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대담은 스포일러 등의 문제로 전문을 싣고 있지 않습니다.

 

<미세레레>로 돌아온 프랑스 스릴러의 자존심,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국내 프랑스 번역의 1인자 이세욱의 대담 

 

         

 

이세욱  당신의 소설을 번역하는 것은 『늑대의 제국』 『검은 선』에 이어 이번으로 세번째다. 앞선 세 작품은 번역자가 아니라 독자로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첫 소설을 읽자마자 당신의 특별한 재능에 주목했고, 이후 당신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죽 지켜보았다. 당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공할 서스펜스의 위력에 휘말린다. 마치 악마적인 기계장치에 빠져버린 것처럼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헤어날 수가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독자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다. 프랑스 신문과 방송들도 당신을 일컬어 ‘서스펜스의 거장’ ‘마법사’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당신만의 비방이 있는가?

그랑제  비결이 있다면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자체에 있다. 서프라이즈로 가득 찬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들은 스릴러 작가들이 어떤 비법이나 특별한 작법에 따라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무엇보다 먼저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본디 그 자체에 뜻밖의 전개나 반전 등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독자들의 의표를 찌르고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구성의 비법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해낸 이야기 자체다. 진실을 찾아 나아가는 인물들과 우여곡절과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을 담고 있는 아주 복잡한 이야기 말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나는 어떤 구성 방법을 적용해서 작업하지 않는다. 그저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다. 내 이야기는 뭐랄까, 하나의 음악처럼 만들어진다. 먼저 하나의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다음에 나는 그 멜로디를 편곡하여 관현악으로 만든다. 하지만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멜로디이지 화음이나 편곡이나 어떤 기교가 아니다. 특히 기교는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냈다고 할 때는 그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혼령의 숲』은 한 젊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파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여자는 수사판사이고 애정 문제로 마음을 앓고 있다. 450쪽이 지나면 독자들은 이 여자를 아르헨티나의 으스스한 숲속에서 보게 된다. 처음엔 어느 누구도 이런 도착점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이런 놀라운 결말을 지닌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것, 그것이 내 작업의 요체다.
따지고 보면 이런 글쓰기는 내가 기자였던 시절에 일하던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랑스 독자들에게 무언가 놀라운 것,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들을 제공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서스펜스의 반대 지점에 있는 것은 뻔한 결말이다. 결과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면 책장을 빨리빨리 넘기고 싶은 욕구가 생길 리 없다. 끊임없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세욱  그러자면 아주 자세한 시놉시스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랑제  그렇다. 나는 각각의 장章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를 기록한 아주 상세한 시놉시스를 만들어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대개 각각의 장은 기계장치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으면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번 장만 읽고 그만 자야지 하다가도 그 장이 끝나면 더 읽고 싶어져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이세욱  놀라운 결말을 지닌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당신의 소설들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이야기의 뼈대에 살을 붙이기 위해 엄청난 연구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소설에는 역사, 사회, 과학 등에 관한 정보가 아주 풍부하다. 때로는 그 정보들이 너무 촘촘해서 지나치게 교육적인 의도를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랑제  사실 기자 시절에 자료 조사를 치밀하게 하는 버릇을 들였다. 나중에 소설을 쓰면서 내가 조사하고 연구했던 것들을 종종 활용했다. 지금도 나에게 부족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르포 기사를 쓸 때처럼 여행을 하고 조사 작업을 벌인다. 그럼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채워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일은 아주 미묘하다. 서스펜스와 정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다보면 독자들을 따분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한편으로는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상상력을 전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내 상상력은 실제의 역사와 현실에서 비롯된다. 사실 내 이야기에는 언제나 현실적인 바탕이 있다. 실제와 허구를 결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로 일어났거나 벌어지고 있는 일에 사실이 아닌 것을 뒤섞으면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세욱  같은 맥락에서 디테일의 정확성을 고집하는 까닭을 묻고 싶다. 당신의 소설에서는 언제나 세부사항을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의지,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것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미세레레』의 주인공 카스단이 매일같이 먹는 약은 그냥 여느 항우울제나 항불안제가 아니라 ‘데파코트’ 500밀리그램 한 알과 ‘세로플렉스’ 10밀리그램 한 알을 섞은 것이다. 빌헬름 괴츠가 사는 곳은 그냥 ‘가장’이라는 거리가 아니라 정확하게 그 거리 15-17번지에 있는 건물의 3층이다. 볼로킨이 스스로에게 마약 주사를 놓는 장면이나 SM 클럽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랑제  내 소설들에는 하나의 현상이 있다.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못 환상적이다. 그 자체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있을 법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매우 사실적인 느낌을 주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내 이야기에 진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세욱  독자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묘사된 장면의 내부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인가?

그랑제  그렇다. 독자들이 내 이야기를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깊은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디테일들은 또다른 측면에서 소설에 기여한다. 독자들이 현실감을 느끼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내가 문득 칠레의 현대사를 놓고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독자들은 아주 주의 깊게 그 정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그것은 내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세욱  하지만 외국 독자들에게는 사실성을 높이려는 당신의 배려가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디테일들이 때로는 문화적 장벽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랑제  내가 프랑스의 옛 영화나 흘러간 노래들을 소설에서 다루면 프랑스의 젊은 독자들은 그런 것들을 낯설어한다. 하물며 외국의 독자들은 프랑스 사회와 문화의 세세한 요소들을 얼마나 낯설게 느끼겠는가? 나는 종종 내 소설의 번역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문화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이세욱  문화적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소설의 인물들이 움직이는 현실적인 공간들을 답사하고 당신을 직접 만나는 것도 그런 길들 가운데 하나다. 주석을 달아서 번역자가 불쑥 개입하는 방식도 있지만 나는 소설의 서스펜스를 감소시키는 그런 무거운 방식을 피하고자 한다. 소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은 내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출판사의 온라인 카페에 올릴 생각이다.

그랑제  어쨌거나 매우 고마운 일이다. 보아하니, 한국 독자들도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세욱  그렇지는 않다. 스릴러는 SF와 마찬가지로 하위 장르에 속한다는 편견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당신처럼 스릴러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작가도 드물고 독자들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당신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 스릴러의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은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랑제  한국의 스릴러 영화는 매우 강력해 보이던데.

이세욱  한국 영화를 많이 보는가?

그랑제  스릴러 영화를 여러 편 봤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아주 훌륭하더라. <괴물>도 봤다. 비록 영화를 통해 풍광을 보았을 뿐이지만, 한국이 매우 매력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가는 길에 부산을 경유한 게 전부라서 한국에 가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이세욱  여행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은 여행을 아주 많이 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미세레레』를 번역하면서 소설의 무대로 설정된 파리의 여러 성당과 몽수리 정수장, 라르마탕 서점 등을 찾아가보았다. 『늑대의 제국』을 번역할 때는 터키를 여행하기도 했다. 일종의 ‘그랑제 문학 순례’인 셈인데 그때마다 공간의 특성을 포착하는 당신의 감수성에 놀랐다.

그랑제  대학 시절에 나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책만 들이파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을 뿐 여행 따위는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책이었고, 가장 멋진 여행조차 책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공부를 마치고 언론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르포 기행을 많이 하게 되었다. 프랑스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던 내가 온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뉴욕 같은 대도시들뿐만 아니라 북극 지방이나 사막이나 정글 같은 아주 험난한 여행지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르포 기사를 쓰는 한편으로 여행중에 내가 느낀 바를 기록해나갔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그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경험, 공간에 대한 감수성을 활용해서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추리소설은 언제나 여행을 담고 있다. 어떤 세계, 어떤 영역으로 들어가는 여행 말이다. 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주인공들과 더불어 칠레와 아르메니아를 여행하고, 다른 나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요컨대 나는 여행, 취재, 조사 작업, 시사 감각, 어떤 여행지에서 받은 인상 등이 내 소설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을 아주 기쁘게 여겼다. 하지만 서른 살이나 되어서야 여행을 하기 시작했으니 아주 늦은 나이에 세상물정을 알게 된 셈이다.

이세욱  내가 알기로 당신은 한때 악의 기원에 관한 3부작을 쓰고자 했다. 그런데 프랑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신이 그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이유는 무엇인가?

그랑제  사실이다. 3부작이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3부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에서 3부작을 쓰는 것이 너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작가치고 3부작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스릴러 작가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심하다. 그래서 나는 3부작 타령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애초에 계획했던 작품들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구상했던 3부작의 첫 작품은 잘 알려진 대로 『검은 선』이고, 두번째 작품은 악마의 문제를 다룬 『림보의 서약』이다. 세번째 책은 『혼령의 숲』인데, 선사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악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인간이 악한 동물이라는 것, 같은 종의 개체들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희귀한 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결국 나는 독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3부작을 다 쓴 셈이다. 다만 그 작품들에 ‘3부작’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모든 소설에서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세레레』를 읽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당신의 3부작 가운데 마지막 권을 읽었는데 아주 좋더군요.” 『미세레레』는 3부작에 들어 있지 않지만, 독자들은 이 작품 역시 악의 기원을 규명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모든 책에서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세레레』 역시 악에 관한 하나의 설명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나쁜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문제를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벌어진 흉악한 범죄들을 놓고 보면, 괴물과도 같은 범인들의 배후에 끔찍한 어린 시절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 악의 열쇠, 악의 기원은 사랑이 없는 세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나쁜 교육이다.

이세욱  사실 폭력이나 악은 당신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다. 한국의 일부 독자는 당신의 소설들이 인간의 잔인하고 어두운 이면을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듯하다. 당신이 폭력을 묘사하는 것은 사회 고발의 한 형식인가?

그랑제  언제나 그렇다. 처음엔 약간의 오해도 있었다. 내 소설에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내 묘사가 너무 치밀하고 정교하다면서 나 자신이 폭력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말했다. “아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쓴다. 내가 폭력에 관해서 글을 쓰는 것은 폭력이야말로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을 용인한 적이 없다. 폭력을 이해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에 관한 글을 쓴다. 그들은 사랑의 문제를 안고 있다. 나라고 해서 애정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인간은 왜 폭력적인가? 인간은 왜 타자에게 고통을 가하는가? 나에겐 그게 미스터리다. 나는 인간의 그 미스터리에 관해서 쓰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든 인간이 괴물로 돌변했던 시기가 있다. 나는 몇몇 아시아 국가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거기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8년 캄보디아에 혹독한 독재체제가 들어섰을 때 문맹의 젊은 농민들이 갑자기 괴물로 변하여 사람들을 죽였다. 이십 년 전에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런 사건들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다. 사람들이 돌연 괴물로 변하는 일은 캄보디아나 르완다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벌어진다. 인간은 그럴 수 있는 존재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잔인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내 소설들은 주로 악당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악한 자들은 사람들을 잇달아 살해함으로써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런데 전쟁 때에는 모든 병사가 연쇄살인범으로 변할 수 있다. 한 가정의 착한 아들이었던 병사가 갑자기 상부의 명령을 받고 살인마로 변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런 현상은 인류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전에는 내가 그 까다로운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은 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가? 인간은 왜 타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는가? 정말이지 나는 그 물음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다음 소설에서도 그 문제를 다룬다. 선사시대에 인간들 사이에 폭력과 전쟁이 출현한 것은 그들이 농업과 목축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남의 가축과 식량을 훔치려고 함에 따라 전쟁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모두가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도처에서 짐승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다가 원시 상태에서 조금 벗어나 경작을 시작하고 가축을 갖게 되면서 자기네 것을 노리는 이웃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 만남에서 소유 의식과 시샘과 폭력이 생겨난다.

이세욱  장자크 루소가 생각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나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인가?

그랑제  그렇다. 바로 루소가 한 얘기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착한 미개인이 있었다. 소유가 발생하면서 착한 미개인이 악당으로 변한 것이다. 루소가 약간 몽상적이긴 했지만,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시샘, 이웃이 가진 것을 탐하는 마음, 그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세욱  다시 『미세레레』로 돌아가서, 프랑스 언론의 보도를 보니까 이 작품의 탄생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전하고 있더라. 애초엔 영화의 시나리오로 구상되었다던데……

그랑제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프랑스의 한 영화잡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시네 라이브>라는 잡지다. 그 친구들이 한 가지 기획을 했다. 작가들에게 자기들이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고르게 한 다음 그 영화의 속편을 구상하여 시놉시스를 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가장 먼저 원고를 청탁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서 속편이 나오지 않은 작품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마라톤 맨>을 골랐다. 당신도 아마 보아서 알겠지만, 아주 훌륭한 스릴러 영화다. 나는 그것의 속편을 구상했다. <마라톤 맨>에서 나치 잔당과 대결을 벌였던 주인공이 몇 해 뒤에 다시 나치 잔당과 맞닥뜨리는 상황을 상상했다. 동일한 주인공이 남미와 미국에 정착한 네오나치 세력과 대결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써나갔다. 읽어보니 재미가 있었다. <시네 라이브>의 친구들에게 원고를 보냈더니 아주 훌륭하다면서 잡지에 곧 싣겠다고 했다. 내 소설을 내는 출판사에도 미리 알려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알뱅 미셸 출판사의 사장에게 말했다. “리샤르, 미리 알아두라고 하는 얘긴데, 이런 시놉시스를 잡지에 실을까 하는데……” 그는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아니, 이런 것을 잡지에 거저로 내준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잡지에 실을 수 없어. 이 시놉시스로 소설을 쓰게. 내가 잡지사에 협박을 해서 싣지 못하게 하겠어. 만약 그들이 이것을 싣는 날에는 소송을 당하게 될 거야.” 결국 <시네 라이브>는 시놉시스를 싣지 못했고,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미세레레』를 썼다. 결과적으로 리샤르의 생각이 옳았다. 덕분에 내가 멋진 소설을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세욱  몇몇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것으로 아는데, 요즘도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가?

그랑제  이젠 영화 쪽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때는 내가 구상한 이야기를 시나리오의 형태로 쓰기도 했다. <비독>이 그런 경우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작업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어떤 멋진 이야기가 떠오르면 소설을 쓸 것이다. 내가 잘하는 일만 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나는 혼자 작업할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 자기가 구상한 이야기를 남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시나리오 작가든 자기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만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이세욱  당신의 소설들을 영화로 각색하는 일에는 여전히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그랑제  내 소설을 각색하는 경우에는 감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어느 정도 작업에 참여한다. 현재는 『미세레레』의 각색을 놓고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이다. 곧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미켈레 플라치도를 만나기로 했다. <로만초 크리미날레(범죄 소설)>라는 갱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그 영화 한번 봐라. 한 세대 전의 이탈리아 사회를 아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다. 그 감독이 『미세레레』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한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다음에 만나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소설들의 공동각색 작업은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처음으로 각색한 영화를 봤을 것이다. <크림슨 리버> 말이다. 관객들은 그 영화의 결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의 결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샀다. 그것을 두고 나는 곧잘 이런 농담을 했다. “영화를 잘못 만든 것이 나에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책을 많이 팔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제 곧 <미세레레>의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아 그래, 한 가지가 더 있다. 카날 플뤼스에서 방송하게 될 스릴러 시리즈의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카날 플뤼스는 프랑스의 거대 티브이 채널이다. 거기에서 <황새의 비행>을 가지고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다. 원래 어떤 제작사에서 영화를 만들겠다고 가져간 작품인데 십 년이 지나도록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작권을 되찾아서 다른 제작사와 티브이 시리즈를 만들기로 다시 계약한 것이다. 사실 내 소설들을 영화화하는 데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영화로 각색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데군데 잘라내어 영화를 만들기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 난관이 너무 많다.

이세욱  『검은 선』과 『림보의 서약』도 영화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랑제  먼저 『림보의 서약』에 대해서 말하자면,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로 한 감독은 내 친구인 프레데릭 셴데르페르다. <범죄 현장> <비밀 요원> <악당> 등을 만든 감독이다. 우리는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다. 그뒤에 제작자가 다른 것을 요구해왔다. 그 바람에 소설의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내가 보기에 셴데르페르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 프로젝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영화라는 게 늘 그런 식이다. 몇 해 동안 공을 들이고도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기 일쑤다.
『검은 선』은 프랑스의 또다른 감독 올리비에 마르샬이 영화로 만드는 중이다. 캐스팅은 이미 끝냈다고 하는데, 감독이 티브이 쪽의 다른 일을 맡는 바람에 촬영이 지연되고 있는 듯하다. 내 소설들이 영화로 각색될 때마다 매우 불안하다. 결국 내 소설과 전혀 다른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세욱  어쨌거나 소설을 낼 때마다 영화 제작자들이 달려든다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닌가?

그랑제  그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내 소설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크게 성공한 적은 없다. <크림슨 리버> <늑대의 제국> <돌의 집회> 어느 것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제작자들이 계속 내 소설을 산다. 대개는 어떤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해서 성공하지 못하면 제작자들이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게 영화 산업의 생리가 아닌가? 그런데 내 경우에는 매번 제작자가 나타난다. 내 이야기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세욱  <돌의 집회>의 여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당신이 직접 모니카 벨루치를 선택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랑제  그건 기자의 추측이다.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판에서 작가에게 무슨 힘이 있는가? 내가 영화 제작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흔히들 영화에서는 감독이 대장이다, 제작자가 대장이다 하는 식으로 말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영화판에는 대장이 없다. 영화마다 사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니카 벨루치를 캐스팅한 것은 당시에 그녀가 스타였기 때문이다. 그런 스타가 주연을 맡으면 영화가 잘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대장은 바로 모니카 벨루치다. 시나리오 작가는 대개 여러 번 작품을 고쳐쓴다. 처음엔 제작자의 주문에 따라 시나리오를 쓴다. 그러고 나서 감독이 선정되면 이번엔 감독의 요구에 따라서 모든 것을 다시 쓴다. 새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감독은 캐스팅에 들어가고 스타를 끌어들인다. 그러면 작가는 그 스타에 맞춰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피카소가 해놓은 스케치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색칠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영화판에는 늘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서 끼어들어서 걸작 스케치를 망쳐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은 뤽 베송처럼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이세욱  당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없는가?

그랑제  없다. 정말이지 그건 전혀 다른 일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우선 나는 작가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지만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른다. 다음으로, 영화는 글쓰기와 전혀 다른 직업 철학을 요구한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작업한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영화를 만들 때는 그와 정반대다. 영화감독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촬영감독의 의견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하고 배우들을 배려해야 하며 제작자의 요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그러지 않았는가. 영화감독 노릇을 하는 것은 놀이공원의 범퍼 카를 타고 『전쟁과 평화』를 쓰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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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2-0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랑제의 '미세레레'는 이세욱님의 번역이어서 더 기대됩니다.
검은선이 충격적이었지만 참 좋았고...그래서 그의 전작을 두루 섭렵하게도 됐었으니까요.
이세욱님의 경우 '로아나'에서 신뢰을 굳히게 되었는데,
로아나 한권을 번역하기 위해 영역본까지 두루 섭렵하신 열정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암튼, 책은 주문 완료 하였으니,
'닥치고 독서~!'하면 될테고,
혹시, 인터뷰 전문 내용을 볼 수 없을까요?--;

외국소설/예술MD 2011-12-05 16:31   좋아요 0 | URL
네, 인터뷰 전문은 2권 맨 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비밀인데요. 이세욱 번역가를 직접 만나는 행사도 곧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