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거 빙벽 밀리언셀러 클럽 35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조나단 햄록은 정력적이고 유능한 멋쟁이 미술사 교수고 취미는 암벽등반, 그것도 전문가이다...사실 그의 정체는 암시장에서 멋진 그림들을 몰래 수집하고 자신의 풍족한 생활을 위해 활동하는 CII의 전문암살자다. 그는 슬슬 업계를 뜨고 싶어하는데, CII에서는 그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면서 어려운 임무를 종용한다. 예전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정상정복에 실패한 아이거 빙벽에 올라가는 일...그는 자신에게 실패를 안겨준 산과 맞서 싸우는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음모도 맞서 싸워야 하는데...  

<메인 스트리트>의 작가 트레바니언의 작품. 내 취향에는 밀리언 셀러 클럽은 모아니면, 도이다. 이 소설은 다행이도 모였다. 그것도 대박!

주인공 조나단 햄록은 내가 꿈꾸는 이상형이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재능이 충만하고, 자본주의에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기에는 현실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마초. 그리고 자신의 의향을 굳이 숨기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전문가주의의 화신.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다. 물론 나는 재능이 없고, 마초가 되기에는 얼굴과 몸이 꽝이고, 내 의향을 드러내기에는 소심하고, 아직 전문가가 아니다. 지나치게 냉소적인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꼴린 대로 살고 싶으면 일단 전문가가 되라. 아니면 골방에 처박혀 평생 궁시렁대던가.

햄록 교수가 자신보다 세상을로 조롱을 일삼으면서 적절히 이용하는 모습은, 그리고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시작하면 보여지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주는 쾌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암벽등반이라니! 게으른 성격답게 암벽 등반은 고사하고, 나는 군대시절에만, 20여 kg의 군장을 짊어지고 행군하면서 산을 넘어본게 전부지만, 그 때의 성취감을 떠올려본다면, 햄록이 가지는 무제한적인 자신감과 철저한 자기단련의 자세가 어느정도 공감이 간다. 패러디의 의도가 강하다고 느껴지는 초반부의 첩보신에 비해 산악 사나이들의 땀, 열정, 우정이 배어나오는 후반부의 등반신의 몰입감이 몇 배 큰 이유도 묵직한 남성주의에 전문가주의를 맛깔나게 섞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내내 펼쳐지는 조롱적 패러디의 릴레이! 최근 프로야구 모 팬들이 보여주는 자학 개그처럼 이 소설 내내 펼처지는 패러디의 향연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스파이 소설의 클리세들을 태연하게 보여주면서, 중간중간에 오버 한 방을 날린다. CII자체가 이미 CIA의 패러디이고-Agency가 Institute로 바뀐 재치란!-등장하는 인물들은 패러디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희귀병으로 빛을 볼 수 없는 우두머리라니! 하긴 햄록이라는 이름 자체가 셜록 홈즈에서 온 것 같다고 느겨지는 판국에...스파이물을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껄껄 웃으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0여년이 지난 후대 독자들에게는 시대적 덜컹거림까지 양념으로 제공되고 있다.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전문가주의와 냉소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햄록 교수와 더불어 아이거 빙벽을 정복하기를 바라는, 그리고 햄록 교수앞에 놓인 음모를 파헤치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Bravo! 꼭 이 작품의 속편인 <루 빙벽>을 보고 싶다. 햄록 교수가 두 작품 밖에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 안타깝다.

추신) 이 소설은 <니꼴라이>로 번역된 <쉬부미>와 비슷한 면이 다수 있다. 득시걸거리는 마초들과 그들을 사모하는 여인들. 주인공과 적대적 공생관계인 첩보부. 주인공의 천재성과 그에 못지 않은 반사회적인 혹은 냉소적인 태도. 그리고 동양에서 수련하는 과정. 그리고 공작 과정에서 보여지는 철저한 전문가주의. 다만 <니꼴라이>는 엄청나게 공들인 설정과 묘사에도 불구하고, 동양에 대한 환상적인 동경이 덧입혀지는 바람에 동양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좀 엉뚱한 소설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이거 빙벽>은 과도한 패러디로 인한 덜컹거림까지도 재미있다.

추신2) 조롱조의 소설이 골수공화당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게 자본주의의 위력인가, 아니면 삶의 아이러니일까?

추신3) 대부분의 여성독자분이나 마초를 싫어하시는 남성독자분들께는 재미는 고사하고 거북함이 밀려올라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읽지 않기를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차라리 <아이거 북벽-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전>이 산악사내들을 이해하는데는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농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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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5-2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마초를 싫어하지만, 읽어볼랍니다...ㅋㅋㅋ

상복의랑데뷰 2006-05-2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으실지도 ^^;;

하이드 2006-05-2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재밌겠다!
저는 이유있는(?)마초는 좋아요.
설마, 마이크 해머류는 아니겠지요?

상복의랑데뷰 2006-05-2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이 초라한 서재에 방문해 주시다니, 영광합니다. 아마 전형적이고 지루한 스파이물인 전반부를 잘 넘기시면 후반부는 재미있으실 겁니다만, 함부로 추천해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추신) 근데, 저 마이크 해머 팬인데요 ^^;;


Fiona 2007-01-1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보면 CII는 로마숫자 102인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