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제가 어린이 (좌익)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그리고 편해문의 놀이 책들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고래가 그랬어에서 나온 놀이 전문가 편해문의 동남아 촬영 사진집이라는 책 소개를 처음 들었을 때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_-;; 그 컨셉트만으로도 이 책은 근래 가장 잊혀지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움은 경악에 가까운 것이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대는 안했습니다.;; 아마추어가 찍은 '동남아의 어려운 삶 속에서도 꽃피는 아이들의 순수함' 블라블라...
사실 저는 에드워드 슈타이켄의 <인간 가족전>같은 시리즈를 싫어합니다. 무작정 인간의 긍정적인 본성을 내보이면서 세상을 (본의건 아니건) 미백하려는 시도는 영 불편해서요. 우는 애 앉혀놓고 강제로 스케일링을 하는 기분이랄까. 휴머니즘 사진의 근간까지 부정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가능한 모든 이미지는 이용당한다'는 수잔 손탁의 고찰에 가장 순진하게/바보같이 들어맞는 그 모습들은 사진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더군요. 예 뭐, 어중간한 놈들이 꼭 그런 핑계를 대긴 합니다만.
(위) 수잔 손탁 <타인의 고통>
그래서 <소꿉 Children's Playing House>은 어떻다?
좋았습니다. 참 좋았어요. 일단 사진들이 준수합니다. 정적인 모습을 찍을 때는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꽉 채우거나 정리하려는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욕망) 시도가 엿보여서 종종 아쉽긴 했지만, 뛰노는 아이들의 스냅 사진들을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구성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완벽한 모델들입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빈곤함이 엿보이는 이미지들을 '잘 감상했다'고 말하면 다소 (손탁적으로) 폭력적인 감상일까요. 그래도 '보기에 좋았다'고 고백은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감상적인 휴머니즘이 엿보이는 이 사진들에서 왜 불편함이 엿보이지 않았을까...
아마, 사진 속의 아이들이 늘 행복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인 듯해요. 사진들 속에서는 권태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한숨이, 딱히 다른 걸 할 것도 없는 현실에 대한 자조가 가끔씩 고개를 듭니다. 물론 이것들은 그래도 뛰어놀지요.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는 유희 이전의 근본적인 행위, 마치 업보 같습니다. <날개>의 작가 이상의 글 중에 '권태'라는 제목의 수필이 있었지요. 거기 보면 시골 애들이 하다 하다 할 게 없어 똥을 눈 다음에 그 똥이 웃기다고 하하거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는 그 즐거움 여하를 떠나 어떤 필수요소, 통과 의례, 시지프스의 바위 같아요. 이런 고찰은 유년 시절에의 회한 섞인 미화와는 반대 방향에 있습니다. 오히려 냉정한 느낌까지 풍기죠. 늘 즐거우리란 보장은 없으나 해야 하는 것. 놀이는 아이들의 사명인 것이죠...
그리하여, 의도치 않았더라도
“이 작업은 상업적 장난감과 미디어, 게임과 학원과 시험에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빼앗긴 채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비춰볼 거울을 만드는 일이었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아이들은 동무들과 웃고 뛰놀며 보내느라 하루해가 짧아야 마땅하다. 그런 아이들의 삶과 웃음과 놀이를 사진으로 담아내고 그들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여정의 출발이다.”라고 책을 펴낸 의도를 이야기한다. -책소개 중에서
이 나라의 아이들이 잃어버린 '뛰노는 동심'을 담겠다는 그의 바램은 책에 담긴 그의 의도와는 약간 다른 성과까지 얻어낸 듯합니다. 편해문이 발견한 것은 놀이의 동물적인 특성입니다. 웃고 떠들며 인간애를 느끼는 것 이상의 것. 즉, 그런 밝은 부분만이 아니라 '그림자의 냄새'도 미리 맡아보는 시간. 모든 동물들이 새끼 때 놀이를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듯, 사람의 아이들도 놀이를 통해 삶의 그늘까지 예비하나봅니다.
고래가그랬어에서 나온 놀이 전문가의 사진집. 그 괴조합에서 나온 기대 이상의 성과. 어쩌면 09년 예술 분야에서 나온 책들 중에 가장 놀라운(가장 위대하다는 뜻은 아니지만요) 성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사진집이 안 팔리는 세상인데다 저자가 사진가도 아니다보니 잘 팔리긴 힘들겠다고 고백하게 돼서 슬프지만, 놓치지는 마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구입하지 않더라도(사장님 죄송합니다) 어딘가에서 만난다면 꼭 펼쳐 보시길.
p.s: 문득 피씨방 알바시절, 피씨방의 오후를 점령하던 초등학생들이 떠오릅니다. 흥분하고 떠들고 때로는 권태로워하면서도 행동은 멈추지 않는 그 모습만은 아이들의 그것이더군요. 그 아이들은 단순한 놀이 결핍 세대가 아닌 웹 세대의 '뉴타입 칠드런'이 될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조세희(선생님)의 <침묵의 뿌리>가 사실은 모든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사북을 돌아다닐 때 만났던 아이들은 서울내기들보다 해맑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삶과 겨루고 있었지요. <소꿉>과 <침묵의 뿌리>는 달라 보이지만 둘 다 선연한 투쟁의 기록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부터 세계와 맞서기 시작하니까요. 부디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맞서기를, 아무도 회의하지 않기를, 서로 비웃거나 조소하는 쉬운 유혹에 빠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새로 나온 다른 책들
<처음 만나는 그림>은 예쁜 책입니다. 그림 읽어주는 블로그 '레스카페'에서 온 글과 그림들인데요. 단연코 이 책의 강점은 수많은 그림들!!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으로 짜여진 이 책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화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이게 누구의 그림이든간에 참 예쁘구나' 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책의 제목이 참 잘 어울립니다. 낯설은 이름들이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그림들은 퍽 아름다우니까요. 텍스트도 어떤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그림 한 점 한 점을 앞에 두고 잔잔히 감상을 읊조립니다. 마음 편히 읽기 좋아요.
그림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인쇄도 중요한데요, 아트북스의 컬러 인쇄는 퀄리티가 좋은 편입니다. 망점이 눈에 띄지도 않고, 반광 재질의 내지도 좋아요. 검정색을 제외하면 해상도도 좋습니다(근데 검정색은 고급 해외 예술 화보가 아니면 어느 인쇄물에서도 해결이 안되죠..).
근래 나온 편안한 그림 에세이중에서는 가장 감칠맛나지 않나 싶네요. 사이즈도 소박하니, 휴가 지참용으로 쓰기에도 좋겠습니다. 아, 초판 한정으로 표지의 소녀가 담긴 노트가 같이 제공된다능.. 예뻐요. ㅎ
책에 수록된 화가들 중 비교적 유명한 아르힙 쿠인지의 <드네프르 강의 달 밝은 밤> 입니다. 이걸로 피서 대신..
-우리는 이미 200년 전에 그려진 풍경화로부터 산업화가 인간과 자연의 격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예고를 받았다. (p.253)
<미술의 불복종>은 주로 권력 유착의 역사로 인식되는 예술사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불평등에 맞서며, 관습을 타파하고 현실에 저항하는 예술의 역사죠. 그렇다면 소위 '저항/민중예술'의 역사인가? 그것도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이 책이 다루는 것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저항이고 전위죠. 첫 꼭지가 '예술로써의 분수'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사실주의와 현실 재현 같은 인식론적인 문제,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힘의 균형이 무너진 인간과 자연의 관계, 부터 폭압에 항거하는 (나치도 있고, 페미니즘도 나옵니다) 여러 종류의 저항 미술까지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의 상식과는 약간 다른 미술의 여러 측면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그 내용이 어렵지 않고 특별히 어려운 용어도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그 인식의 폭을 넓히기 위한 첫 도약대로 삼기에 적절한 책입니다.
(안돼 너무 길어졌어..)
"젊었을 때 락키드가 아니었던 사람은 바보고, 늙어서까지 그걸 듣는 사람은 더 바보다." 응?
뭐 어때요. 즐거우면 좋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역사도 좀 더 즐겁게 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더위를 먹었는지 불면의 나날들입니다. 다음주는 호러 특집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