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3 - Spider-Man 3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드뎌(?) <스파이더맨 3>를 봤다. 호평과 혹평이 난무하는 터라 궁금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아주 즐겁게 봤다. 2시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이 지겹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함께 매달려 다니느라 어느새 시간이 후딱 지나가더라. 크게 기대하지 않은 덕에 기분좋게 즐겼다고나 할까.

사실 난 블록버스터를 그리 선호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블록버스터 영화가 갖고 있는 나름의 미덕-대게는 볼거리(=오락성), 때론 덤으로 작품성까지-때문에 나도 때때로, 또는 자주 블록버스터를 보러 영화관을 찾곤 한다. 점점 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그것들은 꽤나 매혹적이다. 또한 거대 영화들은 호평이든 악평이든 항상 화제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설레발치는 언론에 대한 반발심으로 끝내 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솔직히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품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봤냐면, 갖고 있는 영화예매권의 날짜가 다가오는데 거미 인간이 스크린을 모조리 먹어치운 바람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괴물>때만 해도 8개관 중 2~2.5관 정도였는데 <스파이더맨 3>은 무려 3개관이 넘게 걸려있다. 전국적으로 8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점령했다니 할 말이 없다.(작년에 독점 논란을 일으켰던 <괴물>은 600여개였다.) 영화관측은 되는 영화에 올인하려 하고 배급사는 단기간에 수익을 챙기려고 하다보니 개봉 첫 주 거미인간은 스크린을 싹쓸이했고 엄청난 관객을 삼켰으며 언론은 그에 관련해 매일 기사를 쏟아낸다. 이쯤되면 영화선택의 주도권은 이미 관객의 것이 아니다.

멀티플렉스의 보급화로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 품었던 기대는 슬프게도 기대일 뿐이었다. 오히려 거대영화의 발판이 되어 버렸다. 큰 영화 하나 개봉하면 상영관은 같은 영화로 도배되어 선택의 폭은 오히려 좁아지고, 전부터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던 작은 영화들은 상영관을 못잡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년과 올해에 개봉했던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나 <숨> 등이 바로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난 그 영화들을 보려고 손꼽았지만 이 작은 도시의 멀티플렉스는 이 영화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되는 물건을 밀어주는 자본주의 논리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으로선 아쉬운 일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문을 열었던 1편은 흥행성공과 더불어 거미인간의 열풍을 이끌었지만 내겐 너무나 뻔하고 시시한 영화였다. 그래서 현란한 CG조차 지겨워질 정도였다. 그러다 얼결에 2편을 봤는데 전편과 달리 2004년의 최고 영화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아주 재미있었다.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함께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을 탄탄하게 그려낸 2편은, 평범하지만 1편의 후광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과 달리 그 자체로 빛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가장 발군이었다. 그럼 3편은 어땠냐고? 간단히 말하자면 1편보다는 낫지만 역시나 2편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했다.



<스파이더맨 3>은 기대만큼 스펙터클하고 짜릿한 영화다. 새롭게 등장한 뉴 고블린, 샌드맨, 베놈 등 특색있는 악당들의 다양한 모습에 눈이 즐겁고,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숨막히는 추격씬과 대결씬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보는내내 몸이 움찔움찔한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지겹게 여길 틈도 없이 긴장과 스릴을 선사한다. (참고로,, <킹콩>의 공룡과의 싸움씬은 감탄을 자아냈지만 지겨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또한 화려한 특수효과와 액션들 사이사이에 살짝 코믹한 요소가 등장하고,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리제인과의 로맨스도 흥미를 자아낸다.(모든 영웅들의 애인이 그렇듯 그녀 또한 영웅을 사랑한 죄로 살 떨리는 일을 여러번 겪는다.) 특히나 고층빌딩에 거미줄을 뿜어내며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의 공중곡예는 여전히 즐겁다.

그러나 이야기의 얼개는 헐겁다. 그래서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3년 간의 준비 끝에 선보인 <스파이더맨 3>은 보다 거대해진 스케일과 풍성한 볼거리를 가득 안고 돌아왔지만 많아진 악당들이 제각각 일을 벌이기에 바빠 그 사건들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렀는데도 사건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자 감독의 마음도 급했던 걸까. 영화는 악당들이 너무 급하게 개과천선하는 우를 범한다. 그들이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전제가 깔렸더라도 너무나 갑작스런 그들의 변심(?)을 공감하기는 힘들다. 악당이 온순한 양이 되어버리자 사건도 순식간에 종결된다. 허무하다. 있는대로 일을 벌인 탓에 달리 해결 방법이 없었겠지만,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던 관객의 입장에서 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아무리 허망하다 할지라도 <우주전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그 영화는 반전은..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0-;;)


앞서 얘기했듯이 <스파이더맨 3>에는 3명의 악당이 등장한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적인 자신과의 싸움까지 더한다면 4명인 셈이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은 전편보다 훨씬 더 힘겨운 싸움을 해나간다. 3편에서는 친구가 적이 되고 적이 다시 친구가 된다. 증오가 복수로 변하고 복수가 또다른 복수를 부른다. 그리고 복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용서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세상이 평화롭지 못한 까닭은 용서가 복수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갈등하는 자아, 아버지를 잃은 절친한 친구, 딸의 병원비를 구하는 탈옥수, 라이벌 사진기자라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적들은 '복수심'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인다. 분노와 원망이 커져 상대에 대한 '복수'로 이어지면서 그들은 점차 괴물로 변해간다. 그리고 삼촌을 죽인 진짜 범인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떠난 메리제인에 대한 야속함이 더해져 정의의 용사 스파이더맨은 암흑의 세계로 빠져든다. 증오의 후유증은 영웅조차 피해갈 수 없나 보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나운 블랙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 (이부분에서 거미인간은 처음으로 눈에 독기를 품는다. 안그래도 큰 토비의 눈,, 부릅뜨니 정말 크더라; 얼굴에 반이 눈이여~;; +ㅇ+)

그러나 스파이더맨이 누구인가. 우리의 절대 영웅 아닌가. 누구나 예상했듯이 스파이맨은 영화의 주인공답게 그 난국을 벗어나 '복수'가 아닌 '용서'의 깃발을 높이 든다. 그리고 그것을 몸소 실천함으로서 용서의 미학을 증명한다.(그럴줄 알았다!) 괴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 속의 분노와 복수심이라고. 용서함으로 당신 또한 편안해지라고.

 
허술한 점이 없진 않지만 <스파이더맨 3>은 썩 괜찮은 오락영화임은 틀림없다. 오락영화의 본분이 신나게 즐기는 것임을 떠올려볼 때 이 영화는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나는 영화보는 내내 충분히 신났고 즐거웠다. 물론 별다른 기대가 없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어쭙잖게 세계를 구한다고 설쳐대며 미국 최고를 외치는 영화보다는 '용서'라는 다소 교훈적 메시지를 선사하는 이 영화가 더 좋고, 빈틈없이 완벽한 영웅보다 갈등하고 실수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흠씬 풍기는 영웅이 더욱 사랑스럽다. 





 2007/05/09, 햇살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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