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기대없이 응모한 이벤트가 걸려서 생긴 예매권으로 극장을 찾았다. 버스가 안 와 거금을 들여 좌석버스를 탔으나 가는 길에 차곡차곡 신호에 걸려 기다리다보니 영화는 벌써 시작, 어쨌거나 영화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영화에 몰입하려 했다. 사실 몰입이 필요없는 영화긴 하다. 그렇지만 절대 몰입이 안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허술한 시나리오는 이미 각오하고 갔다. 이런 영화의 주목적은 일단 웃기는데 있기 때문에 관객도 그 허술함을 어느정도는 이해한다. 그렇다해도 참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장면전환 또한 부자연스럽다. 한 장면과 다른 장면의 연결이 뚝뚝 끊어진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에피소드 또한 따로 논다.
코미디 영화답게 캐릭터들도 희화화 되어 있다. 독불장군형 김수미와 임채무, 약간 모자란 푼수형인 윤다훈과 안연홍(그들은 시트콤 '세친구' 커플이기도 하다!), 그나마 가장 정상형인 유진과 하석진. 전형적인 과장 코미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시도때도 없이 욕을 해대며 웃기려는 조폭코미디와 달리 이 영화엔 욕이 별로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극중 김수미가 감탄사 역할을 하는 shit~!는 조폭코미디 속에 난무하는 욕설에 비하면 애교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선남선녀인 유진이나 하석진도, 코믹연기로 인기몰이했던 윤다훈이나 안연홍도 아닌, 코믹연기로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중견배우 김수미와 임채무가 아닐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그리고 그들을 본 순간 필히 이 영화는 웃길 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됐다. 아니 웃기려고 노력하는 영화일 거라는 편견을 가졌다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김수미는 '안녕, 프란체스카'와 '가문의 위기/부활' 등의 여러 작품을 통해 이미 코믹 아이콘으로 자리를 굳혔지만, 중후한 이미지의 임채무는 모레노 심판으로 완벽 변신한 '돼지바' 광고 한 편으로 단숨에 코믹스타로 떠올랐다(영화에도 모레노 심판이 잠시 등장한다; ㅋ). 물론 그뒤에도 '황금어장'을 통해 꾸준히 그 끼를 선보인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랜 연기 경력이 증명하듯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서슴없이 망가지며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하며 웃음을 전해주는 두 중견배우의 대활약은 영화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특히 호텔 '키스신'은 정말 압권이었다! ㅋㅋ)
또한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 유진. 사실 아이돌 가수 출신의 유진이 스크린 데뷔작으로 코미디 영화를 골랐다는 게 좀 의아했다. 이미지 관리하는 입장에서 망가지는 연기가 쉽지 않을텐데? 하지만 영화시작과 함께 의문은 풀렸다. 코미디 영화에서 유독 혼자 안 망가지고 안 웃기는 사람이 있다.(이성재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나 혼자 안 웃겼다.라고 고백했듯이!) 이 영화에서 그런 캐릭터가 바로 유진이 연기한 박은호였던 것이다. 지적이고 참하기까지 하다. 한결같이 모두 망가지는 상황속에서도 그녀 혼자 꿋꿋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망가지는 연기가 최고라는 말은 아니다. 오해마시라~;) 단 한 컷, 예외가 있는데 바로 무도장 무술씬이다! 망가지기 보다 생뚱맞은 춤솜씨에 박장대소했던 장면이다.
유진이 출연한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비교적 무리없는 연기를 선보인다는 평을 들었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선 어땠는지 몰라도 영화에서 만난 그녀의 연기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대단한 내공을 요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얼굴 표정이나 감정 표현, 시선처리 등이 어색하고, 영화의 긴 호흡을 이어가는 것도 좀 벅차보인다. 다른 가수출신 배우들보단 좀 나은 편이긴 하지만 아직은 좀 더 채워야 할 부분이 많은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많은 부분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배역을 고른 점은 칭찬할 만하다. 작품보는 눈은 여전히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꾸준히 노력해 앞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줄 날이 오길 바란다.
영화를 다보고 나오는 길에 같이 본 언니에게 어떻냐고 물었다. '웃기네'. 그녀의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요즘 웃을 일이 없었는데 그냥 웃기엔 괜찮은 것 같다'.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덧붙여 준다. 그렇다. 발로 쓴 시나리오일지라도 나를 웃게만 해준다면 만사 OK인 분들에게 적극 권장할만한 영화다. 그러나 나처럼 그것만으론 부족한 관객에겐 비추인 영화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발로 썼다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인즉 작품성따위 필요없이 웃고 싶은 영화를 찾는 분들에겐 효용성을 발휘하는 영화라는 이야기다.
그나마 같이 본 언니가 아주 즐겁게 웃는 모습을 위안 삼으며 영화관을 나왔다. 역시 모든 문화상품은 그 성격에 맞는 고객을 만났을 때 가장 빛을 발하는 법이다. 영화같이 본 언니가 바로 그런 고객이었던 것이다! 진지한 예술성 영화와 함께 가벼운 상업영화 또한 자기 나름의 역할이 있고 의미가 있다. 언니에게 이 영화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그럼 나는 어땠냐고? 뭐, 이 글을 다 읽었다면 말 안해도 알 거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내 돈 주고 봤다면 웃다가도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좌석버스비가 생각나긴 했다(영화비는 공짜였으니;).
+ 군소리 - 그러나 상대를 비하하거나 특정 신체부위를 언급하는 저질 유머나, 웃음을 유도하려는 가학적 상황연출이나, 귀를 막고 싶은 욕설들 없이 상황과 배우의 망가짐으로 관객을 웃기는 점에서 이 영화는 어느정도 '착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비록 쉬트~가 난무하긴 하지만;). 아이들과 봐도 그리 민망하지는 않을 듯도 하다. (그렇다고 권하기도 그렇지만;)
+ 덧붙임 - 참! 깜박했는데,, 닥종이 앞에 두고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 이야기할 때 잠시 울었다. 그것 역시 뻔한 스토리긴 하지만 아무리 코미디라도 엄마 이야기는 항상 눈물이 나나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