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샌닥) 

영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 (스파이크 존즈) 

 

          

너네한테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모리스 샌닥의 원작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 말 안 듣는 꼬마는 자기 내면의 일부로 빚어낸 듯한 괴물들 사이에서 대장을 자처한다. 괴물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데, 원서에서는 little thing이라고 불리는 친구들이다. 자기보다 덩치도 크고 못생긴 '작은 놈들' 사이에서 대장이 된다는 건 여러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남겨두고 다시 떠나오는 것까지도.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녀석의 표정은 시작할 때처럼 심술꾸러기가 아니다. 꼬마 맥스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자신의 little things를 놓아두고 온 게 아닐까. 그래서 이 동화는 악동과 괴물들의 신나는 조합을 선사하면서도 편안하게 마무리되는 교훈극이다. 가족이라는 튼튼한 현실이 이 책의 시작과 끝을 보듬으면서 꼬마의 꿈을 안전하게 둘러싸고 있으니까. '아이들을 위해'라는 관점에서 보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보수적이고 안전한 선택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이 책을 좋아할까. 아마 모두가 꿈 속 어딘가에 '작은 놈들'을 남겨두고 떠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기괴한 생물들이 사는 쓰잘데기 없는 섬. 딱 그 나이대에는 피터 팬보다 더 친구 같았던 존재들, 그래서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녀석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영화는 어른들의 시점으로 다시 그 섬을 방문한다.

  우리나라의 영화 배급 업체들은 요정이나 귀여운 용모의 괴 생명체들이 나오는 영화를 전부 가족용으로 프로모션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가장 극명한 낚시 사례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일 것이다. 스페인 내전을 우화로 재해석한, 사람 얼굴을 '줘 패서' 뭉개버리는 이 극악무도한(?) 작품을 해리 포터 수준의 모험물로 홍보했으니 상처받은 동심을 어찌할 것인가. 그 사정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도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봐봐야 원작보다 훨씬 흉포해진(!) 주인공 맥스의 나쁜 행동 밖에 배울 게 없다. 원작과 달리 맥스는 반성하지도 않고, 얻은 교훈도 없다. 오히려 늘 하던 대로 멋대로 살다 보니 별 희한한 놈들 만나서도 기죽지 않고 즐거운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맥스는 파악 불가능한 꼬마다. 영화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고, 말 그대로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멋대로다. 영악하고 인정사정 없다. 잘 놀다가 덜컥 집에 가겠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동요도 없다. 비록 원작에 비해 투쟁에 가까운 현실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맥스는 망설이지 않는다. 이 녀석은 꿈 속 네버랜드와 앞으로 살다가 늙어 죽어야 할 세계의 차이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거라곤 괴물들이다. '작은 놈들'. 꼬마가 떠날 때 가지 말라고 붙잡던 놈들. 허리춤까지 바닷물이 차오르자 이내 포기하고 망연히 맥스를 바라보는 놈들. 작별인사인지 잡으려는 마지막 시도인지 알 수 없이 치켜든 한 팔. 영화 속 세상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는 맥스가 유일하게 모르는 것이 바로 이놈들과의 미래다. 이제 이놈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란 사실, 그래서 오래간 잊었다가는 가끔 야근에 지쳐 선잠을 잘 때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게 전부일 거라는 사실 말이다. 

  맥스는 괴물들에게 '너네한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여기서 엄마는 중산층 가정의 따뜻한 어머니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영화 속의 맥스 모친께서는 성격이 만만치 않으시다. 맥스의 저 대사 속 '엄마'는 말 그대로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존재다. 엄마는 하늘이 나와 맺어준 사람이다. 신이라고 바꿔 말해도 상관없다. 마땅히 원래부터 있어야 할 것. 세계의 중심. 삶의 의미. 이 '작은 놈들'은 그런 것 하나 없이 고독과 싸우며 생애를 하루씩 연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이제 겨우 재밌어지나 했는데, 간다니. 네가.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맥스는 알 수 없다. 어른이 되어보지 못했으니까. 어떤 의미가 생길 정도로 특별한 존재를 만나고, 또 그것을 잃는 게 무엇인지 아이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괴물들은 알고 있다. 스크린을 통해 자신들을 보고 있는 어른들처럼. 

  이 영화를 보는 어른들은 한때 괴물들을 섬 속에 버려두고 온 아이들이었으며, 언젠가부터는 그 자신이 섬에 남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괴물이 되었다. 은근히 채도를 줄여 을씨년스런 느낌이 드는 이 섬은 어른들의 섬이다. 어릴 적 버려두었던 섬,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그 안에 걸터앉아 그 무엇을 영원히 기다리는 섬.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서로 맞딱드리는 섬. 어디에나 있는 아주 작고 영원한 섬 말이다. 

 

-외국소설 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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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4-1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틀 띵스가 없는 어른인가봐요, 이 책을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아들 아이가 읽어달라 해서 수도 없이 읽었건만, 대체 왜 이게 재밌다는 건지, 끝까지 이해가 안 갔던 기억이...

외국소설/예술MD 2011-04-12 18:25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 때 이 책을 못 봐서 재미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이 먹고 보니 왠지 좀 서럽고..ㅠㅜ 그러고보니 이번 글이 연재 중에 가장 사적인 글 같네요. ㅎ

밤의숲 2011-04-1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무척 좋아하는 그림책과 영화입니다. 그런데 원서에서 wild thing이 아니라 little thing이라고 표현된 적이 있던가요? 문득 생소하게 느껴져서 의아하네요. ^^;
저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아 다운받아 보았지요. 보고 나니 너무 좋아서 국내에서 영영 개봉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ㅎ 괴물들이 맥스에게 “Will you keep out all the sadness?”라고 묻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_<

외국소설/예술MD 2011-04-14 13:44   좋아요 0 | URL
어 그런가요? 뭔가 제가 오해를? 아니 이렇게 선명하게 틀릴 수도 있는걸까.. 요즘 제 기억력이 급 퇴보중이긴 한데요. 그래도 이렇게 선명하다니 뭔가 뇌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생긴 걸까요. 갑자기 걱정이 되네요.;

국내에 DVD가 발매된 직후에는 안좋은 평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이들 용으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나본데 아무래도 타게팅이 틀렸죠. 그건 감독 탓(?). 그렇지만 대신에 이 영화를 마음에 담은 어른들이 꽤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ㅎ 책 읽고는 짠했는데 집에서 영화 혼자 보면서 울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