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사랑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옛날 우리 선조들은 사랑방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민들은 농번기의 긴 시간을 때우는 공간으로, 선비들은 손님 접대에서 당론이나 국론 형성의 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랑방을 활용했다. 우리네 선조들이 머물던 전통가옥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사랑방. 역사학자 이덕일은 이 책 안에서 잠시나마 사랑방을 부활시킨다. 이덕일의 역사 사랑(舍廊). 그곳에서 들려주는 그의 역사이야기는 짧지만 강하고 방대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역사 사랑에서 논해지는 주제들에 대해 보다 많은 대화와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저자는 사랑방의 문을 연다.

사랑방에서 논해지는 이야기가 다양했던 것처럼 이 책에서 거론되는 주제 또한 무척 방대하다. 역사를 기반으로 지금의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외교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시선은 거의 모든 곳에 닿아있다. 이 책의 모든 글들은 한 장 분량의 짧은 길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사속 장면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마지막엔 그와 비슷하거나 정반대의 상황을 보이는 현시대에 대한 담론으로 마무리된다. 조선 갑부 변승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의 재벌의 행태를 꼬집는다거나 원칙주의자 공자를 논하다가 원칙을 무시하는 론스타 영장 기각 사건을 들먹인다. 이 책을 읽으며 상황에 맞는 적절한 사례를 찾아내어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전하는 저자의 글솜씨에 여러번 감탄하게 된다.


책은 크게 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이 있으랴만은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단연 '중국의 동북공정'을 논한 곳이었다. 얼마전 해외에 수탈된 우리 문화재를 찾자는 취지를 가진 티비 프로그램인 <느낌표-위대한 유산 74434>에서 동북공정에 대해 언급된 부분을 들으며 혼자 분개한 여운이 남아서인지 특히나 그 부분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사실 역사를 왜곡해 우리의 조상과 옛 영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까지 뺏앗으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우리 국민이라면 그 누가 분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분노와 관심이 모아져 국가적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함이 심히 안타깝다. 

동북공정이 거짓말이라는 결정적인 근거인 '단군왕검'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기자조선을 주장하고, 대륙을 누볐던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속국 중 하나로 만들며,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뻗어있다고 주장하고, 고조선의 광할한 대륙의 증거인 비파형 동검을 감출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성으로 추측되는 유물들을 매장해 버리는 중국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또한 온 국민의 이러한 관심과 분노가 국가적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함이 안타깝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를 빼앗아가려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덤벼드는 중국의 파렴치한 행동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저런 핑계만 대다 매번 중국에게 당하기만 하는 무기력하고 안일한 우리 정부의 태도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왜곡의 가장 핵심목표는 바로 북한이다. 그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유사시에는 북한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그 땅은 우리 땅이었고 그 조상들의 역사는 중국의 일부였으니 북한 또한 자신들의 땅임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것들을 위해 중국은 지금 체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그 왜곡된 역사를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탐내고 중국이 북한에 손을 뻗는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웃을 둔 우리의 현실은 한말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에 게을리 해서는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놀랐던 것은 '순혈주의'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란 표현을 통해 은연중에 순수한 혈통임을 자부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생긴다. 오랜 세월동안 주변 민족과 전쟁이나 화친을 통해 유민들의 이동이 있었고, 발해만 보더라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 신라와 백제는 토착민들과 이주민이 섞여 세워진 나라고 고구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알고보면 우리 민족도 소수의 민족이 섞인 다민족인 것이다. 그러다 조선시대 소중화사상이 강조되면서 중국을 최고로 받들고 주변의 다른 민족은 우리보다 낮은 사람들로 치부하면서 순혈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했단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그들 오랑캐와는 다르다는 일종의 자부심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그러나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국제결혼이 흔해지고 있는 지금, , 우리는 더이상 편협한 순혈주의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편견을 버리고 다함께 공존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미처 몰랐던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한가득 쏟아지고 조상들을 거울삼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비춰보고 반성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우리의 조상과 역사들을 얼마나 천대해왔는지 되짚어 보게 한다. 다른 나라 역사가가 인정하는 단군조선을 정작 우리는 한낱 신화쯤으로 여기며 푸대접하는가 하면, 세계 각국에 약탈되어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찾으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어디에 얼마나 분포되어 있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하지 못한 문화재 반환이란 일을 일개 방송사 프로그램이 해낸 걸 보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착찹하다. 왜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역사적 사실이나 권리에 대해 떳떳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약자의 설움으로 치부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다.


- 한 세기 전 선조들이 바보라서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다. 당파와 이념을 뛰어넘는 민족적ㆍ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97쪽)


역사는 분명 과거의 일들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는 단절된 것이 아니기에 그것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이다. 뿌리 없이 꽃을 피울 수 없듯이 우리 또한 과거 없이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선조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영광과 치욕과 지혜와 실수를 면밀히 살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잘된 것을 계속 지켜나가는 것은 물론, 그들이 일군 우리의 땅과 문화와 역사와 전통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지켜야 하는 까닭은 보다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덧보탬 * 

예전 국사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민족을 칭하는 용어 중 하나인 '동이족(東夷族)'은 중국인들이 자신을 뺀 주변 민족을 모두 '오랑캐(夷)'로 칭하는데서 나온 말로 그 내면에는 중국이 최고라는 중화사상이 깔려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동이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의 자만심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덕일 선생이 '동이족'이란 용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자꾸 그 국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런 의견에 대해서 과연 이덕일 선생은 어떻게 생각할지도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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