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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구스 - 영미권 아이들이 자라면서 즐겨 읽고 부르는 영어 전래 동요 50 ㅣ 아이즐 동요 CD북 10
최재숙 엮음, 김정은 외 그림 / 아이즐북스 / 2010년 5월
구판절판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한 돌 때 우리집에 온 꼬꼬마 조카가 어느새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더니 이제는 온집을 나름 광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물론 수시로 이유없이 넘어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면서 뛰어가는 조카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또 이젠 어느 정도 자기 의사도 표현하고 어지간한 말들은 거의 알아들어서 기저귀 가져오기, 컵 가져다 놓기 같은 작은 심부름까지 척척 해낸다. 꼬물거리던 녀석이 어느새 어엿한 한 명의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세상에 태어난지 1년반 만에 웬만한 것들을 터득해가는 꼬맹이 조카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자연의 섭리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요즘 한창 말을 배우느라 이런저런 옹알이를 해대는 꼬맹이 조카는 또한 노래를 틀어놓고 옹알옹알 따라도 하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특유의 뻣뻣댄스를 추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조카 방에는 항상 노래 시디가 무한 재생 중이다. 요런 귀염둥이 조카를 위해 유아책 노래동요집 코너를 뒤지다가 아이즐북스에서 나온 영어 전래 동요 50곡이 담긴 그림책 《마더구스》를 발견했다. 앙증맞은 표지부터 귀여운 그림들까지 완전 내 스타일이라 침을 꼴깍이며 책을 살피다 바로 주문했다.
서점에서 도착한 책을 보니 와우! 책이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더 큼직한 판본과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책을 펼치니 본문의 그림들은 더 귀엽고 아기자기해서 눈을 즐겁게 해주고, 시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뜻을 몰라도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신이 난다. 책의 요모조모를 살펴보며 표지부터 내용까지 죄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뿌듯한 마음에 연신 므흣한 웃음을 날렸다. 이러다가 조카에게 가기도 전에 내 책장의 완소책 코너에 그대로 직행하는 건 아닐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흐흐,
양장으로 된 책표지를 넘기면 안쪽에는 표지그림 못지 않게 발랄하게 꾸며진 동요 CD가 붙어 있다. 책에 부착된 비닐 커버를 살펴시 잘라내고 CD를 꺼내면 되는데, 비닐면에 딱 붙어버려 꺼내는데 애를 먹었다. 어쩔 수 없이 자를 쑤셔넣어 압착된 부분을 뜯어냈는데 꺼내고 보니 CD 안쪽 면에 몇 개의 흠집이 생겼버렸다. 흑! 영어 동요집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나름 귀하신 몸이라 순간 흠칫했지만 그래도 뭐, 아무 문제없이 노래는 잘 나오니 다행이다. 이 CD 한 장에 이책에 담긴 마더구스 라임이라 불리는 영어 전래 동요 50곡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마더구스》는 마더구스 라임 중 유아의 신체, 언어, 인지, 정서 발달에 적합한 50곡을 골라 수록해 놓았다. 노래의 내용 또한 우스꽝스럽거나 재미있는 이야기에서부터 수수께끼, 속담, 자장가, 교훈적인 내용, 알파벳이나 요일 등을 쉽게 외우게 해주는 것들, 왕이나 귀족, 성직자 같은 지배층에 대한 익살스런 풍자까지 아주 다양하다. 노래들은 제각각의 라임(Rhymes)에 따라 7개의 꼭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Play, Funny Sound, Learning, Nonsense, Children, Other Famous, Tongue Twister]가 그것이다. 어느 특정 라임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각 꼭지마다 수록된 곡 수도 비슷비슷하다.
책장을 넘기면 영어 동요의 가사와 함께 알록달록 너무 예쁜 일러스트들로 채워져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기법과 그림체로 그려진 그림들이 펼쳐져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른인 내가 봐도 이렇게 신나는데 아이들은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는 그림들은 9명의 화가들이 수채화, 아크릴, 오일파스텔, CG 등 다양한 일러스트 기법을 활용하여 그려낸 작품들이란다. 이책 한 권으로 9명의 작가들이 그린 다양한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점 또한 《마더구스》 그림책이 가진 매력이다.
각 노래의 일러스트 그림들은 그 노래가 담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노래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통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의 그림을 보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이책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또한 영어 동요만 듣거나 그림책만 봐도 좋지만, 이왕이면 음악과 그림을 같이 접하면 청각과 시각이 동시에 자극을 받아 그 내용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마더구스》에 실린 영어 전래 동요들을 듣다보면 왠지 익숙한 듯한 노래를 몇몇 만나게 된다. 이책의 첫곡인 [Ring-a-ring O’Roses]의 경우에는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제목만으로도 우리 동요인 [둥글게 둥글게]를 떠올리게 한다. 재밌게도 우리가 즐겨 불렀던 [둥글게 둥글게]에는 'Ring-a-ring'이 생각나는 '링가링가 링가 링가링가링'이라는 후렴구가 있다.
또다른 동요인 [There was a Crooked Man]의 경우에는 그림의 지팡이를 쥔 꼬부랑 할아버지와 꼬부랑 길만 봐도 바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바로 '꼬부랑'의 이어짐이 재미있어 자꾸만 부르게 되던 노래 [꼬부랑 할머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할아버지로 바뀌었고 꼬부랑 길에서의 여정도 서로 달라졌지만, '꼬부랑' 노인이 '꼬부랑' 길을 걸어가는 내용의 노래라는 점에서 둘은 많이 닮아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차용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생각이 비슷비슷하다는 게 재미있다.
책의 뒷편에는 마더구스에 대한 짧은 설명도 수록해 두었다. 전에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루이스 캐럴에 대한 내용을 읽다가 '마더구스'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었는데, '마더구스(Mother Goose)'란 직역하면 '거위 아줌마'로 통상 마더구스 이야기나 노래를 지었다는 시골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후 마더구스는 어린이들을 위한 전래 동요를 뜻하는 말로 자리잡아 미국에서는 마더구스 라임(Mother Goose rhyme), 영국에서는 '러서니 라임(Nursery rhyme)으로 불린다고 한다.
마더구스 라임은 운율(rhyme) 형태를 띈 리듬감 있는 짧은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어 재미있게 영어를 익힐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전래 동요처럼 영어권 어린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접하는 영어 전래 동요인 마더구스에도 서양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이 녹아 있어 짧은 노래들을 통해 아이들이 영어권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도 가이드'에는 이책 《마더구스》를 보다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해 놓았다. 노래의 내용을 따라 아이들과 직접 그것을 해보는 것인데, 예를 들면 [Pat-a-cake, Pat-a-cake]를 부르며 아이와 함께 직접 빵을 만들어 보거나 [Jack be Nimble]을 노래하며 직접 만든 촛불을 뛰어넘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홈스쿨링, 체험학습 뭐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노래의 내용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 그 기억의 강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책의 가장 마지막 바닥에는 《마더구스》에 담긴 노래들의 한글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부모님들의 고민을 한결 덜어주는 반가운 꼭지라고나 할까. 특히 놀이 동요인 'Rhymes for Play'에서는 곡마다 어떤 놀이 노래인지, 어떤 율동과 함께 하면 좋은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함께 담아두는 배려를 보여준다.
꼬꼬마 조카에게는 일단 노래만 들려주고 책은 좀 더 크면 보여줘야겠다.
몇 권 더 사서 초딩인 조카들에게 추석선물로 보내줘야겠다. ^^
온나라가 떠드는 영어 조기 교육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아직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영어 노래를 들려준다는 게 조금 내키지 않기도 했다(물론 제 부모는 어떤 생각인지 모르지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경계를 두지 않고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를 접할 기회를 주는 것도 다양성 차원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들은 바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아이의 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다가 어떤 식으로든 발현될 테니 말이다.
영어 전래 동요책인 《마더구스》는 50곡의 신나는 노래와 50개의 아기자기한 그림 들이 함께 하는 사랑스런 책이다. 수록된 노래들 또한 영미권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계속 불려왔던 곡들이라 그만큼 믿을 수 있다. 책상에 앉아 하는 영어 공부가 아니라 노래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이 영어 동요책의 장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위 아줌마가 들려주는 노래 이야기인 《마더구스》는 꽤 알찬 책이 아닐까 싶다. 꼬꼬마 조카가 클 때까지 오래오래 들려주어 본전 뽑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