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털어라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이원열 옮김 / 시작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 뉴욕을 털어라 (The Hot Rock)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 이원열 옮김 | 시작(웅진) | 2010.05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책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책은 바로 그런 때 만났고 비교적 적절한 선택이었다. 추리소설을 자주 접하진 않지만 즐겁게 읽는 편이다. 피범벅의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하드고어보다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심리스릴러를 더 선호하지만 사실 코믹함이 가미된 가벼운 추리소설을 가장 즐긴다.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고 중간중간 비집고 나오는 웃음에 유쾌해지는 게 좋아서 한동안은 이사카 고타로의 추리소설들을 여럿 읽기도 했다. 범죄를 소재로 하지만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의 활약(?)하는 《뉴욕을 털어라》 또한 그런 가볍고 코믹한 범죄추리소설이다.  

전문털이범 도트문더는 모범적인 수형 생활로 가석방의 특전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 그는 탈옥을 위해 자신의 감방에서 양호실까지 터널을 뚫어둔 상태였고, 갑작스런 가석방에 그 감방을 다른 죄수에게 300달러에 팔기로 했으나 교도소장이 정문까지 배웅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져 빈털털이로 교도소 정문을 나서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옛동료 켈프의 위험천만한 마중에 정신줄을 놓을 뻔 했던 도트문더는 그간 참았던 짜증을 쏟아낸다. 그러나 '새로운 건수'을 제안하는 켈프의 이야기에 도트문더는 전문가답게 불평을 접고 진지한 자세로 '한탕'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다.

아프리카의 탈라보와 아킨지는 영국식민지에서 벗어난 뒤 내분으로 갈라진 나라다. 여기에는 예로부터 신성시하던 거대한 에메랄드 보석이 있는데, 나라가 나뉘면서 에메랄드가 모셔진 곳은 아킨지의 소유가 됐다. 원래 보석을 지니고 있었던 부족인 탈라보는 보석을 원했으나 아킨지는 그것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보석을 포기할 수 없었던 탈라보는 UN 주재 아프리카 대사 아이코 대령을 통해 때마침 미국 순회 전시중인 에메랄드를 훔쳐 빼돌릴 계획을 세웠고, 그들의 의뢰를 받아들인 도트문더와 켈프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드림팀을 만들고 계획에 착수한다.

그들의 멤버는 뛰어난 차량 절도를 자랑하는 켈프, 모든 길을 꿰뚫고 있는 자동차 속도광 스탠 머치, 바랑둥이이자 장비 전문가인 앨런 그린우드, 세상의 모든 자물쇠를 무력화 시키는 자물쇠 털이 체프윅, 그리고 모든 계획을 세우고 진두지휘하며 팀을 이끌어가는 도트문더까지 다섯 명이다. 뛰어난 계획과 실행력, 그리고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드림팀은 철통보완 속에 전시중이던 에메랄드 보석을 훔쳐내는 데 성공하지만, 보석을 갖고 있던 그린우드가 경찰에 잡히면서 가뿐하게 끝내려던 그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에멜랄드를 포기할 수 없는 탈라보의 아이코 대령은 그들을 닦달하고 도트문더와 그의 멤버들은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워 완전 범죄에 도전한다. 그리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에메랄드 절도 사건은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태클을 걸며 그들의 소망과는 달리 계속해서 꼬여만 간다. 기필코 에메랄드를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다시 뭉친 그들의 에메랄드 절도 범죄는 점점 그 스케일이 커지고 대담해진다. 그들은 과연 에메랄드를 훔쳐낼 수 있을까. 그러나 사라진 에메랄드를 되찾는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미스터리작가협회로부터 미스터리 작가 최고의 영예인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받은 미국 추리소설계의 거장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는 어느날 '만약 실패를 거듭하여 같은 물건을 네댓 번 훔쳐야 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도 범죄자인 안티 액션 히어로이지만 소시민적인 성향을 가진 주인공으로 내세운 범죄물을 즐겁게 써내려가던 그는, 그러나 어느 순간 슬럼프에 빠져 글쓰기를 멈춘다. 그렇게 버려질 뻔했던 원고 뭉치는 기적적으로 2년 후 옷장에서 발견되었고 그후 세상에 태어났다. 이런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안고 탄생한 책이 바로 이책 《뉴욕을 털어라》다.

《뉴욕을 털어라》는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도트문더와 그의 친구들이 탈라보가 의뢰한 에메랄드를 손에 넣기 위해 계속해서 절도 범죄를 반복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찌나 지지리도 운이 없는지 '머피의 법칙'이란 말은 그들을 위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꼬여가는 그들의 운과 다시 그것을 풀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이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또한 두서없는 말로 도트문더를 짜증에 빠뜨리는 켈프나 바람둥이 그린우드, 락음악과 속도에 미친 머치, 밤엔 남의 자물쇠를 따지만 아내에겐 한없이 상냥한 체프윅 등 각자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앙상블 또한 이책의 재미다.

코믹범죄추리소설 《뉴욕을 털어라》는 거듭되는 범죄와 실패, 배신, 그리고 깜짝 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범죄추리소설이라고 하나 전개와 결말이 예상 가능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이책이 발표된 시기가 70년대임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치밀하고 놀라운 범죄계획보다 거듭되는 계획의 실패와 등장인물들이 좌충우돌하며 엮어내는 웃음에 더 포인트를 두는 책이기에 읽는 동안 가볍게 즐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무료하고 심심한 날 가볍게 읽기에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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