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 꾼 :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 이화경 | 뿔(웅진출판사) | 2010.01 


소설을 좋아하고 또 즐겨 읽는 편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해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즐거움을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책으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한때 잠시의 변심으로 소설을 멀리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가까운 또는 가장 즐기는 장르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이야기를 담은 소설책이다. 흔히 소설은 삶의 이야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소설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겪으면서 나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또다른 삶을 이야기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더 깊은 인생을 배워간다. 때때로 잠시나마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는 일탈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소설책을 잡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기나긴 부제는 소설 《꾼》의 내용을 한줄로 압축해준다. 그럼에도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대목은 여전히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물론 그 '책'은 '공자 왈 맹자 왈'을 외는 양반네들의 점잖은 책이 아니라 조선 후기 급속히 번성했던 '패관소품', 즉 이야기책을 뜻한다. 조선 후기 이야기책을 생각하니, 책 읽어주는 남자는 아니지만, 당대의 문장가인 주인공이 필명으로 몰래 음란 소설 쓰기에 빠져드는 내용을 담은 김대우 감독의 영화 「음란서생」이 떠올랐다. 또한 같은 감독의 최근 개봉 영화 「방자전」에서도 방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는 작가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만큼 조선 후기에 많은 이들이 이야기책에 매료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운득은 성균관 유생들의 잡다한 심부름이나 하던 미천한 신분의 반인이었다. 성균관에서 패관소품체에 빠져있던 이결 선생을 모시게 되면서 운득은 이야기의 맛을 알게 된다. 그러나 패관소품체로 나라님의 노여움을 산 이결 선생은 성균관을 떠나고, 그뒤 운득은 윤 상좌 일행의 금강산 유람에 따라 나섰다가 죽을 고비를 맞는다. 겨우 살아난 그는 비천한 반인의 운명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스스로 지은 이름은 김흑(金黑), 검은 쇠, 검은 놈이란 뜻을 품었다. 등짐을 지고 정처없이 전국을 떠돌면서 김흑은 이야기에 즐거워하고 분노하고 눈물짓는 사람들을 보며 더욱 이야기에 매료되고, 우연히 본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진정한 이야기에 눈 뜨게 된다.

소설 《꾼》에는 주인공 김흑 외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야기와 사랑에 미친 이야기꾼 김흑의 이야기를 기둥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과거의 어린 운득, 이결 선생, 나라님 정조 대왕, 영의정 노옹과 그의 걷지 못하는 딸 유리의 이야기들이 제각각 이어지며 서로 얽히고설킨다. 성균관 인연에서는 운득과 이결 선생이, 패관소품체와 문체반정에서는 이결 선생과 정조 대왕이, 사도세자의 복권에서는 정조와 노옹이, 부정(父情)과 사랑의 삼각 관계에서는 노옹과 유리와 김흑 등의 관계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는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와 그것에 빠져든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알알이 엮여들며 잔재미를 선사한다.

-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이야기꾼이 되고자 하는가? 그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인가? 자네는 아는가? 세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왜냐하면 세계는 눈에 보이는 대상이 아니라 오직 생각 속에서만 열리고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일세. (중략) 이 무서운 존재와 세상의 이야기가 시시한 우리를 구원한단 말일세.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위대하고도 위험한 것일세. 알겠는가? (108-109쪽)


《꾼》은 이야기에 매료되고 사랑에 미친 사내 김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가 살았던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패관기서와 소품들이 성행하던 조선 후기에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풍경과 그런 시대적 상황에 발맞춰 등장한 '책을 읽어주는' 책비의 존재가 그것이다. 레몽 장의 소설 《책 읽어주는 여자》에서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는 그저 '책만' 읽어주는 게 아니다. 그들이 가진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어준다.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김흑 또한 책 속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들의 가슴 속 응어리를 매만진다. 물론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야기를 빙자한 '조선의 카사노바'라고 할 수 있겠다. 유리에 대한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그런 반감을 희석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과연 모든 대가댁 마나님들은 그의 또다른 서비스(?)를 한결같이 즐거워했을까? 정녕 순수하게 이야기만 듣고 싶어한 이는, 그의 행위에 반감을 가진 이는 없었을까? 이책에서 그런 의문은 거의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그리고 이책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정조다. 패관소품에 열광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인 문체반정(文體反正)에 대한 신념과 고집, 평생의 숙원인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둘러싸고 깊어지는 고민, 그리고 꾸며낸 이야기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는 동안 쌓인 아픔 등 정조에 대한 이야기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이어지며 김흑 못지 않은 자리를 차지한다. 초반에 산속 나뭇꾼이 들려준 '여덕아국(유대)의 야소(예수) 이야기'는 김흑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계기가 되면서 동시에 야소의 고난을 사도세자의 비극과 견줌으로써 그 시대에 일어난 진짜 놀라운 이야기에 대한 포석을 깔아둔다.

- 소설이 없는 것을 꾸며내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어린 운득은 그 모년(某年)의 화변이야말로 정작 소설이 되어버리고 만 니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금은 그토록 끔찍하게 소설체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비의 죽음을 없었던 이야기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대해 그건 허구가 아니라며 맞서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나라님의 마음을 감히 뉘라서 어찌 알 수 있겠는가. (91-92쪽)


이화경의 소설 《꾼》은 사랑에 빠진 이야기꾼 김흑과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임금 정조와 함께 조선 후기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인물들의 사연이 제각각 흘러가다 보니 시선이 분산되어 전체적으로 산만하게 느껴졌다. 때때로 현실이 이야기인 듯 이야기가 현실인 듯 전개되는 대목은 사극 판타지의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독자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러나 주인공 김흑이 이야기에 매료되고 책 읽는 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더뎌 다소 지루하고, '이야기 하나로 조선을 희롱'했다고 하기엔 김흑의 이야기와 사랑과 비극이 큰 역할을 보이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허나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욕망을 표현해냈다는 점은 소설 《꾼》의 장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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