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 손호철의 세계를 가다 1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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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백하건데 나는 라틴 아메리카에 관해선 거의 무지한 상태다. 얼마전까지도 잉카와 마야 문명이 헷갈렸고, 한때 서점가를 휩쓸며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체 게바라 평전도 아직 읽지 않았으며(대신 청년 체 게바라를 다룬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봤다), 그들의 정치와 경제를 관통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겨우 라틴 아메리카의 자연환경이 끝내주게 아름답다는 것과 반면 그들의 경제는 거의 파탄 지경이란 것 정도나 알고 있었으려나. 박민규의 소설 <핑퐁>에 나오는 2등신 큰바위 얼굴 거대석상 '모아이'가 있는 이스터 섬이 칠레에 속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심을 볼 때 나와 같은 분들이 아마 적지 않을 듯 하다. 후후후.


화가를 꿈꾸다 부모의 반대로 정치학과에 입학했지만 선배를 잘못(?) 만나 운동권에 발을 들이고 8년 만에 학교를 졸업해서 기자가 되었으나 정치적 망명으로 인해 학문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비운(?)의 사나이 손호철 교수. 그가 세 번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다녀오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진보적 정치학자의 시선으로 뽑아낸 것이 바로 이 책,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이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여행기를 접해보기도 처음이지만(쿠바 여행기 <느린희망>은 어렵사리 구해놓고 아직도 못 읽고 있다;;), 일반 여행객의 시선으로 훑은 아름다운 자연이나 사람들에 관한 서술은 물론, 라틴 아메리카를 이루는 각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정치적, 경제적 소용돌이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으며 그들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저자의 시선이 무척이나 새롭고 좋았던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몰랐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기뻤다. ^ ^



저자가 이 책에 소개된 나라는 쿠바,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멕시코, 과테말라로 총 8개국이다. 그리고 여덟 개의 나라 모두 어느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역사, 정치, 사회, 경제, 자연환경의 측면에서 되새길 만한 이야기 꺼리를 최소한 한둘은 가진 나라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와 지리상 정반대에 위치한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참 많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로 인해 오랜 식민지 시대를 거쳤고, 독립한 후에는 낙후된 경제를 되살린다는 명분 아래 실시된 군사 독재를 겪었다. 그런 점들 때문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 낯설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마치 우리의 과거를 보는 듯한 마음에 안타깝기도 하고, 불안한 우리의 미래를 만나는 듯해 서글프기도 했다.

이들 나라 중 어느 하나 슬픈 역사를 갖지 않은 나라가 없었는데, 공통된 원인이 바로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이었다. 콜럼버스의 상륙을 시작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대표되는 서양세력은 아메리카 침략 전쟁을 통해 엄청난 수의 원주민을 대량 학살했고, 그들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전통 문화를 파괴했으며 그 자리에 자신들의 침략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을 세웠다. 그리고 잉카와 마야, 아즈텍 등의 고유한 유산들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엔 여전히 흉한 서양식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어 아픈 식민지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지금은 없어진 조선총독부 건물같은 느낌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체 게바라'로 대표되는 쿠바와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실천하고 반미주의를 외치며 미국에 대항해 독자노선을 걷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악랄한 독재정권으로 인해 잊을 수 없는 것은 칠레의 피노체트와 페루의 후지모리였다. 인간 백정으로 불릴 만큼 대학살을 저지른 피노체트는 끝끝내 반성의 기미없이 죽어버렸고, 일본계 페루 대통령이었던 후지모리는 경제를 안정시켰으나 온갖 비리와 인권 탄압 등의 범죄로 코너에 몰리자 페루를 버리고 일본에 망명해 버렸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세상을 휘어잡고 헌법을 뜯어고쳐 장기 독재 집권했으며,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면 국민들이 (그의 모든 잘못을 덮어버리고) 다시 그를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후지모리는 우리나라의 박정희와 참 비슷한 면이 많았다. 그래서 씁쓸했다. 

사회적으론 아르헨티나의 '5월의 어미니회'를 잊을 수 없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탄압한 아르헨티나의 군부에 대항해 매주 목요일 하얀 스카프를 메고 항의집회를 열어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은 그녀들. 사라져 버린 자식들을 대신해 민주화를 외치는 그녀들의 모습은 여전사와 다름없었다. 사체 발굴, 금전 보상, 기념물 건립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5월의 어미니회와 비교해 어느새 그 의미가 희석되어버린 듯한 우리의 5ㆍ18 민주항쟁을 떠올리는 저자를 보며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5월의 어머니회가 나이든 어머니들이 모여 매주 항의집회를 연다는 점에서 나는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여는 우리의 '정신대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그녀들의 외로운 투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경제적으론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식민지배로 낙후되었고, 미국의 '신자유주의'로 황폐해져 있었다. 한때 호황을 누렸다가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무분별하게 수용해 경제가 파탄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볼 때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또한 힘든 남미의 여러 국가들이 우리의 과거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개방을 요구하고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는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다. 무너진 경제로 허덕이는 남미와 지금 우리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한숨만 깊어질 뿐이다.

또한 남미에 강하게 부는 '중국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영향력이 남미까지 미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적 발전과 거대한 인구로 인한 원자재와 대두 같은 식량 수입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의 나라에 경제적 힘이 되어주고 있단다. 반대로 비교적 싼 인건비로 근근히 살았던 과테말라에는 중국의 값싼 인건비가 독이 되어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관광자원으로 이어지는 남미의 자연환경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다. 모두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즐겨보는 영화 잡지의 기자가 어느날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간 남미여행을 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린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곳들 또한 나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곳은 바로 거대 석상 모아이가 있는 이스터 섬이었다. 저자도 적극 권하는 이곳은 전에 티비에서 모아이의 정체에 대해 추적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는지라 그곳의 설명이 한층 실감나게 다가왔다. 언젠가 늙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와 함께 영화 <후아유>에서 그 정체를 처음 접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 '티티키카'도 흥미로웠다. 호수가 얼마나 크면 그 위에 갈대로 만든 인공섬을 띄우고 살아갈까. 도무지 상상이 안된다. 더불어 티비 화면에서 볼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우리나라의 마이산 탑사같은 신비로움이 느껴졌던 곳 '마추픽추'. 마야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곳에 지그재그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날이 오긴 할런지. 또한 멕시코의 마야-아즈텍 유적의 피라미드들도 그에 못지 않게 신비스러웠다. 인류 최대의 원시림 아마존에서 따뜻하고 느리게 흐르는 리우네그로 강과 차고 빠르게 흐르는 아마존 강이 만나 12km 가량 서로 섞이지 않고 나란히 흐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장관이었다.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본 저자는 그곳에서 슬픔과 환희, 절망과 희망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삶의 여유를 잃지 않고 낙천적으로 사는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 그런 그들을 보고 있으면 물질적 풍요를 위해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지금보다 조금 덜 가지고 조금 덜 누리더라도 진정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와 현재의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것들을 비교적 쉽고 편하게 들려주는 책,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 미처 알지 못하고 관심을 갖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남미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한 탓에 읽기가 아주 쉬운 편은 아니었지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앎의 기쁨과 편견을 깨는 짜릿함을 즐길 수 있었던 책이었다. 내가 느꼈던 즐거움들을 보다 많은 분들이 느낄 수 있었음 좋겠다. 앞으로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책을 내고 싶다고 하니 손호철 교수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







* 보탬 *

책의 쿠바 여행기 첫머리에 나오는 콜럼버스의 발견과 정복 이야기.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정복'한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백배 공감한다. '신대륙'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 단어 하나에서 유럽인들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그들이 인디오라고 부르는, 원래 오랜 시간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의 입장에선 그들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평온한 삶을 깨는 '침입자'다. 어느날 내 집에 들어와 대대로 살아왔던 땅을 빼앗고 온갖 자원을 빼앗고 목숨까지 빼앗는 잔학무도한 강도인 셈이다. 유럽인들의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곧 그곳에 살아왔던 원주민들의 존재를 그대로 무시해버리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영어시간에 아무런 의심없이 Columbus discoverred America라는 문장을 수동태로 바꾸며 우리도 은연중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유럽인들처럼 그를 당연히 위대한 '발견자'라고 생각하게끔 교육받았다. 은연중에 백인 우월주의적 사고에 물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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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사랑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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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선조들은 사랑방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민들은 농번기의 긴 시간을 때우는 공간으로, 선비들은 손님 접대에서 당론이나 국론 형성의 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랑방을 활용했다. 우리네 선조들이 머물던 전통가옥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사랑방. 역사학자 이덕일은 이 책 안에서 잠시나마 사랑방을 부활시킨다. 이덕일의 역사 사랑(舍廊). 그곳에서 들려주는 그의 역사이야기는 짧지만 강하고 방대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역사 사랑에서 논해지는 주제들에 대해 보다 많은 대화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저자는 사랑방의 문을 연다.

사랑방에서 논해지는 이야기가 다양했던 것처럼 이 책에서 거론되는 주제 또한 무척 방대하다. 역사를 기반으로 지금의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외교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시선은 거의 모든 곳에 닿아있다. 이 책의 모든 글들은 한 장 분량의 짧은 길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사속 장면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마지막엔 그와 비슷하거나 정반대의 상황을 보이는 현시대에 대한 담론으로 마무리된다. 조선 갑부 변승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의 재벌의 행태를 꼬집는다거나 원칙주의자 공자를 논하다가 원칙을 무시하는 론스타 영장 기각 사건을 들먹인다. 이 책을 읽으며 상황에 맞는 적절한 사례를 찾아내어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전하는 저자의 글솜씨에 여러번 감탄하게 된다.


책은 크게 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있으랴만은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단연 '중국의 동북공정'을 논한 곳이었다. 얼마전 해외에 수탈된 우리 문화재를 찾자는 취지를 가진 티비 프로그램인 <느낌표-위대한 유산 74434>에서 동북공정에 대해 언급된 부분을 들으며 혼자 분개한 여운이 남아서인지 특히나 그 부분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사실 역사를 왜곡해 우리의 조상과 옛 영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까지 뺏앗으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 국민이라면 그 누가 분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분노와 관심이 모아져 국가적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함이 심히 안타깝다. 

동북공정이 거짓말이라는 결정적인 근거인 '단군왕검'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기자조선을 주장하고, 대륙을 누볐던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속국 중 하나로 만들며,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뻗어있다고 주장하고, 고조선의 광할한 대륙의 증거인 비파형 동검을 감출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성으로 추측되는 유물들을 매장해 버리는 중국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또한 온 국민의 이러한 관심과 분노가 국가적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함이 안타깝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를 빼앗아가려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덤벼드는 중국의 파렴치한 행동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저런 핑계만 대다 매번 중국에게 당하기만 하는 무기력하고 안일한 우리 정부의 태도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왜곡의 가장 핵심목표는 바로 북한이다. 그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유사시에는 북한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그 땅은 우리 땅이었고 그 조상들의 역사는 중국의 일부였으니 북한 또한 자신들의 땅임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것들을 위해 중국은 지금 체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그 왜곡된 역사를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탐내고 중국이 북한에 손을 뻗는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웃을 둔 우리의 현실은 한말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에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놀랐던 것은 '순혈주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란 표현을 통해 은연중에 순수한 혈통임을 자부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생긴다. 오랜 세월동안 주변 민족과 전쟁이나 화친을 통해 유민들의 이동이 있었고, 발해만 보더라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 신라와 백제는 토착민들과 이주민이 섞여 세워진 나라고 고구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알고보면 우리 민족도 소수의 민족이 섞인 다민족인 것이다. 그러다 조선시대 소중화사상이 강조되면서 중국을 최고로 받들고 주변의 다른 민족은 우리보다 낮은 사람들로 치부하면서 순혈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단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그들 오랑캐와는 다르다는 일종의 자부심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그러나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국제결혼이 흔해지고 있는 지금, , 우리는 더이상 편협한 순혈주의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편견을 버리고 다함께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미처 몰랐던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한가득 쏟아지고 조상들을 거울삼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비춰보고 반성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우리의 조상과 역사들을 얼마나 천대해왔는지 되짚어 보게 한다. 다른 나라 역사가가 인정하는 단군조선을 정작 우리는 한낱 신화쯤으로 여기며 푸대접하는가 하면, 세계 각국에 약탈되어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찾으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어디에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하지 못한 문화재 반환이란 일을 일개 방송사 프로그램이 해낸 걸 보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착찹하다. 왜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역사적 사실이나 권리에 대해 떳떳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약자의 설움으로 치부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다.


- 한 세기 전 선조들이 바보라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당파와 이념을 뛰어넘는 민족적ㆍ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97쪽)


역사는 분명 과거의 일들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는 단절된 것이 아니기에 그것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이다. 뿌리 없이 꽃을 피울 수 없듯이 우리 또한 과거 없이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선조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영광과 치욕과 지혜와 실수를 면밀히 살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잘된 것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은 물론, 그들이 일군 우리의 땅과 문화와 역사와 전통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지켜야 하는 까닭은 보다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덧보탬 * 

예전 국사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민족을 칭하는 용어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은 중국인들이 자신을 뺀 주변 민족을 모두 '오랑캐(夷)'로 칭하는데서 나온 말로 그 내면에는 중국이 최고라는 중화사상이 깔려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동이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의 자만심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덕일 선생이 '동이족'이란 용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자꾸 그 국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 과연 이덕일 선생은 어떻게 생각할지도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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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무슨 영어야?! - 맨날맨날 틀리는 그 영어만 고치면 영어가 된다!
Chris Woo.Soo Kim 지음 / GenBook(젠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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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애인을 영어로 하면 lover일까? 루즈(rouge)와 립스틱(lipstick)의 차이는? 뒷산에 올라가는 정도의 등산은 climbing일까, hiking일까? 나를 소개할 때 solo라고 해야 하나, single이라고 해야 하나? '말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speak/talk/tell/say의 차이는 대체 뭘까? 각종 광고에 나오는 대기업의 슬로건인 bravo your life!, digital exciting은 과연 올바른 영어 표현일까? 미국에서도 선배, 동기, 후배라는 표현이 있을까? 핫도그(hot dog)는 정말 '뜨거운 개(-.-)'일까? salayman, sportman은 미국에서도 통용될까?

예전에 재밌는 라디오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펜팔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미국인 펜팔친구에게 'ㅇㅇ villa'라고 주소를 적어 보냈더니 자신을 엄청난 부자로 오해하더라는 내용이었다. 알고보니 우리나라에선 아파트보다 작은 규모의 다세대 주택을 '빌라'나 '맨션'으로 지칭하는 반면, 미국의 'villa'나 'mansion'은 잡지에 등장하는 헐리우드의 유명 연예인들의 집처럼 아주 호화로운 대저택을 의미한다고. 그러니 그 미국인 펜팔친구가 놀랄만도 하다. 사실은 나도 무척 놀랐으니까. ^ ^;


위에서 언급한 궁금증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 중 몇 개만 간단히 살펴보자.

'사랑'을 뜻하는 'love' 뒤에 '사람'을 뜻하는 '-er'을 붙여 '사랑하는 사람 = lover'라는 해석은 아주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lover'를 단순한 애인이 아닌,
육체적 관계를 맺은 애인이나 외도의 대상을 뜻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애인'은 영어로 'boy friend'나 'girl friend'로 쓰는 게 옳은 표현이며, 친구는 남자든 여자든 그냥 'friend'를 쓰면 된다.

또한 우리가 흔히 쓰는 루즈/립스틱은 또 어떠한가. rouge는 프랑스어로 빨강, 붉다란 뜻을 가진 단어다. 몇 년 전 호평받았던 니콜 키드먼 주연의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Moulin Rouge: 빨간풍차)를 떠올려보라. 영화 속에 빨간 풍차가 괜히 나왔던 게 아니었다. ^^ 고로 영어로 말할 땐 rouge가 아니라 lipstick써야 옳다. 덤으로 하나 더 찾아보자면, 우리가 보통 '스킨'이라고 부르는 기초 화장품은 영어로 skin이 아니라 toner가 바른 표현이다. skin은 익히 알다시피 살갗, 피부를 뜻하는 단어니까.

전세계에서 빛을 발하는 우리의 대기업의 슬로건에서도 잘못된 영어를 찾을 수 있는데, 그 한 예로 bravo your life와 digital exciting을 들 수 있다. bravo는 동사가 아닌 감탄사이므로 bravo your life란 문장 자체가 성립이 안 될 뿐더러, digital이나  exciting 또한 모두 형용사이므로 digital excitement라고 고쳐야 한다. 초일류기업으로 지칭되는 대기업에는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도 엄청 많을 텐데 어찌하여 이런 얼토당토 않은 슬로건을 그대로 쓰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광고 카피나 슬로건, 영화제목 같은 경우 문법상 틀려도 어감을 중시해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salayman과 sportman. 이 단어들이 과연 미국에서도 먹힐까? '~man'이란 표현은 요즘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spiderman처럼 만화 영웅들에게 주로 쓰는 표현이란다. 그래서 salayman, sportman이라고 쓰면 '~맨 시리즈'의 터줏대감 superman, batman, X-man처럼 superhero처럼 들린다고. 재미있으면서도 참으로 당황스런 예 중의 하나였다.



나라간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다양한 언어들이 유입되고 새로운 언어환경에서 선택받거나 사라진다. 생존한 외래어들은 본래의 뜻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의미나 발음에서 약간 변형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콩글리시'가 오랜 시간동안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까닭에 잘못쓰이는 의미를 한순간에 바로 잡는 것은 녹록찮은 일이다. 특히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이미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진 단어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잘못된 의미로 쓰이는 콩글리시들은 원어민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애초에 의도하는 바와 달리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영어표현의 마무리를 위한 콩글리시의 교정은 분명 필요하다. 완벽을 향한 마지막 2%라고나 할까. 위의 'lover'나 'villa'의 예만 보더라도 그 필요성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생활 속에 폭넓게 자리잡은 콩글리시를 찾아내어 올바르게 교정해주는 영어책인 <아니, 이게 무슨 영어야?!>는 여러 영역에 걸쳐 잘못 쓰이는 단어들, 영어가 아닌 영어들, 잘못 쓰는 문법, 그리고 미국 현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재기발랄한 말투는 독자에게 친근함을 주고, 책의 곳곳에 담겨있는 재미있는 삽화와 컬러풀한 색상의 구성은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엇보다 평소에 궁금했던 콩글리시에 대한 해결책을 시원스레 제시해주어 아주 맘에 든다. 그런 까닭에 조금씩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영어에 대한 지식이 시나브로 쌓이게 된다. 

내 안에 쌓여있던 콩글리시를 타파할 수 있는,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전해주는 영어책 <아니, 이게 무슨 영어야?!>.
영어라면 질색인 당신마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하며 살포시 추천해 본다. ^ ^











+ 딴지, 하나
- 책표지 왼쪽 위에 자리잡은 말풍선에 담겨있는 '맨날'은 '만날'로 고쳐야 한다. '만날'이 표준어다. 표지 뿐만 아니라 책 속에도 계속 잘못된 표기가 나온다. 흔히들 '맨날'이라고 잘못 쓰고 있고 그 말이 대중에게 친숙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것도 아닌 '책'에서는 올바른 표기법을 써야 하는 것 아닐까? 잘못된 영어는 바로 잡으면서 정작 우리말에는 소홀한 태도가 두고두고 아쉽다. (출판사측에서 늦게라도 고쳐주길 바랄 따름이다;)


+ 딴지, 둘 -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언어들이 유입되고 정착한다. 다양한 나라에서 들어와 굳어진 외래어들이 영어가 아니라고 해서 그것들을 콩글리시로 분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분명 영어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유입되어 굳어진 말들이 숱하게 있지 않은가. 물론 독자에게 그런 단어의 영어식 표현을 알려주기 위해 그것들을 언급했다는 것 쯤은 나도 안다. 그러나 영어든 독일어든 프랑스어든 우리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두 외국어다. 우리집에 놀러온 손님인 것이다. 그중 우리집에 눌러앉아 가족처럼 친해진 손님은 외래어가 된다. 다양한 외래어 중 미국(영국)산이 아닌 것을 콩글리시로 치부하는 저자의 태도는, 손님인 영어가 주인행세를 하는 것 같아 영 불편하다. 어쩜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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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 코치
존 가트맨 지음, 남은영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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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할까? 그렇다.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고결하지만 상대에 대한 내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것은 남녀 간의 이성적 사랑 뿐만 아니라 당연히 사랑이라는 띠로 이루어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는 더더욱 기술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2006년 8월에 방영되어 수많은 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MBC 스페셜 2부작 -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의 원작도서가 나왔다. 다큐멘터리를 직접 보진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원작도서가 출간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에 덥썩 책을 집어들었다. 아이는 물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싱글이 왜 이런 책을 읽느냐고 의아해 할 지도 모르겠지만, 평소 가까이 사는 언니와 조카들의 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그리고 나도 언젠간 부모가 될 거란 새각에서 이런 육아서는 내게도 흥미롭다. 물론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들 보다야 그 현실감이 덜하겠지만 말이다.


존 가트맨 박사의 저서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은 '아이들의 감정은 다 받아주고 그 행동은 고쳐주라'라는 명료한 주제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우선 독자가 어떤 부모인지 알려주기 위해 부모의 유형을 축소전환형, 억압형, 방임형, 감정코치형으로 나누고 각 유형에 대한 문제점과 사례 등을 달아놓았다. 가장 바람직한 부모의 유형으로 마지막에 제시된 '감정코치형'으로, 존 가트맨 박사는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훌륭한 '감정코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정코치의 5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아이의 감정을 인식하기
2) 감정적 순간을 친밀감 조성과 교육의 기회로 삼기
3) 아이의 감정이 타당함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경청하기
4) 아이가 자기 감정을 표현하도록 돕기
5)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면서 행동에 한계를 정해 주기

감정코치형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의 감정을 충분히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투정 정도로 여기고 그것을 부모의 권위로 제압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일에 일말의 죄의식을 느끼게 되거나 자기 감정을 믿지 못하게 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점점 서투르게 된다. 아이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면 우선 그것들을 받아주어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음을 아이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나 문제의 해결점을 찾게 하는 것은 그 다음에 이루어져도 늦지 않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 누구나 그렇듯이 아이들도 그런 감정을 갖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가 전혀 엉뚱한 문제에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낼 때마다 한 발 물러서서 아이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큰 그림을 봐야 한다. (123쪽)

사실 아이들이 투정을 부릴 때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받아주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녀들의 이야기를 끝없이 경청하고 공감해 서로 감정교류를 하기까지는 많은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저자는 특별히 감정코치가 적절히 못한 상황들에 대해서 따로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결혼과 이혼에 따른 아이의 정서, 아이에게 아버지만의 특별한 역할, 자녀 성장에 따른 감정코치 방법 등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위에서 말한 것들이다.


백지상태의 아이들에게 하나의 인격을 형성하는 틀을 마련하고 그들의 삶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육아'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 무엇보다 보람차고 중요한 일일 것이다. 또한 내 아이가 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오늘부터라도 아이들의 말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본다면 아이가 진짜로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어떤 위안을 원하는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대화를 하는 주된 목적은 합의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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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대교북스캔 클래식 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명신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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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때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에게 매료되어 그녀의 출연작들을 섭렵하던 시절, 단지 그녀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봤던 영화가 바로 '폭풍의 언덕(1992)'이었다. 제대로 된 원작은 고사하고 전체 줄거리까지 완전히 묻어둔 채로 영화감상을 시작했는데 방대한 원작을 두 시간 안에 줄여놓다보니 생략과 상징이 난무하여 전혀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아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줄리엣 비노쉬의 얼굴 외엔 영화 속 장면 하나 떠오르지 않지만, 너무나 음울한 느낌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내게 그 영화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물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싶지만.

그때의 음울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테스', '제인 에어' 등의 고전을 섭렵하는 와중에도 '폭풍의 언덕'에는 쉽사리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읽혀왔고 추천하는 고전이 아닌가. 고전도 즐기고 그때 영화로 인해 만들어진 편견도 없앨 겸 언제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완역판이 출간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왔다. 그래서 기회는 바로 지금이닷!했는데 책을 처음 받았들었을 땐 550 페이지의 압박에 순간 헉;했다. 그러나 이야기에 탄력이 붙자 그 두께도 이겨낼 수 있었다. ㅎㅎ (워낙 유명한 책이라 줄거리는 생략; ^ ^;)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의 등장으로 시작해 그의 퇴장으로 끝이 난다. 어느날 예고없이 나타난 히스클리프로 인해 두 집안을 휩쓰는 거대한 폭풍의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그가 사라짐으로 인해 사나웠던 폭풍은 잠잠해지고 예전의 평화로움이 되살아난다. 그는 그렇게 왔다가 사라졌다. 어디서 왔는지, 왜 그렇게 갔는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은 채. 소설 속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과연 악마였을까. 아니면 단지 격정적인 열정이 복수라는 그릇된 방향으로 이어져버린 그저 불쌍한 한 인간이었을까. 과연 집착과 광기에 가까운 그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를 떠올리면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성격이 결코 맘에 들진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발산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흐릿한 예전 기억만으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거의 대등한 비중의 주인공인줄 알고 있었는데 책의 중반 쯤 캐서린 언쇼가 죽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직 절반이나 남았는데 벌써 죽으면 어쩌라고! -0- 그러나 곧 그녀의 분신 캐서린 린튼이 어머니의 바톤을 이어받아 히스클리프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솔직히 제멋대로 히스테리를 부리다 자기 분에 못 이겨 죽음까지 이른 엄마 캐서린 언쇼보단 다소 거만하고 가끔 짜증날 정도로 인정이 넘치지만 명랑하고 눈 앞에 닥친 현실을 현명하게 이겨나갈 줄 아는 딸 캐서린 린튼이 훨씬 맘에 들었다. 다른 분들도 그렇지 않았는지? ^^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지독히 비정상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다. 폭군 술주정뱅이 힌들러, 정신착란증을 보이는 캐서린, 사랑과 복수에 집착하는 히스클리프, 이기적이고 비겁한 어린 린튼, 그런 짜증나는 린튼을 늘상 이해하는 어린 캐서린, 주위사람들에게 잠시도 저주를 멈추지 않는 하인 조셉 등 어찌 저런 사람들을 한데 모아놨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도 보인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이후 삶을 포기해버린 힌들러, 조건 때문에 린튼과 결혼하고 그런 그녀를 미워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놓치 못하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때론 오만하지만 사려깊은 어린 캐서린 등을 통해 에밀리 브론테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모습과 따뜻한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다가도 어느새 동정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동정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으니.. 비겁쟁이 어린 린튼과 저주쟁이 하인 조셉이었다. 그들은 절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0-)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어긋난 사랑으로 린튼 남매-애드거와 이사벨라는 물론 그들의 자식인 캐시와 린튼까지 불행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만약 그들이 사랑을 이루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의 행복여부는 둘째치고 최소한 린튼 남매와 그들의 부모님의 삶이 그토록 슬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린튼의 부모님은 캐서린의 열병에 옮아 죽는다). 그러나 삶이란 언제나 그런 최선의 방식으로만 이어지지 않는 법. 그래서 이렇게 슬프고 지독하며 광적인 사랑이 생기고 그것이 또다른 불행의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하는 것이리라.


-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히스클리프에게 알릴 수가 없어.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잘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뜬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똑같아. (131쪽, 캐서린의 말 中)


서른의 나이로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폭풍의 언덕>은 고전의 감투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다중적인 인간의 내면과 삶과 사랑의 여러 모습을 담아내고 있어 책을 덮고 난 후에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고전은 여러번 읽을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많다고 하니 다음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진한 인상을 남긴 인물은 히스클리프다. 그를 생각하면 사랑인지 집착인지 구별조차 힘든 광기어린 그의 삶의 목표가 더욱 슬퍼진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살아 숨쉬는 내내 이런 욕구불만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던 히스클리프. 그는 과연 저쪽 세상에서는 그가 원하던 캐서린과의 사랑을 이루었을까. 부디 그곳에서는 마음놓고 그녀와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길! 그래서 사랑으로 상처받은 그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길!!

 

 

 

+ 혼잣말 +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원래 그 시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그렇게도 많이들 죽었을까? 왜 이 책 속 등장인물들은 그리도 잘 죽는지.. 원래 모두 약골인 건지.. 캐서린의 열병이 옮아 죽고(애드거 린튼의 부모님), 심하게 성질 부리더니 얼마후 바로 병 걸려 죽고(캐서린 언쇼), 타지까지 가서도 젊은 나이에 죽고(이사벨라 린튼), 폐병으로 죽고(힌들리의 아내), 찬 날씨에 밖에 좀 있었다고 독감 걸려 죽고(애드거 린튼), 원래 약해빠져서 콜록거리다 죽고(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 혼자 알 수 없는 환희에 들떠서 갑자기 죽고(히스클리프).. 죽고 죽고 죽고... 이렇게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죽어버린다. 아무리 200년 전이라고 해도 두 집안의 사람들이 이렇게 줄줄이~ 줄초상 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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