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소설 

원작- 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티븐 스필버그)

 

          

 필립 K. 딕 앞에서 해선 안될 말

  

 -그럭저럭 먼 미래. 앤더튼 국장은 범죄를 미리 예측해서 예비 범죄자를 잡아 가두는 경찰이다. 그는 이 범죄 예측 시스템을 신뢰한다. 세 명의 예언자 중에 두 명 이상이 같은 결론을 내리면 범죄는 실행된 것으로 간주된다. 세 예언자 중 한 명이 '범죄 불성립'의 영상을 보여주었을 경우 이 법 집행은 33%의 틀렸을 확률이 있지만, 이런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견)' 사건은 발생 자체가 거의 없다. 따라서 발생 확률과 틀렸을 확률을 곱하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 지루한 재판 공방을 벌이면서 잘못 판결을 내릴 확률보다는, 차라리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묵살하고 예비 범죄자를 잡아두는 쪽이 확률적으로 안전하다.

  그런데 위 얘기를 들으면 어딘가 미심쩍다. 확률적으로 안전하다니. 이 범죄 예방 시스템은 절대적인 안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 아닌가? 여기서 다시 확률이 등장하면 이 시스템의 순결함은 어떻게 되나? 그리고 확률이 등장해 버린다면, 온갖 인간적인 것들, 감정, 음모, 욕망들 역시 이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이유가 없잖은가? 절대 체계가 아니지 않은가? 아니, 절대 체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인간이 관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오류의 투입이 아닌가? 우리는 본의 아니게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앤더튼 국장을 따라가며 이 질문들을 함께하게 된다... 소설이 좀더 그렇다. 왜냐하면

  원작에는 톰 크루즈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앤더튼 국장은 피로에 쩔은 배불뚝이 중년남이다. 본의아니게 음모에 휘말린 것을 알고 허둥대며 도망친다. 왕년의 실력을 깨워내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현장에서 뛰는 경찰이 아니다. 그는 완벽해야 하는 시스템의 신봉자였고 그 시스템의 어딘가로부터 배반당했으며,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거대한 괴물을 만들어 내었는지 깨닫는다. 그는 내내 힘겨워하고 후회하고 의심한다. 애당초 미래를 볼 수 없는 인간은 그 어떤 데이터를 통해서도 여전히 미래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 그러나 이 결론을 인정하려면 자기자신의 과거부터 부정해야 한다. 수없이 처넣은 인간들과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나 자신'. 즉, 서구 합리 문명이라는 매트릭스 안에 빠진 불쌍한 인간. 필립 K. 딕은 우울한 중년남 앤더튼을 거의 지옥까지 밀어넣는다. 그때 같이 위기에 빠지는 자들은 바로 독자들이다.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이라 믿고 있는 시스템 외에는 아무 가진 것이 없는 자들. 앤더튼은 우리의 친구이고 우리를 대신해서 지옥 구경을 잠시 한다. 그러니 필립 K. 딕을 조심하시라. 그는 유머와 재치가 넘치지만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엄청 화를 낸다. 왜냐면 그거 다 거짓말이니까. 이 단편집을 포함한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서구적 합리를 신봉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다.

  ...그렇다면 톰 크루즈가 나온 영화는 어떨까. 스티븐 스필버그가 대충 만들었을 리는 없다. 물론 '간지쟁이' 앤더튼 국장은 사건의 실체를 찾아가는 순간에도 철학적 고찰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걸 폄하할 생각은 없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정해져 있다. 적절한 액션 씬을 유지하면서 음모를 진행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하다(생각보다 이 영화는 액션 장면의 비율이 높다. 총질 주먹질을 덜 할 뿐이다). 따라서 앤더튼은 의심할 시간이 없고, 결국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불합리한 시스템은 앤더튼의 합리성에 의해 고발당한다. 필립 딕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영화에서는 더 나은 합리가 옛날 버전의 합리를 정복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액션영화이면서 동시에 뭔가 있어보이는' 영화를 만들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은 것뿐이다. 스필버그는  '톰 크루즈로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원작의 미래 예측 시스템을 가져다가 권력암투와 미남 액션을 잘 버무린 괜찮은 작품이다. 타겟이 분명하고 연출은 그에 따라 철저히 합목적적이다. 재미있는 영화... 잠깐? 합목적적이라고? 당신 그거 필립 딕이 얼마나 싫어하는...

 

-외국소설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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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3-29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지막에 결국 웃게 만들어주시는 엠디 님.
저는 근데 아마 '액션영화이면서 동시에 뭔가 있어보이는' 영화로 보이지 않아서 이 영화를 안 본 모양이에요. 스필버그에게 따 당한 관객. ㅋ 톰 크루즈의 왠지 미욱해보이는 - 저에게만 그렇겠지만 - 인상도 늘 별로구요.
하지만 소설은 은근 재미있어 보이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3-29 18:41   좋아요 0 | URL
소설 재미있어요. 저는 PKD 좋아합니다 ㅎ.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의 단편집 중 하나인데요, 수록된 단편들은 웃긴 것도 있고 심각한 것도 있어요. 주로 암울한 소재들이지만 재미들이 있죠. 장편들은 좀 루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저는 좋아합니다).

PKD의 경우, 역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블레이드 러너구요. 원작소설/영화 모두 좋았던 사례로 늘 꼽히기도 하죠. '있어보이는 액션영화'이기도 하겠군요. 그러고보면 토탈리콜도 있고.. 아... 그걸 할 걸 그랬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