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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여운을 주는 독특한 제목, '튤슈'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어감, 은은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약간의 쓸쓸함을 자아내는 표지그림, 얇은 두께의 작은 양장본, 책 중간중간의 환상적인 삽화 등등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의 첫인상은 마냥 예쁘고 가벼운 사랑이야기인 듯 했다.
그러나 잘못 짚었다.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이란 부제처럼 이 책은 여섯 개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평범하고 일상적이거나 깃털처럼 가벼운 연애담이 아니다. 책의 겉모습이 주는 첫인상과 달리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을 이루는 각 단편들 속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물음과 성찰로 가득차 있다. 그런 까닭에 넘기던 책장의 속도가 점점 더뎌지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렇다고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독수리와 물고기, 참나무와 인형, 담쟁이 덩굴, 대리석 조각상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화형식의 단편들은 짧고 쉽게 읽힌다. 게다가 재미도 있다. 멋진 삽화까지 실려있어 마치 한 편의 동화책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지만 길이가 짧다고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다. 그 짧다막한 이야기마다 작가는 '사랑'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담아낸다. 그런 까닭에 금방 읽을 수 있지만 한 편을 다 읽을 때마다 그 의미를 한참동안 곱씹게 된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와 미묘한 감정,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한 여러 조건들을 사람이 아닌 다양한 등장인물과 그들의 특성을 통해 절묘하게 표현해 낸다. 비록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에 고뇌하는 인물이 사람이 아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렬하게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그 보편적이고도 특수한 감정들을 실은 단편들은 모두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진다.
여섯 편의 이야기 모두 강렬했지만 그 중에서 독수리와 익투스의 사랑을 담은 <빛나는 것, 그것은>이 가장 좋았다. 목숨을 건 사랑이 아름다웠지만 새와 물고기라는 그 넘을 수 없는 벽이 안타까웠기 때문이 아닐런지. 그리고 그 이야기에 동화되는 아름다운 삽화도 너무 좋았다. 가장 아릿했던 이야기는 참나무와 플라스틱 인형의 <품을 수 없는, 안길 수 없는>였다. 사랑마저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하지만 결코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이중성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져 가슴이 싸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했던 단편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이었는데, 자신이 사랑을 느끼는 모든 연인을 '튤슈'라고 명명하고 그녀들을 사랑하는 것을 평생의 '일'로 삼고 사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다. 미치광이로도 보일 수 있는 노인의 독특한 사랑이야기는 처음엔 꽤나 혼란스럽지만 점점 묘한 매력을 일으킨다. 그리고 노인을 만난 '나'처럼 누군가에게 '사랑해, 튤슈'라는 전보를 치고 싶게 만든다. 조금 어려웠던 <나비, 시인, 그리고 여자>는 가장 철학적인 단편이 아니었나 싶다.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은 처음으로 만나는 터키문학이었다. 날카로운 현실 풍자와 실천적 지식인으로 많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아지즈 네신은 터키의 국민작가이자 풍자문학의 거장으로 우리나라에도 그의 저서 몇 권 소개되었단다. 이 책은 그의 작품 중 사랑을 소재로 한 단편들을 모아 엮은 거라고. 현실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득세력에 저항해 온 작가라고 하니 그의 정신이 담겨진 다른 작품들이 사뭇 궁금해진다.
사랑에 대한 짧고 깊은 이야기인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색다른 여섯 가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좀 더 깊고 진지하게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 사람들마다 존재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그리고 저의 존재 이유는 튤슈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187,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