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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주당천리
허시명 지음 / 예담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주당이라면 술이 떡이 되지 말고 술이 덕이 되게 할 일이다'. 주당천리에 나온 술에 관한 명언이다. 보통 주량이 쎈 사람을 주당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술을 잘 마신다고 무조건 주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 술과 친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고는 주당이 되고 싶어졌다. 술 한잔을 마셔도 진정한 주당처럼 덕 있게 마시고 싶다.
주당천리의 첫 이야기는 아주 먼, 고려 건국 때의 비화로 시작된다. 주모였던 '안중' 이라는 여인네가 고삼주를 빚어 견훤의 부하를 취하게 했다. 그 때문에 왕건은 쉽게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다. 현재 안중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방에는 위패 대신 백마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예로부터 말은 지하세계와 천상의 힘을 연결 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술은 제사에 꼭 필요한 음식인데, 천상의 영혼과 지상의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천마와 술은 모두 지상과 천상을 연결 시켜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추리이다. 술로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수도 있다. 첫 이야기부터 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신라의 안압지, 수학여행 때 경주 일정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는 곳이다. 안압지에서 14면체의 주사위가 출토 되었었다. 주령구라고 불리는 이것은 술자리에서 가지고 노는 노리개이다. 주사위를 굴린 사람은 주사위 면에 나오는 내용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소리 없이 춤추기, 한꺼번에 마시고 크게 웃기, 혼자 노래 부르고 혼자마시기 등...... 재미있는 벌칙들이 많았다. 그 당시 신라인들의 술자리나 지금의 술자리 모습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술의 매력은 시대를 넘어서도 여전하다.
27년 동안 주류회사에 몸담았던 이종기씨가 만든 "술 박물관"도 소개되어 있다. 그곳에서 음주교육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술에는 역사가 있고, 과학이 있고, 문화가 있다. 술을 배우려면 술버릇부터, 술 문화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에 적극 동의 한다. 술 먹고 최소한 개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맛이 좋다고 정평이 나 있는 제주도의 특이한 술, '오합주'. 제주는 지역 특성상 좁쌀로 오메기떡을 만들어 술을 만든다. 제주도의 특이한 술 중 가장 놀라웠던 술은 '오합주'이다. 오합은 오메기 청주, 달걀, 참기름, 생강, 꿀을 말한다. 제주는 육지에 비해 약초나 산짐승, 육고기가 흔치 않았기에 보신용으로 이 술을 개발해 마셨다고 한다. 참기름과 달걀이 들어간 술이라니 그 맛이 상상 조차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술이 아주 맛있었다고 하니, 나도 한번 마셔보고 싶다.
주당 여행에서 가장 내 관심을 끌었던 술은 막걸리였다. 전통주 중에서는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이 막걸리이다. 우리집은 제사 때 막걸리를 올린다. 증조 할아버지께서 유난히 막걸리를 좋아하셨기에 정종대신 막걸리를 제사용 술로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더 친숙한 술이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막걸리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규모가 큰 막걸리 공장에서 만들어 지는 살균 막걸리는 전국적으로 팔리고 유통기한이 1년쯤 된다. 멸균이 아니라 균의 활동을 정지시킨 것이다. 생 막걸리는 살균하지 않아 효모균이 살아 있어 맛이 풍부하다. 그러나 쉽게 변하고 유통기한이 우유처럼 짧다. 요즘은 막걸리에 과일 원액을 20%까지 넣을 수 있게 되어 더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가 생겨났다. 시판중인 막걸리 중 '부자'라는 브랜드의 막걸리는 병에 담아 고급스런 포장을 하여 판매하고 있다. 서민들이 즐겨 마시던 막걸리에 고급스러움을 더해 일본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막걸리에 대한 편견을 걷어낸 좋은 사례인 것 같다.
누룩을 만드는 곳을 '곡자'라고 부른다. 누룩 제조장에서 본 우리 막걸리에 현실에 씁쓸해졌다. 금촌 주조장에서는 술밥을 밀가루로 찌고 있다. 미국에서 온 밀가루, 그것으로 일본식 고오지를 만들고, 그 고오지에 다시 밀가루를 쪄 넣어 술을 만든다. 우리의 전통 막걸리는 밀은 누룩 만들 때만 썼고, 쌀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1965년 무렵 나라에서 쌀 막걸리를 금지시키기 전까지는 대부분 쌀 막걸리를 제조했다. 송학곡자에서는 밀누룩을 만들고 있다. 밀누룩은 우리 술의 소중한 씨앗이다. 40개 가량 되는 전통주 업체가 밀누룩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통주가 활성화 되지 않아서 밀누룩 소비량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막걸리 양조장은 일본식 고오지에 우리 누룩을 아주 조금 섞어 쓰므로 소비량이 적다고 한다.
요 몇 년간 와인 열풍이 불면서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일본 술 '사케'의 인기도 높아졌다. 그러나 우리 전통주는 점점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전통주뿐만 하니라, 우리의 전통 문화가 많이 잊혀져 가고 있는 추세이니 이런 말은 하나 마나 인 것 같지만...... 언젠간 이 책에 나온 전통주를 하나하나 다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젠 맥주나 소주만 찾지 않고, 이것저것 다양한 술을 마셔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