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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티드 베일 - The Painted Vei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참 오랫만에 영화를 봤다. <페인티드 베일>은 연기 잘하는 배우 에드워드 노튼과 영화 <킹콩>으로 내게 그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나오미 왓츠가 만난 영화로,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서머짓 몸의 <인생의 베일>을 세 번째 영화화한 작품이다. 아직 원작인 <인생의 베일>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영화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니 영화의 결말이 원작과는 좀 다르단다. 영화 결말이 조금 더 마음이 애틋한 것 같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펼쳐지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영화는 아주아주 느린 화면으로 천천히 음미하듯 넘어가는데 이야기의 진행은 의외로 빠르다. 보통 영화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약간의 줄거리가 영화 초반부에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고 어느새 본론으로 들어가 그들 두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랑 없인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키티는 점점 늘어나는 나이와 주변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첫 눈에 반한 의사 페인과 사랑없는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의 직장을 따라 중국으로 가게 되는데, 활발한 성격의 키티와 달리 차분한 성격의 페인은 서로 간의 성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한 채 무료한 결혼생활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 키티는 사교모임에 만난 매력적인 외교관과 불륜의 관계에 빠져들고 진심으로 키티를 사랑했던 페인은 억제할 수 없는 배신감에 불타오른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미움으로 콜레라가 창궐하는 오지의 마을로 자원하며 키티를 억지로 데리고 간다. 콜레라라는 치명적인 위험 앞에서 둘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지만 그 위험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마지막 한 줄이 영화의 대부분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키티의 '내면적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원작을 아직 안 읽어봤으므로 주워들은 내용이다;) 원작과 달리 영화는 키티와 페인,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페인을 사랑할 수 없었던 키티와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 믿었으나 그녀의 배신에 고통스러워 하는 페인. 낯선 환경과 맞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지속해야 했던 키티의 고통도 공감이 가지만 그보단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사랑에 괴로워하는 페인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페인은 자신의 사랑을 배반한 그녀에 대한 증오와 여전히 그녀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자신에게 복수한다는 생각에 페인을 증오하던 키티도 그의 또다른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어느새 점점 마음을 열어간다. 그리고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는 그곳에서 그들은 오랜 시련을 넘어 겨우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던 그날 밤의 그 뭉클함과 마지막 용서를 구하던 페인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릿하다.
내용만으로는 뻔하디 뻔한 러브스토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진부하다기 보다는 그들의 엇갈린 사랑에 가슴이 짠해졌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지루해서 하품도 났지만 마지막 페인의 한 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렸다. 페인과 키티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사랑과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예전에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어떤 영화를 중간부터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 반전에서 선보이던 빛나는 그 소년(?)의 연기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훗날 제목도 모르던 그 영화에서 열연했던 배우가 '에드워드 노튼'이고, 영화 제목은 <프라이멀 피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영화가 노튼의 데뷔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곤 기절할 뻔 했다. 노튼은 그 영화로 각종 시상식에서 조연상을 휩쓸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게 신인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잘 생긴 외모와 현란한 학벌 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로 먼저 불리는 에드워드 노튼.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영화는 왠지 믿음이 간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고. 다만, 오랫만에 본 그의 얼굴에서 나이의 흔적이 너무 많이 보여 조금 슬펐지만 그와 함께 더욱 깊어진 그의 연기가 나를 기쁘게 한다.
빛나는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킹콩의 사랑을 받던 나오미 왓츠는 검게 물들인 짧은 머리의 키티로 돌아왔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킹콩> 밖에 없는지라 뭐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연기는 참 좋더라. 그런데 볼수록 니콜 키드만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 뿐일까나. 어쨌거나 미인들은 얼굴에 진흙을 말라도 예쁘니 이것 참.. (지금 생각이 났는데 <21그램>에 숀 펜과 함께 연기했던 배우가 나오미 왓츠였다. 그리고 기사를 읽다 알았는데 나오미와 니콜은 친한 친구 사이라고. 또한 나오미가 니콜을 닮은 듯 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이 아니었나 보다. ^^;)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의 안정적 연기와 더불어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들은 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더불어 영화에 완전히 녹아드는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까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이 영화는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나 또는 서정적인 시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절제된 러브스토리를 오랫만에 만났다.
영화의 초반과 마지막에 나오는 꽃가게, 꽃을 바라보며 그녀가 하는 말은 비단 꽃 뿐만 아니라 사랑에도 유효하다. 일주일도 못가서 시들어 버릴 꽃을 사는 돈을 아깝워 할 수도 있지만 그 꽃은 시들 때까지 우리에게 돈으로 책정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랑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오랫만에 만난 가슴 따뜻한 러브스토리, <페인티드 베일>.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