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게임 작가의 발견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에서 읽었던, 유명한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집. 1980년에 나왔다고 한다. 호러와 미스터리 부분에서 상당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작가인 만큼 기대가 컸다. 그러나 몇몇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작가라서 과감히 출간해준 행복한책읽기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예전 해난터에서 나온 가 있긴 하지만, 희귀본이니까...

이 단편집에 대한 소개는 책 뒷편에 있는 임지호님이 워낙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적절한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그냥 인용한다.

'호러와 미스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 속에 숨은 악의를 적나라하면서도 섬뜩하게 그린 걸작 단편집'

굳이 토를 달자면, 호러와 미스터리의 경계를 넘나들긴 하지만 이 단편집은 호러의 색채가 강하다. 물론 호러나 미스터리가 이종교배의 잦고, 순수한 의미의 미스터리들도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이 단편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음산한 호러물에 가깝다. 미스터리 단편이 존재하지만, 미스터리 단편에서 맛볼 수 있는 도락은 그다지 즐겁게 다가오지 않는 편이다.

이 단편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어두운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편집의 세계는 지극히 어둡다. 그러나 순수하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이를 긍정하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욕망에 대해서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이 될 수 없듯이 욕망에 순수해질수록 현실의 삶이 붕괴되는 기묘한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파멸극이라고 할까.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굴복하는 과정, 그리고 타인의 악의를 깨다는 과정, 그리고 업보처럼 욕망을 실현시켰을 때 벌어지는 삶의 아이러니들. 스피디함은 없지만, 정중동의 강렬한 심리적 서스펜스가 가득하다. 비유를 하자면, 살의를 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발한발 접근하는 암살자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그 대상이 나인 상황을 말이다. 아니면 내 목위로 천천히 내려오는 차가운 나이프를 상상해도 좋고. 난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이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었다.

또한 다카시는 속된 말로 세이브투수다. 매듭을 잘 짖는 재주가 있다. 그것이 반전이던, 어떤 거든 간에. 마지막까지 몰아가는 과정도 물론 재미있지만, 막판에 벌어지는 반전 내지 아이러니한 결말로 봉합하는 힘이 다카시의 다른 매력이다. 요코하마 히데오 류의 용두사미파와는 다른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각 단편에 대한 이야기는 읽으실 분들을 위해 언급을 피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망진단서>, <시소게임>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른 작품의 수준도 고른 편이다. 다만 <자살균>이나<과거를 운반하는 다리>같은 범작도 일부 존재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25년이 지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줄이고, 책의 만듬새에 대한 언급을 하자면, 표제를 바꾼 행복한 책읽기의 센스가 돋보였다, 이 단편집의 원제는 <과거를 운반하는 다리>인데, 표제작으로는 함량미달이 아닌가 싶다. <시소 게임>의 흥미진진한 심리묘사에 비하면 지나친 우연과 어설픈 감동이 주는 범작이다. 또한 이 단편집의 성격과도 잘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고. 그리고 기본적인 요소들-교열이나 편집 상태도 꼼꼼한 편이다.(아마 이 분량의 밀리언 셀러 클럽이라면 분권이 되지 않았을까 -_-;;) 또한 무사사노 지로의 해설도 깔금하고, 북스피어의 편집자이신 임지호님의 추천사는 뒷편이 아니라 길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단편집의 주제를 잘 요약하고,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떤 종이의 재질을 사용했는지 모르겠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 책은 직접 서점에서 구매했는데, 물에 젖은 책들을 말린 듯이 울퉁불퉁한 모습을 띤 책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덜 울퉁불퉁한 것을 고르는데 꽤나 힘들었다. 이 점을 신경스다보니 정작 책 옆면에 생채기가 난 책을 샀다. -_-; 하드커버가 아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던도서관'과 같이 일본어를 직역한 듯한 부분이 눈에 종종 보이는 것 역시 아쉽다. 번역이 어려운 부분까지 억지로 의역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번역이 가능한 부분을 그냥 지나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특히 북스피어, 시공사 등과 함께 책의 만듬새의 기대치가 높은 행복한 책읽기의 책이라면 더욱 아쉽다.

그래도 좋은 작품이 좋은 출판사를 통해 나왔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단편집의 내용상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나오는 것이 나을 법도 했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추운 날 먹는 빙수처럼 뽀드득뽀드득 맛있게 그리고 서늘하게 읽혔다. 작가의 발견 1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보아 연작으로 나올 것 같다. 이름이나 아토다 다카시가 첫 주자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장르 문학 전체가 유독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SF를 제외한 장르문학작가군을 소개할 것 같은 느낌이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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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29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는 짬이 안나네요 ㅜ.ㅜ

상복의랑데뷰 2006-10-3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 님이야 워낙 읽으시는 책이 많으시니 ^^; 기회되시면 읽어보세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