수한다. 원작을 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원작에 대한 정보가 거의 백지에 가까운 상태로 영화를 본 나는 그런 임상수 스타일이 나쁘지 않았다. 감독과 미술팀이 특별히 공들였다는 대저택의 사치스러운 상류층의 모습은 영화의 때깔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영화는 은이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관객의 공감을 넓게 형성하지는 못한 듯하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힘도 없고 백도 없는 하녀인 은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작 은이 자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점에서 관객은 은이의 선택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다소 늘어지는 전개와 결말에 관한 설득력의 부족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허나 배우들의 연기 만큼은 최고였다. 상류층 대저택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주인집 부부와 하녀라는 정해진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다 보니 영화 《하녀》는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특히 전도연은 몸을 던지는 연기로 그녀가 왜 ‘칸의 여왕’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전도연이 있기에 영화 《하녀》가 이만큼의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하녀》는 전도연에 의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또한 사건의 전말을 지켜보는 늙은 하녀 병식 역의 윤여정 또한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준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으로 중견 배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뼛속까지 하녀 근성에 젖은 속물 병식을 멋지게 소화해냈다. 서우 또한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낸다. 《미쓰 홍당무》, 《파주》의 가능성을 가진 신인 배우에서 어느덧 배우 서우로서의 자리를 잡아가는 그녀가 대견하다.

영화 속 유일한 청일점인 이정재는 그간의 댄디한 이미지를 벗고 친절하면서도 비열한 주인집 남자를 연기하며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전도연보다 이정재 노출이 더 과감한 듯 느껴지기도). 첫만남에서 세 명의 여배우들의 기에 눌려 체했다는 농담을 한 그는 상대적으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극의 핵심을 이끄는 인물인 훈을 매끄럽게 연기했다. 제작발표회나 포스터 상으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또 한 명의 여인 박지영은 후반부에 등장해 속물의 전형이자 사건을 만드는 주요 인물인 해라 엄마를 멋지게 소화했다. 그외 《바람난 가족》으로 임상수 감독과 인연을 맺은 문소리가 산부인과 의사로 깜짝 출연해 즐거움을 주기도 했고,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황정민이 은이(전도연)의 친구로 등장해 반가웠다.  



임상수 감독은 영화 《하녀》 속 인물들을 통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에는 하녀인 은이와 주인 부부인 훈과 해라, 해라의 엄마, 그리고 늙은 하녀 병식은 은이와 훈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서로 얽히고 설키며 각자의 입장에 따라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난한 은이는 돈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은 주인집 사람들에게 짓밟히며 상처받고, 모든 것을 가진 주인집 사람들인 훈과 해라, 해라 엄마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욕망의 노예로 살아간다. 그들의 모습에서 빈부 격차로 인한 현대판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 물질적인 부가 만들어낸 권력에 의해 무너지는 인권, 누구나에게 있는 인간 본연의 속물 근성 또는 하녀 근성 등을 곱씹게 한다. 

쉬운 영화도 완전히 공감되는 영화도 아니었지만, 생각지 못했던 엔딩에 다소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서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때깔 좋은 스타일리쉬한 영상과 터질 듯 말듯 팽팽한 기가 서로 맞닿으며 긴장감을 유발하던 배우들의 열연과 찬찬히 곱씹을수록 하나둘 떠오르는 영화 속 메시지들과 잔상들이 나름 괜찮은 영화였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결말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 만큼 공감하지 못함은 다소 아쉽지만, 배우들의 호연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



참, 이번 칸영화제에서도 많은 기대를 모았던 영화 《하녀》는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시》로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과 《하하하》로 비경쟁부분 대상을 차지한 홍상수 감독에게처럼 수상 축하의 박수를 보내지는 못하지만,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칸 영화제의 경쟁부분에 초청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배우 전도연의 다음 작품을 살며시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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