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코이즈미 타카시)
봄 쌍둥이
-대부분의 수학 소설들이 실패한 이유는 수학을 미스테리로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천재들의 암투는 아무리 쉽게 해설해 봐야 해설 따로 소설 따로가 되기 일쑤였다. 풀 수 없을 것같은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과정은 미스테리적인 전개에 가장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자들이 그 풀이의 전개를 따라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러나 해설에 신경쓰다간 죽도 밥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수학 소설은 대개 교양(을 위주로 한) 소설이 되거나 수학자들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소설로 변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그 가운데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이 소설에서 수학은 그저 신기하고 아름다운 세계의 비밀을 말해줄 뿐이다. 천재 수학자의 맞상대는 꼬마와 가정부이기 때문에, 이 소설 속의 수학은 어떤 공식도 필요로 하지 않고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서도 자유롭다. 꼬마에게 말해주는 수학의 세계. 이 가벼움이 성공의 비결이다.<박사가 사랑한 수식> 속의 수학들은 더이상 숫자 공식이 아니라 현자의 깨달음, 명언이나 잠언 같다. 수학자들이 발견한 우아한 진리를 쉽게 공유하기. 심지어 오가와 요코는 수학이 오히려 얼마나 써먹기 쉬운 아름다움인지를 보여 주었다. 그 어떤 멋진 광경이나 생물체도 언어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퇴색하지만, 수학은 그 아름다움을 완전히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티없이 착하고 순박한 이야기와 수학은 서로를 북돋아준다. 등장인물들은 수학의 명징함을 사랑하게 되면서 더욱 순수한 이미지를 얻게 되고, 수학은 이 착한 사람들의 언어가 됨으로써 호감을 북돋운다. 이 소설에는 어떤 계몽도, 지적 충족을 위한 해설도 없다. 수학은 투쟁 대상이 아니라 이 세계의 신비한 질서를 찾아내는 이야기, 그것도 예상외로 아름답고 신비한 이야기다. 소설의 설정과 수학의 멋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얽혀들어간 경우는 무척 보기 어렵다. 좀더 수학에 단련된 독자들은 테드 창의 단편 '0으로 나누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봄볕처럼 따스하고 선한 수학 이야기는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울 듯하다. 투쟁하는 수학, 생과 맞바꾸는 수학, 몰락하는 천재들, 비극적인 사건들. 여름, 가을, 겨울.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이런 것들이 없는, 아마도 유일한, 볕 좋은 봄날의 수학이다.
영화는 신기할 정도로 원작과 닮아 있다. 부드러운 볕이 영화 내내 비쳐온다. 집 안은 단촐하고 정갈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카메라는 늘 인물들을 안정된 위치에 잡아준다. 그래서 영화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사실 이 정직한 연출은 담백함 외에 딱히 장점이 없는 많은 일본영화들의 공통점이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화는 대개 괜찮은 영화가 아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도 마찬가지다. 기지가 번뜩이지도 않고, '평범하지만 과감'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담담한 연출이 원작 소설과 마침 잘 들어맞았다(결국 원작 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원작의 미덕까지 그대로 계승한다. 계속 뭔가를 더 전해주려 애쓰던 수많은 실패작들과는 달리, 그저 함께 웃고 격려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 말이다. 어쩌면 그게 요즘 국내에서 사랑받는 일본영화들의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대단해지려들지 말고 그저 함께 누워 쉬는 것. 편안한 휴식. 길고 따뜻한 봄.
-외국소설MD 최원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