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강이 난 남과 여 - 현대 일본추리 대표걸작선
노리즈키 린타로 외 10명 지음, 일본 추리작가 협회 엮음, 한국 추리작가 협회 옮김 / 봉성기획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우연하게 구입한 일본의 현대 추리작가들의 단편선집입니다. 한국 및 일본 추리작가 협회에서 양국 교류차원에서 추진한 작품집인 것 같습니다. 앞에는 유명한 추리작가이신 이상우 선생의 서평도 있습니다. 일본미스터리 소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무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가들의 명성은 화려한 것 같습니다. 전 <아내의 여자친구>를 쓴 고이케 마리코와 나즈키 시즈코의 이름만 보고 구입했습니다. 물론 명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현대일본의 추리소설계에서 명망높은 작가들이 참여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가들의 명성에 비해 단편들의 수준이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소수의 괜찮은 작품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실망스럽습니다. 우선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트릭이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보는 인물들의 감정묘사나 결말에서의 힘이 약합니다. 설사 트릭을 알더라도 결말에서 묵직한 맛을 준다면 어느 정도 괜찮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법도 한데, 안타깝게도 그런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비록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작가들의 명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니 상대적으로 더욱 아쉽구요. 일본 단편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집>이나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의 수록작들이 한 수 위라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좋지 않은 이야기만 늘어놔서 수록작에 대해 평을 하기가 약간 부담스럽네요. 이 책에 수록된 단편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두 동강이 난 남과 여(노리츠키 린타로)
치정관계가 얽힌 기괴한 분위기의 밀실살인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트릭을 얼마나 빨리 알아채느냐가 이 단편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저는 몰랐지만, 대부분의 추리독자분들은 아실만한 트릭입니다. 노리츠기 린타로는 관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히토 등과 함께 신본격물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합니다.(두 사람은 같은 추리소설 연구회 출신입니다.) 이 작가는 엘러리 퀸처럼 소설가와 주인공 탐정 이름이 같은 작품들을 내고 있으며-이 작품은 아닙니다.-<눈밀실>과 <밀폐교실>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2. 살인 신혼여행(히가시노 게이고)
히로스에 료코로 유명한 영화 <비밀>의 원작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입니다. 이 분 역시 상당히 유명한 베스트셀러작가라고 합니다. 최근에 노블하우스에서 <게임의 이름은 유괴>가 출판되었고, <백야행>도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 단편은 한 남자가 신혼여행지에서 자신의 아내를 살인자로 의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이디어에 비해서 작가의 구성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결말부가 밋밋합니다. 조금 더 인물들의 감정묘사를 섬세하게 했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피바다의 웨딩드레스(노나미 아사)
이 작품은 독특합니다. 각 장마다 시점이 바뀌면서 전개됩니다. 1장에서는 가출한 두 남녀가 등장하고, 2장에서는 난데없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 꽃가게 주인이 등장합니다. 과연 이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 작품 역시 <두 동강이 난 남과 여>처럼 트릭을 얼마나 알아채느냐가 재미를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알아채는 바람에 결말의 놀라움이 덜하긴 했지만, 꼼꼼하게 잘 쓰여진 단편입니다.

4. 아메리카 마약 스쿨(바바 노부히로)
일본 작가가 쓴 미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입니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미국 양아치 vs 일본 유학생의 대결을 그린 작품입니다.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등장인물은 마약에도 쩔어있습니다. 미국판 <난지도대혈투>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주인공의 독백형식이고, 대결구도로 소설이 전개되기 때문에 몰입도가 강해야 하지만, 내용에 비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5. 결혼식 손님(고이케 마리코)
<아내의 여자친구>의 작가 고이케 마리코의 작품입니다. 과거가 있는 남자가 결혼식에서 발견한 노파를 보고 점차 이성을 잃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아내의 여자친구>에서 본 그녀의 단편들과 비슷한 구조로 흘러갑니다. 결말도 나름대로 여운이 있구요. 기본은 하는 작품입니다. 다만 다른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고이케 마리코는 여성의 심리묘사에 비해 남성의 심리묘사가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행동에 감정적인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고, <아내의 여자친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예측가능한 결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단편입니다.

6. 한마디에 대한 벌(나츠키 시즈코)
'W의 비극'으로 유명한 나츠기 시즈코의 작품입니다.(부끄럽게도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이 작가의 평은 대단히 좋은데, 이 작품 역시 뛰어납니다. 제일 맘에 든 작품입니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서 사이가 벌어지는 두 친구의 이야기인데, 두 친구의 심리와 머리싸움에 대한 묘사가 압권입니다. 구성도 탄탄하구요. 이러한 사소한 오해는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오싹해집니다.

7. 좋은 사람이지만(사노 요)
회사 상사가 소개시켜준 여자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평범한 회사원의 이야기입니다. 중반 이후로 드러나는 주인공의 비밀을 잘 보시면 트릭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말까지 끌고 가는 작가의 구성력과 필력이 좋습니다.

8. 이상한 인연(다카하시 카즈히코)
우연한 사고로 인해 친해진 두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인데, 중반 이후에 지루해집니다. 결말은 중반 이후에 밝혀진 부분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구요. 후반부를 압축적으로 묘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9. 식인 상어(도모노 료)
식인 상어가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의 이야기인데, 지나치게 안전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뻔히 예상되는 구조로 흘러갑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 중에서 제일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10. 붉은 강(고스키 겐지)
자신의 아내를 죽인 범죄자를 변호했던 변호사와 한 집에서 살게 된 출감한 범죄자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인물들의 심리묘사-특히 범죄자의 심리묘사에 주력하는 작품인데, 상당히 묵직한 맛이 있습니다. 왜 범죄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밝혀지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11. 예절의 문제(야마다 마사키)
이 작품의 구성은 예전에 봤던 것이라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습니다만, 아마 처음 접하게 되시는 분에게는 상당히 독특할 것 같습니다. 독자투고로만 이루어진 단편입니다. 구성의 독특함에 얼마나 동의하시느냐가 재미의 관건인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단편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마디에 대한 벌>이 제일 마음에 들었구요. <식인 상어>를 제외하면 무난하게 읽힙니다. 다만 구하기가 쉽지 않은 책인 것 같아 리뷰를 쓰는 것이 망설였습니다만, 아직 반디앤루니스에서는 구하실 수 있습니다. 부담없이 단편집을 읽으시려는 분이라면 보시는 것도 괜챃을 듯 합니다.

추신) 미디어 리뷰를 보면 상당히 좋게 써줬더군요.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경향신문동아일보의 리뷰가 있습니다. 동아일보 리뷰 중에 '이 책은 일본추리작가협회가 1990년대이후 발표된 미스터리 단편들 중에서 잘된 것을 골라 한국추리작가협회에 출판을 의뢰한 것. 그러므로 일본의 추리문학의 수준을 한눈에 보여주는 작품집.'이라는 표현은 부담스럽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본 추리문학도 약간은 정체기인 거겠죠. 그래봐야 우리나라만 하겠습니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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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3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복이 좀 컸지만 그래도 몇몇이 좋아 괜찮았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5-07-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몇이 적다는 것이 좀 아쉬울 따름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