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3~4주

연휴 기간부터 푸짐했던 이번 추석 연휴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가를 장식했다. 
그 다양함이 궁금해 거의 모든 영화를 섭렵했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본 개봉 영화가 <그랑프리>였다.
영화를 보면서 단지 말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비슷한 몇 편의 영화가 머릿속을 떠올랐다.
그리하여 말이 등장하는, 말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다룬 영화 몇 편을 살짝쿵 살펴볼까 한다. ^^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함께 했던 양윤호 감독과 김태희가 다시 만났다. 급히 군입대하느라 자리를 비운 이준기 대신 예전 <바람의 파이터>로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얼마전 민간인이 된 양동근이 합류했다. 영화를 촬영할 때부터 김태희와 양동근의 만남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 적절한 조합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처음 캐스팅 그대로 이준기가 연기했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진 않았을 듯하다. 양동근의 연기가 나빴던 건 아니었으니까.

경주 중 사고를 당한 기수 주희는 어깨 부상과 함께 자신의 말 푸름이를 잃는다. 그 충격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제주도로 내려온 주희는 그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우석을 만나고, 그의 진심어린 격려와 도움으로 다시 달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자신의 말 푸름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하던 주희는 제주에서 만난 말 탐라와 다시 함께 함으로써 용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탐라와 다시 선 승마장, 주희는 우승을 향해 힘껏 달려간다.

경주마와 기수가 등장하지만 <그랑프리>는 인간과 말과의 교감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사건과 탐라를 사이에 둔 유정의 가혹한 제안에 갈등하는 만출을 막는 주희의 행동 정도가 눈에 띌까. 그외 소심이가 탐라와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기수로서 탐라를 대하는 몇 컷 정도가 전부다. 오히려 말과 사람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그것을 통한 상처의 극복을 다루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랑프리>는 스토리도, 연기도, 연출도 평이하다. 주희가 경주 장면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둘 다 기수인 주희와 우석의 우연한 만남은 그렇다쳐도 영화 속 갈등의 계기가 되는 만출과 유정의 과거 사연은 예상가능한 전개를 보인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김태희의 연기는 역시나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기엔 부족함을 드러냈고, 기대했던 양동근의 연기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엔 부족했다. 영화 속 버팀목이 되어줄 거라 믿었던 박근형과 고두심의 연기마저도 뻣뻣하게 느껴져 아쉬웠다.

무엇보다 영화 속 제주 사투리 사용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주희와 일본에서 건너온 우석은 그렇다쳐도 만출과 유정이 제주 4.3사건을 겪었을 정도면 분명 제주 토박이일 텐데 그들은 서울말을 구사한다. 농장의 일꾼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투리 구현의 어려움 때문에 제주 방언을 아예 무시하고 표준말로 통일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배경이 제주도인데 모두 표준어를 사용하는 게 좀 아쉬웠는지 극중 혼혈소녀 소심이 혼자 꿋꿋하게 제주 방언으로 말한다. 이건 뭥미? 사투리를 사용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아니면 아예 하질 말던가. 영화에 대한 전체적 이미지마저 깎아먹는다. 사투리 사용의 '나쁜 예'라고 하겠다.





이번 연휴 극장에서 <그랑프리>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게 2006년에 임수정이 주연한, 우리나라 최초로 경마를 소재로 한 영화 <각설탕>이었다. 경마장을 배경으로 기수와 경주마가 등장하고, 상처받은 마음의 안식처로 제주도가 나오고, 잃어버린 용기를 다시 북돋워주는 주변인들이 있고, 경주마인 말과의 교감을 통해 감동을 전하려는 드라마라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제법 비슷하다.

물론 <각설탕>은 일과 사랑 모두를 가지는 <그랑프리>의 기분좋은 해피엔딩과 달리 천둥이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끝이 나는 새드엔딩이고, 주인공의 상처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이가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라 경마장의 선배라는 점은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각설탕>의 말 천둥이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가족과 같은 다시 없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말과 그 말을 타는 사람과의 관계가 <그랑프리>의 그것보다는 훨씬 친밀한 까닭에 <각설탕>에서는 그 사이의 교감을 영화 전반에 걸쳐 훨씬 진한 농도로 다룬다.

하지만 <각설탕> 역시 <그랑프리>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선과 악이 구분되어 있고 우연이 겹치는 등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예측 가능하다. <그랑프리>에서 상처입은 기수 희수가 또다른 실력파 기수 우석을 만나고 오래전 연인이 악연이 되어 다시 만나 사건을 일으키는 것처럼 <각설탕> 역시 은수가 천둥이를 다시 만나는 계기와 라이벌 철이가 위기를 만든다. 그럼에도 슬펐고 눈물이 났고 감동을 전해져왔다. 그건 전형적인 전개지만 그안에 진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를 본지 벌써 4년이 넘어 다른 세세한 것들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은 난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만나는 게 말이 돼? 정말 천둥이가 고개를 끄덕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던 기억도. ^^; 다른 건 잘 기억 안 나지만 <장화,홍련>으로 주목받고 <ing>의 죽음을 앞둔 고딩을 거쳐 <각설탕>의 단독주연으로 선 임수정의 안정적인 연기도 좋았던 건 기억이 난다. 그녀, 작품 좀 자주 찍었으면 좋겠다. (얼마전에 뮤지컬 <김종욱 찾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다지. 곧 만날 수 있으려나. ㅎㅎ)





<각설탕>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며 많이 비교되었던 영화가 있었으나 바로 <드리머:dreamer>다. <I am Sam>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며 연기파 아역배우로 각인된, 어리지만 '아역'을 단어를 넣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파 배우인, 그러나 지금은 엄청난 성장 속도로 소녀의 귀여움보다는 여인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숙녀로 성큼 자란 타코타 패닝이 주연한 <드리머>는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경마대회에서 1위를 했던 명마인 소냐도르는 경기 중 불의의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고 그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경마 조련사였지만 지금은 남의 목장 사육사로 일하는 벤은 자신의 퇴직금을 대신해 소냐도르를 데려오고 그후 벤과 케일의 정성어린 간호로 소냐도르의 다리는 기적처럼 회복된다. 그리고 케일과 함께 다시 한번 경주에 나설 준비를 시작한다.

절망적인 상태의 말 소냐도르를 만나고 회복시키고 다시 경주에 내보기까지의 과정에서 벤과 소냐도르는 깊은 교감을 나누고 상처입은 서로의 영혼을 토닥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잃었던 꿈을 다시 꾸고, 서로 삐걱대며 어긋나 있던 서로의 입장과 관계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가족의 정을 되찾아간다. 이 영화 역시 앞서 언급한 두 영화처럼 조금만 봐도 그 뒷이야기가 훤~히 보이는 전형적인 영화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 전개과정이 다소 작위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드리머>는 다코타 패닝과 커트 러셀의 깊이 있는 연기로 인해 따뜻해지는 영화다. ^^

넌 위대한 챔피언이야. 네가 달릴 때 땅이 울리고, 하늘은 활짝 개이고, 살아있는 것은 떠나가네. 승리의 길로 떠나네. 승리한 자리에서 네 등에 꽃담요를 올려 놓으리~ (You are a great champion. When you ran, the ground shook, the sky opened and mere mortals parted. Parted the way to victory where you'll meet me in the winner's circle where l'll put a blanket of flowers on your bac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