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3~4주



유난히 길었던 이번 추석 연휴에는 극장가를 채우는 영화들도 다양했는데, 그에 발맞춰 나 역시 열심히 개봉작들의 대부분을 챙겨봤다. 추석 연휴가 극장가로선 워낙 대목장이라 기대작들이 대거 개봉하는 바람에 서울도 아닌 이런 지역 극장에 개봉 전 주말 유료시사회 상영이 잡히기까지 했다. 덕분에 조금 더 일찍 영화를 보긴 했지만서두. ㅎㅎ

연휴 한 주 전 먼저 개봉한 설경구 주연의 액션영화 《해결사》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와 함께 (→ 개봉 다음주), 연휴를 맞아 '대개봉'한 김현석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시라노; 연애조작단》, 장진 사단의 한바탕 코미디 《퀴즈왕》 (→ 개봉 전 주말 유료시사회), 홍콩 필름누아르의 고전 《영웅본색》의 리메이크작인 《무적자》, 얼마전 민간인이 된 양동근의 복귀작 《그랑프리》를 (→ 개봉날), 그리고 추석 연휴가 지나고 이번주에 개봉을 준비하는 김인권 주연의 코미디 《방가?방가!》까지 (→ 개봉전 주말 유료시사회) .. 추석 시즌 전부터 지금까지 대략 3주 동안 총 7편의 영화를 봤다. ^^; 아!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는 무지 보고 싶었지만, 전국 상영관이 손꼽힐 정도라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그간 관람한 7편의 영화들을 온전히 개인적 감상에 의해 순위를 매겨 보면 대략 이 정도..
 시라노; 연애조작단 > 방가?방가! > 마루 밑 아리에티, 퀴즈왕, 해결사 > 그랑프리, 무적자

물론 취향에 따라 감상에 따라 순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태클은 사양한다능~ ^^;
마음 같아서는 7편의 영화 모두 공들인 리뷰를 쓰고 싶지만 체력 저하로 그냥 간단한 단평으로 남겨볼까 한다.
(.. 그런데 이거 다 쓰는 데도 시간이 엄청 걸렸다. 팔에 쥐 날 뻔.. ㅠ ,ㅠ)






이번 추석 시즌에 개봉한 영화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과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라면 단연 김현석 감독의 사랑스런 로맨틱 코미디 《시라노; 연애조작단》일 것이다. 전작 《광식이 동생 광태》를 통해 이미 탁월한 웃음과 이야기를 선보였던 김현석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한껏 발휘한다. 오래도록 곱씹을만한 대사와 곳곳에 배치한 웃음, 현실과 닿아있는 이야기들은 조금씩 성장해가는 캐릭터들을 통해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네 명의 주인공은 물론 조연의 연기들도 좋다. 특히 송새벽과 박철민의 코믹 연기는 큰 웃음을 안겨주신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또는 사랑을 시작하거나 사랑을 하고 싶은 이들이 보면 더욱 좋을 영화. 로맨틱 코미디답게 영화가 끝난 후 기분좋게 극장을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





이번주 개봉을 준비중인 육상효 감독의 코미디 영화 《방가?방가!》. 연휴 끝머리인 이번 주말에 유료시사회로 미리 만났다. 《방가?방가!》는 '백수 탈출 취업 성공'을 위해 부탄인으로 위장취업하는 청년 백수 방태식의 취업 분투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로, 영화《해운대》에서 미친존재감을 보여줬던 개성파 배우 김인권의 첫 주연작이기도 하다. 연기 잘 하는 배우지만 아직 티켓파워는 약한 김인권의 원톱에 전혀(!) 끌리지 않는 유치한 제목(웬 방가;;)이 별다른 감흥을 주진 못했는데, 이 영화, 생각보다 재밌었다. 웃으면서도 청년백수, 이주노동자 차별 등의 현실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도 좋았고. 물론 이주노동자로 위장 취업한다는 설정상의 무리수나 후반부의 드라마 전환 등은 좀 아쉬웠지만, 김인권-김정태 콤비의 코믹 연기도 좋았고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도 괜찮았다. 이제 김인권도 개성파 조연 배우에 머무르지 않고 주연 배우로 발돋움 하는 것인가! 두둥~! :)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신작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 인간의 집 마루 밑에 살며 인간의 물건을 '빌려'쓰는 10cm 소인족인 아리에티가 소년 쇼우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3D 애니메이션이 주가를 올리는 요즘 현실에서 굳이 3D가 아니어도 충분히 관객과 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지브리의 자신감이 그동안 많은 애니들을 통해 보아왔던 지브리 특유의 화면들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빨래집게로 머리를 묶고 재봉핀을 칼처럼 허리에 찬 아리에티가 소인족의 규칙을 어기는 순간 고난은 시작됐지만, 소녀와 소년이 진심어린 우정을 나누고 그것을 통해 삶의 또다른 희망을 얻는 모습은 따듯하다. 다만 일본영화 《4월 이야기》가 끝났을 때와 비슷한 당혹감을 이 영화에서도 만났다. 영화에 대한 사전 기대가 너무 컸거나 또는 아리에티의 인간 세상 속 모험이 조금 밋밋하게 느껴진 듯;;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52년 발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메리 노튼의 《마루 밑 바로우어즈》가 그것으로, 사람들의 물건을 빌려 쓰는 작은 종족 '바로우어즈'들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동화다. 저자 메리 노튼에게 카네기상 수상의 영광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기회되면 만나봐야겠다. :)





추석하면 코미디 영화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의 흥행성적을 보면 그건 옛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온가족이 모이는 추석에 코미디 영화가 빠질 수는 없는 법, 이번 연휴에는 장진 감독의 《퀴즈왕》이 나섰다. 소위 '장진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영화 《퀴즈왕》은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는 애초 그들의 취지처럼 제각각 색깔이 뚜렷한 배우들이 작심하고 코믹 연기를 펼쳐보인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웃기려드니 안 웃을 수 없다. 웃긴다. 특히 까메오로 출연한 정재영과 임원희, 이한위는 큰 웃음을 던져준다. 류승룡의 코믹 연기도 인상적이었고. 총 4억이 안 되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보니 영화가 좀 거칠고 전반부의 파출소 후반부의 퀴즈쇼라는 한정된 장소가 다소 답답하긴 하지만, 장진 특유의 엇박자 웃음과 연극적 상황에서 벌어지는 집단 코믹상황극으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다. 다만 마지막 엔딩은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함이 남는 건 아쉽다. 이한위의 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덧붙여도 재미있었을 듯한데. ㅎㅎ





불꽃튀는 추석 개봉작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마루 밑 아리에티》와 함께 한발 먼저 관객의 입소문을 선점한 영화 《해결사》. 초기작에서 미친연기력을 보여줬던 설경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그래도 구관이 명관, 일단 주연이 설경구면 먹고 들어가는 점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 역시 주연보다 조연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개성파 조연 배우 오달수와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송새벽 콤비가! 특히 극장가의 대목인 추석 시즌에 동시에 두 편의 영화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송새벽은 그 더듬거리는 사투리톤의 대사만으로도 빵빵 터트려준다. 코믹연기의 달인 오달수는 물론이고 온갖 고생 다 하는 윤대희 역의 이성민의 코믹 연기도 큰 웃음을 전해준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현란한 오프닝처럼 《해결사》는 빠른 템포로 숨가쁘게 진행된다. 너무 빨라 내 친구처럼 뭔 얘긴지 모르겠다는 이들도 있지만. 덕분에 지루하진 않다. 액션영화답게 눈이 시원한 화끈한 액션도 등장한다. 별 생각없이 즐기기 좋은 액션영화다.





이번에 본 7편의 영화 중 가장 안습이었던 영화 두 편, 《그랑프리》와 《무적자》.
두 영화 모두 별 기대를 안 하고 봤음에도 역시나, 별로였다. - _-;

송해성 감독의 《무적자》는 원작인 《영웅본색》을 안 본 터라 원작과의 비교가 힘들지만, 리메이크 여부를 떠나 영화 자체로도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였다. 남성성을 의식한 아드레날린 과잉, 감정 과잉의 영화라고나 할까. 송승헌이 '행복한 새끼'라는 대사를 내뱉는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무슨 대사가..;; 많은 돈을 쏟아부어 만든 영화임에도 이야기도 연출도 연기도 모두 그저그랬다. 그나마 그간 '상대배우 띄워주기 전문'이라 불렸던 주진모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다. 송해성 감독에게서 다시 《파이란》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려본다.





경마를 소재로 한 양윤호 감독의 《그랑프리》는 김태희가 첫 원톱으로 나선 영화다. 원톱 김태희가 아닌 민간인이 된 양동근의 연기를 보러 갔는데 우석의 닭살돋는 애정공세에 손발이 오그라들뿐 아쉽게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김태희가 출연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드라마 《아이리스》는 안 봐서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연기력은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영화에서도 여전히 책을 읽던 김희선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이끌어갈 원톱으로서의 역량은 아직 부족한 듯. 뭐, 그래도 예쁘긴 예쁘더라. ㅋ

영화 속 어떻게 굴러갈지 뻔히 보이는 스토리와 구태의연한 연기보다 나를 더 당혹스럽게 만든 건 바로 영화 속 사투리 사용이었다. 아예 지역 방언을 무시하고 표준어로 통일하던가 아님 현실감있게 적절한 사투리를 사용하던가 해야 할 텐데, 두 주인공과 목장의 일꾼들은 그렇다쳐도 제주 4.3사건까지 겪었던 제주 토박이 목장 주인들도 당연하게 서울말을 하는 마당에 혼혈소녀 소심이만 꿋꿋하게 제주 사투리를 구사한다. 대체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 건지.. - ,-;



경마를 소재로 말과 인간의 우정을 다루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랑프리》는 임수정 주연작 《각설탕》과 닮은 구석이 많다. 고난을 겪은 주인공이 주변의 격려로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에 이른다는 스토리나 제주도가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그렇고. 물론 《각설탕》은 《그랑프리》와 달리 천둥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새드앤딩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꼭 둘 중 한 편을 고르라면, 나는《각설탕》의 손을 들어주련다. 적어도 임수정의 연기가 더 좋았다. 갠적으로 더 재밌게 보기도 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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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3~4주

연휴 기간부터 푸짐했던 이번 추석 연휴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가를 장식했다. 
그 다양함이 궁금해 거의 모든 영화를 섭렵했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본 개봉 영화가 <그랑프리>였다.
영화를 보면서 단지 말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비슷한 몇 편의 영화가 머릿속을 떠올랐다.
그리하여 말이 등장하는, 말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다룬 영화 몇 편을 살짝쿵 살펴볼까 한다. ^^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함께 했던 양윤호 감독과 김태희가 다시 만났다. 급히 군입대하느라 자리를 비운 이준기 대신 예전 <바람의 파이터>로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얼마전 민간인이 된 양동근이 합류했다. 영화를 촬영할 때부터 김태희와 양동근의 만남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 적절한 조합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처음 캐스팅 그대로 이준기가 연기했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진 않았을 듯하다. 양동근의 연기가 나빴던 건 아니었으니까.

경주 중 사고를 당한 기수 주희는 어깨 부상과 함께 자신의 말 푸름이를 잃는다. 그 충격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제주도로 내려온 주희는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우석을 만나고, 그의 진심어린 격려와 도움으로 다시 달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자신의 말 푸름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하던 주희는 제주에서 만난 말 탐라와 다시 함께 함으로써 용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탐라와 다시 선 승마장, 주희는 우승을 향해 힘껏 달려간다.

경주마와 기수가 등장하지만 <그랑프리>는 인간과 말과의 교감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사건과 탐라를 사이에 둔 유정의 가혹한 제안에 갈등하는 만출을 막는 주희의 행동 정도가 눈에 띌까. 그외 소심이가 탐라와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기수로서 탐라를 대하는 몇 컷 정도가 전부다. 오히려 말과 사람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그것을 통한 상처의 극복을 다루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랑프리>는 스토리도, 연기도, 연출도 평이하다. 주희가 경주 장면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둘 다 기수인 주희와 우석의 우연한 만남은 그렇다쳐도 영화 속 갈등의 계기가 되는 만출과 유정의 과거 사연은 예상가능한 전개를 보인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김태희의 연기는 역시나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기엔 부족함을 드러냈고, 기대했던 양동근의 연기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엔 부족했다. 영화 속 버팀목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박근형과 고두심의 연기마저도 뻣뻣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무엇보다 영화 속 제주 사투리 사용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주희와 일본에서 건너온 우석은 그렇다쳐도 만출과 유정이 제주 4.3사건을 겪었을 정도면 분명 제주 토박이일 텐데 그들은 서울말을 구사한다. 농장의 일꾼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투리 구현의 어려움 때문에 제주 방언을 아예 무시하고 표준말로 통일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배경이 제주도인데 모두 표준어를 사용하는 게 좀 아쉬웠는지 극중 혼혈소녀 소심이 혼자 꿋꿋하게 제주 방언으로 말한다. 이건 뭥미? 사투리를 사용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아니면 아예 하질 말던가. 영화에 대한 전체적 이미지마저 깎아먹는다. 사투리 사용의 '나쁜 예'라고 하겠다.





이번 연휴 극장에서 <그랑프리>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게 2006년에 임수정이 주연한, 우리나라 최초로 경마를 소재로 한 영화 <각설탕>이었다. 경마장을 배경으로 기수와 경주마가 등장하고, 상처받은 마음의 안식처로 제주도가 나오고, 잃어버린 용기를 다시 북돋워주는 주변인들이 있고, 경주마인 말과의 교감을 통해 감동을 전하려는 드라마라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제법 비슷하다.

물론 <각설탕>은 일과 사랑 모두를 가지는 <그랑프리>의 기분좋은 해피엔딩과 달리 천둥이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끝이 나는 새드엔딩이고, 주인공의 상처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이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경마장의 선배라는 점은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각설탕>의 말 천둥이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가족과 같은 다시 없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말과 그 말을 타는 사람과의 관계가 <그랑프리>의 그것보다는 훨씬 친밀한 까닭에 <각설탕>에서는 그 사이의 교감을 영화 전반에 걸쳐 훨씬 진한 농도로 다룬다.

하지만 <각설탕> 역시 <그랑프리>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선과 악이 구분되어 있고 우연이 겹치는 등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예측 가능하다. <그랑프리>에서 상처입은 기수 희수가 또다른 실력파 기수 우석을 만나고 오래전 연인이 악연이 되어 다시 만나 사건을 일으키는 것처럼 <각설탕> 역시 은수가 천둥이를 다시 만나는 계기와 라이벌 철이가 위기를 만든다. 그럼에도 슬펐고 눈물이 났고 감동을 전해져왔다. 그건 전형적인 전개지만 그안에 진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를 본지 벌써 4년이 넘어 다른 세세한 것들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은 난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만나는 게 말이 돼? 정말 천둥이가 고개를 끄덕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던 기억도. ^^; 다른 건 잘 기억 안 나지만 <장화,홍련>으로 주목받고 <ing>의 죽음을 앞둔 고딩을 거쳐 <각설탕>의 단독주연으로 선 임수정의 안정적인 연기도 좋았던 건 기억이 난다. 그녀, 작품 좀 자주 찍었으면 좋겠다. (얼마전에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다지. 곧 만날 수 있으려나. ㅎㅎ)





<각설탕>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며 많이 비교되었던 영화가 있었으나 바로 <드리머:dreamer>다. <I am Sam>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며 연기파 아역배우로 각인된, 어리지만 '아역'을 단어를 넣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파 배우인, 그러나 지금은 엄청난 성장 속도로 소녀의 귀여움보다는 여인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숙녀로 성큼 자란 타코타 패닝이 주연한 <드리머>는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경마대회에서 1위를 했던 명마인 소냐도르는 경기 중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고 그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경마 조련사였지만 지금은 남의 목장 사육사로 일하는 벤은 자신의 퇴직금을 대신해 소냐도르를 데려오고 그후 벤과 케일의 정성어린 간호로 소냐도르의 다리는 기적처럼 회복된다. 그리고 케일과 함께 다시 한번 경주에 나설 준비를 시작한다.

절망적인 상태의 말 소냐도르를 만나고 회복시키고 다시 경주에 내보기까지의 과정에서 벤과 소냐도르는 깊은 교감을 나누고 상처입은 서로의 영혼을 토닥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잃었던 꿈을 다시 꾸고, 서로 삐걱대며 어긋나 있던 서로의 입장과 관계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가족의 정을 되찾아간다. 이 영화 역시 앞서 언급한 두 영화처럼 조금만 봐도 그 뒷이야기가 훤~히 보이는 전형적인 영화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 전개과정이 다소 작위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드리머>는 다코타 패닝과 커트 러셀의 깊이 있는 연기로 인해 따뜻해지는 영화다. ^^

넌 위대한 챔피언이야. 네가 달릴 때 땅이 울리고, 하늘은 활짝 개이고, 살아있는 것은 떠나가네. 승리의 길로 떠나네. 승리한 자리에서 네 등에 꽃담요를 올려 놓으리~ (You are a great champion. When you ran, the ground shook, the sky opened and mere mortals parted. Parted the way to victory where you'll meet me in the winner's circle where l'll put a blanket of flowers on your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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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소년 - 4집 유년에게
재주소년 (才洲少年) 노래 / 파스텔뮤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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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포크듀오 「재주소년」이 돌아왔다. 반가운 4집 음반을 들고. 2009년 초 3.5집인 미니앨범을 낸지 대략 19개월 만이다. 그간의 앨범을 듣고 들으며 언제쯤 새 음반이 나올까 내내 기다렸는데, 세상에나, 기다림에 지쳐 깜빡 졸던 중에 4집 앨범이 기습적으로(?) 발매됐다. 물론, 핑계다. 흑흑,

매일 들어오는 블로그와 달리 미니홈피를 닫은 이후 발걸음할 일이 거의 없는 싸이월드에 가뭄에 콩 나듯 가끔이나마 로그인을 하는 건 바로 재주소년의 클럽 때문이다. 비록 유령회원이지만 소년들이 생각날 때면 클럽에 들어가 소식들을 살펴본다. 그날도 갑자기 생각나 오랫만에 로그인을 하고 클럽에 들어갔더니, 세상에나, 4집 앨범이 나온 것도 모자라 공연 소식이 떠있었다. 물론 공연의 사전 예매는 이미 마감, 마감이 아니라도 시간이 잘 맞질 않는다. 지방민은 서럽다.

어쨌든 뒤늦은 4집 발매 소식을 듣고는 놀라 살펴보니, 아이고, 벌써 보름도 전에 나왔다.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뉘! 인터넷서점의 정기메일에 실려오는 음반소식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탓이다. 부랴부랴 급 클릭질로 주문을 마치고 얼른~ 얼른~ 도착하렴~ 주문을 외우며 하루를 보낸 다음날 내 손 위엔 [재주소년 4집 - 유년에게]라는 글자가 박힌 예쁜 음반 한 장이 쥐어졌다. 당일배송의 혜택은 누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달콤한 기다림과 함께 받는 다음날 받는 음반도 충분히 감동이다. 어쨌거나 세상 참, 좋아졌다.



음반 윗면에 붙은 동그란 크라프트지 스티커에 [재주소년 4 : 유년에게] 라는 타이틀과 함께 ‘어쿠스틱 팝의 제왕, 서정성의 고유명사 재주소년이 수줍게 건네는 21세기 청춘송가 : 유년에게’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재주소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것, 1집에서 4집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그들과 함께 떠오르는 그것 - 어쿠스틱, 서정성, 수줍음이 어우러진 근사한 소개글이다. 라벨지 윗쪽에는 ‘문라이즈 레코드’ 그림이, 아랫쪽에는 파스텔뮤직 로고가 정겹게 박혀 있다.



‘재주소년’은, 아시다시피, ‘델리 스파이스’의 리더 김민규가 세운 인디레이블 문라이즈 소속으로, 문라이즈(moonrise)는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의 활동을 위해 설립된 레이블이다. 재주소년의 앨범에는 3.5집인 미니앨범부터 파스텔 뮤직이 함께 해왔는데, 처음엔 파스텔 뮤직이 단순히 음반 유통이나 마케팅만 함께 하는 건 줄 알았더니 시디 뒷면에 문라이즈보다 파스텔 뮤직의 로고가 앞에 있는 것 아닌가. 이상한 마음에 기사를 검색해 보니 문라이즈 대표인 김민규가 현재 파스텔뮤직과 계약을 맺고 활동중이라 문라이즈는 현재 잠시 휴지기 상태라고. 그에 따라 재주소년 또한 자연스레 같이 옮겨온 모양이다(라고 짐작만 하고 있다). (☞ 경향신문 기사보기 - 클릭!)



내가 ‘재주소년’을 만나게 된 건 온전히 혈님(유희열,TOY) 덕분이다. 당시 혈님은 (내 기억이 맞다면) MBC FM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진행중이었는데, 얼굴로 승부하며(응?) 각종 저질(이라고 쓰고 ’웃긴’이라고 읽는다) 유머를 구사하며 청취자들의 배꼽을 빼면서도 본연의 고품격 음악인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주옥 같은 명곡과 눈여겨 볼 신인들을 깨알같이 소개해 주곤 했다. 요즘 진행중인 심야음악 프로그램인 「라디오 천국」도 들어보진 못했지만 아마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여튼 혈님을 통해 많은 노래와 뮤지션들을 접했는데, 그중 혈님의 극찬을 받은 가수 중 내가 기억하는 이들은 ’내게 오는 길’의 성시경(이곡은 내 사연에 무려 혈님이 골라준 노래라는!)과 ’소방관 아저씨’의 스푸키바나나, 그리고 ’귤’의 재주소년이다.



2003년의 추운 겨울날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재주소년의 ‘귤’은 아련한 추억과 상큼한 웃음을 동시에 머금게 하는 귀여운 노래였다. 듣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맑아지는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그해 나는 기나긴 겨울밤을 손톱 밑을 노랗게 물들이는 귤과 무한재생되는 재주소년 1집과 함께 보냈다. 혈님과 음악도시와 귤로 시작된 소년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지금까지 변함없이 쭈욱 이어지고 있다. 변하지 않는 듯 변화하는 그들의 음악이 좋은 것도 있지만 1집부터 만나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기도 한다. 이제는 중간에 몇 개 듬성듬성 이가 빠진 채 있는 혈님의 음반보다 재주소년의 앨범이 더 많아지려고 하니, 흠냐, 이건 조금 배신인 건가. 흐흐,




1집 [才洲少年(재주소년)]을 듣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3.5집을 찍고 어느새 정규앨범으로 4집에 이르렀다. 그리고 스무살의 풋풋하던 두 소년들은 그 사이 휴학과 입대, 제대와 복학을 거치면서 어느새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맑고 서정적이고 풋풋한 감성을 전해준다. 소박하고 겸손한 멜로디와 담백한 음색으로 어우러진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복잡하고 시끄럽던 마음도 어느 순간 정화되듯 평온해진다. 물론 소년들의 성장과 함께 그들의 노래도 조금은 변했다. 허나 그 변화는 물 흐릇 자연스럽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었지만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풋풋하고 소박하며 간결하고 담백하다. 그래서 재주소년의 노래가 나는 참 좋다. 너무 좋다. 딱, 내 취향이다.




제주도에서 촬영했다는 이번 4집 앨범의 북클릿의 담백한 사진들은 그들의 음악이 전해주는 잔잔함과 아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제주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그들의 자유분방한(?) 사진들도 좋고, 무작정 걷다가 들렀다는 학교와 놀이터의 모습들은 유년의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미운 열두살’ 사진의 소녀가 ‘유년에게’의 4번 트랙에 서 있는 뒷모습의 소녀인가 혼자 추측해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그리고 한 줄 한 줄 가사를 음미해 보는 것도.



이번 4집에는 모두 12곡의 노래가 실려 있다. 요조가 피처링을 한 타이틀곡인 ‘손잡고 허밍’과 사랑 고백을 앞두고 가슴 졸이는 ‘솔직, 담백’은 사랑에 빠진 이들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담아냈다. 사랑을 잃은 마음을 ‘봄이 오는 동안’과 ‘머물러 줘’는 잔잔하게 읊조리지만 ‘춤추는 대구에서’는 경쾌한 멜로디로 노래한다. 앨범 타이틀과 같은 제목의 곡인 ‘유년에게’는 유년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농구공’은 지금은 잊고 사는 우리들의 어린날의 꿈들을 더듬어 보게 만든다. 수학여행은 좋지만 수학은 싫다는 깜찍한 가사가 인상적인 ‘미운 열두살’은 일상의 소박한 모습을 재치있게 그려낸다. 재주소년의 앨범에는 매번 연주곡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데 4집에서는 ‘Beck’이 유일한 연주곡이다.

재주소년의 4집 음반 [유년에게]는 유년의 추억과 소년의 꿈, 그리고 청춘의 사랑과 이별 등을 재주소년 특유의 감성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함께 아우르는 음반이다. 그래서 아련하다가도 사랑스럽고,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다가도 어느새 경쾌한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며 씨익 웃음을 띄우게 된다.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불러 일으키는 맑은 기타의 선율과 담백한 목소리, 간결하고 소박한 멜로디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느리게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욕심껏 다 채우려 하지 않고 적당히 비울 줄 아는 소년들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실타래처럼 복잡하던 마음이 어느새 스르르 풀리고 즐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재주소년의 음악들을 사랑한다. 이번 4집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음반을 받자마자 무한반복 재생중인데, 아마도 한동안은 계속 이럴 것 같다. 싸랑한돠, 재주소년! :)






+ 요건, 뒷담화! ^^,



4집의 합류로 「재주소년」의 음반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2003년 1집 [才洲少年(재주소년)]을 시작으로, 2집 [Peace], 3집 [꿈의 일부], 3.5집 미니앨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거쳐 4집 [유년에게]까지, 총 5개 앨범의 시디 6장이다. 음반이 하나씩 늘 때마다 이렇게 늘어놓고 사진을 찍는 게 흐뭇하다. 그냥 봐도 두툼한 3집 음반에는 보너스 시디가 한 장 더 들어 있다. 이것 때문에 발매되고 부랴부랴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재발매된 3집에는, 물론, 포스터고 보너스 시디고 모두 없단다. 재발매의 비극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재주소년의 컬렉션, 점점 알차고 넉넉해지고 있어 므흣하다. 흐흐,



앞서 언급했던 재주소년은 김민규의 인디레이블 문라이즈 소속이라 앨범에 문라이즈 레코드의 로고와 레이블 번호가 찍혀 있다. 1집은 moonrise 14, 2집은 20, 3집은 22, 3.5집은 25, 그리고 이번 4집은 27이다. 점점 조밀해지는 레이블 번호를 보니 문라이즈 휴지기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음반 마케팅이나 유통은 1집 프래쉬 엔터테인먼트, 2-3집은 서울레코드가 맡다가 3.5집 미니앨범부터 파스텔 뮤직과 함께 하고 있다. 어쨌거나 문라이즈와 파스텔뮤직의 결합이 앞으로도 좋은 상생효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재주소년 만큼 좋아하는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 음반들.
ep와 1,2집은 소장중인데 게으름으로 그만 3집 앨범을 놓쳐버렸다. 지금은 품절 중. ㅠ.ㅠ
지금 찾아보니 공연 음반이 판매중이던데 그거라도 주문해야 할까 보다.
좋아하는 음반들은 정말이지 바로바로 주문 안 하면 이렇게 후회할 일이 생기곤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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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구스 - 영미권 아이들이 자라면서 즐겨 읽고 부르는 영어 전래 동요 50 아이즐 동요 CD북 10
최재숙 엮음, 김정은 외 그림 / 아이즐북스 / 2010년 5월
구판절판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한 돌 때 우리집에 온 꼬꼬마 조카가 어느새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온집을 나름 광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물론 수시로 이유없이 넘어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면서 뛰어가는 조카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또 이젠 어느 정도 자기 의사도 표현하고 어지간한 말들은 거의 알아들어서 기저귀 가져오기, 컵 가져다 놓기 같은 작은 심부름까지 척척 해낸다. 꼬물거리던 녀석이 어느새 어엿한 한 명의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세상에 태어난지 1년반 만에 웬만한 것들을 터득해가는 꼬맹이 조카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자연의 섭리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요즘 한창 말을 배우느라 이런저런 옹알이를 해대는 꼬맹이 조카는 또한 노래를 틀어놓고 옹알옹알 따라도 하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특유의 뻣뻣댄스를 추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조카 방에는 항상 노래 시디가 무한 재생 중이다. 요런 귀염둥이 조카를 위해 유아책 노래동요집 코너를 뒤지다가 아이즐북스에서 나온 영어 전래 동요 50곡이 담긴 그림책 《마더구스》를 발견했다. 앙증맞은 표지부터 귀여운 그림들까지 완전 내 스타일이라 침을 꼴깍이며 책을 살피다 바로 주문했다.


서점에서 도착한 책을 보니 와우! 책이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더 큼직한 판본과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책을 펼치니 본문의 그림들은 더 귀엽고 아기자기해서 눈을 즐겁게 해주고, 시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뜻을 몰라도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신이 난다. 책의 요모조모를 살펴보며 표지부터 내용까지 죄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뿌듯한 마음에 연신 므흣한 웃음을 날렸다. 이러다가 조카에게 가기도 전에 내 책장의 완소책 코너에 그대로 직행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흐흐,


양장으로 된 책표지를 넘기면 안쪽에는 표지그림 못지 않게 발랄하게 꾸며진 동요 CD가 붙어 있다. 책에 부착된 비닐 커버를 살펴시 잘라내고 CD를 꺼내면 되는데, 비닐면에 딱 붙어버려 꺼내는데 애를 먹었다. 어쩔 수 없이 자를 쑤셔넣어 압착된 부분을 뜯어냈는데 꺼내고 보니 CD 안쪽 면에 몇 개의 흠집이 생겼버렸다. 흑! 영어 동요집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나름 귀하신 몸이라 순간 흠칫했지만 그래도 뭐, 아무 문제없이 노래는 잘 나오니 다행이다. 이 CD 한 장에 이책에 담긴 마더구스 라임이라 불리는 영어 전래 동요 50곡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마더구스》는 마더구스 라임 중 유아의 신체, 언어, 인지, 정서 발달에 적합한 50곡을 골라 수록해 놓았다. 노래의 내용 또한 우스꽝스럽거나 재미있는 이야기에서부터 수수께끼, 속담, 자장가, 교훈적인 내용, 알파벳이나 요일 등을 쉽게 외우게 해주는 것들, 왕이나 귀족, 성직자 같은 지배층에 대한 익살스런 풍자까지 아주 다양하다. 노래들은 제각각의 라임(Rhymes)에 따라 7개의 꼭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Play, Funny Sound, Learning, Nonsense, Children, Other Famous, Tongue Twister]가 그것이다. 어느 특정 라임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각 꼭지마다 수록된 곡 수도 비슷비슷하다.


책장을 넘기면 영어 동요의 가사와 함께 알록달록 너무 예쁜 일러스트들로 채워져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기법과 그림체로 그려진 그림들이 펼쳐져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른인 내가 봐도 이렇게 신나는데 아이들은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는 그림들은 9명의 화가들이 수채화, 아크릴, 오일파스텔, CG 등 다양한 일러스트 기법을 활용하여 그려낸 작품들이란다. 이책 한 권으로 9명의 작가들이 그린 다양한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점 또한 《마더구스》 그림책이 가진 매력이다.


각 노래의 일러스트 그림들은 그 노래가 담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노래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의 그림을 보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이책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영어 동요만 듣거나 그림책만 봐도 좋지만, 이왕이면 음악과 그림을 같이 접하면 청각과 시각이 동시에 자극을 받아 그 내용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마더구스》에 실린 영어 전래 동요들을 듣다보면 왠지 익숙한 듯한 노래를 몇몇 만나게 된다. 이책의 첫곡인 [Ring-a-ring O’Roses]의 경우에는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제목만으로도 우리 동요인 [둥글게 둥글게]를 떠올리게 한다. 재밌게도 우리가 즐겨 불렀던 [둥글게 둥글게]에는 'Ring-a-ring'이 생각나는 '링가링가 링가 링가링가링'이라는 후렴구가 있다.


또다른 동요인 [There was a Crooked Man]의 경우에는 그림의 지팡이를 쥔 꼬부랑 할아버지와 꼬부랑 길만 봐도 바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바로 '꼬부랑'의 이어짐이 재미있어 자꾸만 부르게 되던 노래 [꼬부랑 할머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할아버지로 바뀌었고 꼬부랑 길에서의 여정도 서로 달라졌지만, '꼬부랑' 노인이 '꼬부랑' 길을 걸어가는 내용의 노래라는 점에서 둘은 많이 닮아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차용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생각이 비슷비슷하다는 게 재미있다.


책의 뒷편에는 마더구스에 대한 짧은 설명도 수록해 두었다. 전에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에 대한 내용을 읽다가 '마더구스'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었는데, '마더구스(Mother Goose)'란 직역하면 '거위 아줌마'로 통상 마더구스 이야기나 노래를 지었다는 시골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후 마더구스는 어린이들을 위한 전래 동요를 뜻하는 말로 자리잡아 미국에서는 마더구스 라임(Mother Goose rhyme), 영국에서는 '러서니 라임(Nursery rhyme)으로 불린다고 한다.

마더구스 라임은 운율(rhyme) 형태를 띈 리듬감 있는 짧은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어 재미있게 영어를 익힐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전래 동요처럼 영어권 어린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접하는 영어 전래 동요인 마더구스에도 서양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이 녹아 있어 짧은 노래들을 통해 아이들이 영어권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도 가이드'에는 이책 《마더구스》를 보다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해 놓았다. 노래의 내용을 따라 아이들과 직접 그것을 해보는 것인데, 예를 들면 [Pat-a-cake, Pat-a-cake]를 부르며 아이와 함께 직접 빵을 만들어 보거나 [Jack be Nimble]을 노래하며 직접 만든 촛불을 뛰어넘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홈스쿨링, 체험학습 뭐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노래의 내용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 그 기억의 강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책의 가장 마지막 바닥에는 《마더구스》에 담긴 노래들의 한글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부모님들의 고민을 한결 덜어주는 반가운 꼭지라고나 할까. 특히 놀이 동요인 'Rhymes for Play'에서는 곡마다 어떤 놀이 노래인지, 어떤 율동과 함께 하면 좋은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함께 담아두는 배려를 보여준다.



꼬꼬마 조카에게는 일단 노래만 들려주고 책은 좀 더 크면 보여줘야겠다.
몇 권 더 사서 초딩인 조카들에게 추석선물로 보내줘야겠다. ^^

온나라가 떠드는 영어 조기 교육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아직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 노래를 들려준다는 게 조금 내키지 않기도 했다(물론 제 부모는 어떤 생각인지 모르지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경계를 두지 않고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를 접할 기회를 주는 것도 다양성 차원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들은 바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아이의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다가 어떤 식으로든 발현될 테니 말이다.

영어 전래 동요책인 《마더구스》는 50곡의 신나는 노래와 50개의 아기자기한 그림 들이 함께 하는 사랑스런 책이다. 수록된 노래들 또한 영미권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계속 불려왔던 곡들이라 그만큼 믿을 수 있다. 책상에 앉아 하는 영어 공부가 아니라 노래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영어 동요책의 장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위 아줌마가 들려주는 노래 이야기인 《마더구스》는 꽤 알찬 책이 아닐까 싶다. 꼬꼬마 조카가 클 때까지 오래오래 들려주어 본전 뽑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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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레이놀즈 시리즈 3
피터 레이놀즈 지음, 김지효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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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 │ 피터 레이놀즈 글ㆍ그림 │ 김지효 옮김 │ 문학동네어린이 


흔히들 아이들은 하얀 백지와 같다고 한다. 어떤 밑그림을 그려주느냐에 따라, 그위에 어떤 색을 칠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하얀 백지같은 아이들을 훌륭한 그림으로 완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따듯한 관심과 진심어린 칭찬이 아닐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관심과 칭찬이야말로 아이들을 춤추게 하고 성장하게 도와준다. 피터 레이놀즈의 <점>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그림 그리기에 자신이 없는 베티는 미술시간 내내 하얀 도화지만 바라보고 있다. 어떤 것이든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베티는 연필로 내리찍어 생긴 점 하나가 전부인 도화지를 내민다. 그러나 선생님은 야단을 치기는커녕 베티에게 그밑에 이름을 적으라고 한다. 일주일 후 미술시간에 베티는 자신이 찍은 점 하나가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는 액자에 걸린 점을 보면서 ’저것보다는 더 잘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물감을 꺼내 여러가지 점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 점 하나에 불과한 베티의 그림을 인정하고 액자에 걸어 칭찬해준 선생님의 놀라운 센스!


빨간 점, 파란 점, 노란 점을 그리다가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되는 걸 발견하고 물감들을 섞어 다양한 색의 점들을 그리고 또 그린다. 그렇게 쉬지 않고 점을 그린 덕분에 작은 점을 모아 큰 점을 만들기도 하고, 배경을 다양한 점으로 채움으로써 색칠을 하지 않고도 점을 그리는 방법까지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에 열린 미술전시회에서 베티의 다양한 점 그림은 사람들의 큰 인기를 얻는다. 전시장에서 자신은 그림을 정말 못 그린다는 소년을 만난 베티는, 미술 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소년이 그린 삐뚤빼뚤한 선 밑에 이름을 쓰라고 말하며 빙긋이 웃는다.

피터 레이놀즈의 <점>은 잘 그리지 못해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던 베티가 선생님의 관심과 칭찬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느끼며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세심한 관심과 진심이 담긴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화가 나서 도화지에 아무렇게나 찍은 점 하나를 야단치거나 무시하지 않은 선생님의 관심이 마침내 시니컬한 베티를 변하게 했고, 이미 칭찬의 힘을 경험한 베티의 격려는 또다른 소심한 소년에게 큰 용기를 북돋워준다. 칭찬의 힘이란 이렇게 위대하다.



☞ 온갖 점들로 채워진 베티의 그림은 미술전시회에서도 인기 만점! ^ ^


몇 줄 안 되는 간략한 글과 단순한 그림으로 채워진 이 작은 그림책은, 그러나 가슴이 찡할 만큼 큰 감동을 전해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얼마나 칭찬을 해주었는지 반성하게 만든다. 따듯한 감동과 따끔한 반성을 함께 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라고나 할까. 관심과 칭찬을 먹고 변해가는 소녀 베티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군더더기를 없애고 단순명쾌한 선으로 한 눈에 내용을 전해주는 친근한 그의 그림 또한 이책을 보는 또다른 재미다.

<점>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상된 그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 피터 레이놀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가슴 뭉클한 엄마의 사랑을 노래한 앨리슨 맥기의 <언젠가 너도>를 통해서였는데, <점>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큰 감동을 전해줬다. 두 권의 그림책을 통해 그에게 홀딱 반한지라 열심히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봤으나 4개의 그림책 밖에 만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한 번 만나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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