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로맨스>를 봤다. 절친한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영화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한다. 너무 오랫동안 못봐서. (불쌍한.. 훌쩍) 요즘 가장 볼만한 영화는 어제 봤고, 그 다음으로 볼만한 영화는 오늘(일요일)에 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 땡기는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를 보게 됐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 후에 후회가 되었다. 20분이 지난 다음에는 내가 지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할 수 있었던 다른 일들이 떠올랐다. 옆의 선배와 술을 마시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지금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책의 후반부를 마저 읽거나 하다 못해 집에 가서 TV 를 보거나 자거나... 30분이 지난 시점에서는 잠을 청해 보았지만, 오밤중도 아닌 시간에 잠이 올리가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쉬운게 아니다. 1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는 제작자, 감독, 배우가 무슨 이유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왜 자신의 괜찮은 이미지를 이런 곳에 소모했을까, 시나리오 보는 눈이 있다고 믿었던 김상경은 어쩌다 이 캐스팅을 수락했을까.
이런 영화는 베스트극장의 단막극으로 만들어도 충분했으리라. 설령 베스트 극장의 단막극이었다 해도 범작의 수준을 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로맨틱 코미디에서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줄거리가 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들어간단 말이다. 설정의 비현실성? 정도가 지나쳤지만 그것도 그냥 봐준다 치자. 그렇다면 캐릭터가 흥미롭거나 소녀 감성을 자극할만한 장치라도 섬세해야 할 것이 아닌가. 캐릭터는 정형화되어 있고, 조연들의 연기를 과장 뿐이었으며, 로맨틱 코미디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부여해야 할 장치들은 식상하기 짝이 없었다. 노팅힐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짬뽕한 줄거리에 '내 남자에게서 낯선 여자의 향기를 느낀다'나 어쩐다나 하는 카피 한 줄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정은의 고군분투와 오승현의 호연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