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카멜 다우드 지음, 조현실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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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뫼르소, 살인사건> 내게 상당히 까다로웠다. 읽다가 멈추고, 읽다가 멈추고 하면서, 여러 날에 걸쳐 완독하게 되었다. 이제 한번 읽었으니, 아마도 두번째는 처음보다 조금 더 쉽게 읽혀질 것 같다.

책이 읽기 까다로웠던 이유는, 화자 ( 하룬, 알제리인, 무싸의 어린 남동생, 1942년도에 7살, 1962년도에 27살 ) 의 중구난방에 가까운 화법 때문이리라.

<뫼르소, 살인 사건>은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책이다.  이 책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책이며, "이야기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모든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의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되기 때문에,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아야 한다. 
<뫼르소, 살인사건>의 화자는 살해당한 아랍인의 동생이며,  형의 이름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받은 사람이다.



화자인 하룬은 2012년 현재(?) 77살이 된 노인이며, (아마도) 술꾼이며, 대화상대를 찾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은 자신의 생각이 가는 대로여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느낌, 과연 진실인가 술주정뱅이의 망상인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무런 증거도 증인도 없는'  "무싸" 살해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그 주를 이루고 있는데,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룬의 말만 존재할 뿐이다. 하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독자(우리, 나)이며,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젊은 청년이다. ( 나는 잠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화자인 하룬, 청자인 젊은 청년이 동일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즉, 나이든 하룬젊은 청년 하룬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도 무척이나 이해가 어려웠다. 아마도 "실존, 허무, 존재"등 어려운 개념들이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난해한 개념을 제외하고) 단순한 살인 사건에 대한 부분만 살펴본다면,
<이방인>이 프랑스인 '뫼르소'에 의해 벌어진  '이름없는 어떤 아랍인'  살해 사건이라면,  <뫼르소, 살인 사건>은 아랍인 '하룬'에 의해 행해진 '프랑스인' 살해 사건인다.


하룬이 7살 되던 1942년, 그의 형 '무싸'는 살해된다. 그러나 무싸의 시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룬의 엄마, 하룬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무싸'의 죽음에 대해 관심이 없다.
어린 하룬은  형의 실종(살해?)이후,  '이상해진' 엄마로부터 무싸의 죽음에 대한 비난을 받는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형의 부재로 인한 고독, 어머니의 비난, 비난, 비난...
ㅡ 하룬은 무싸가 죽고, 자신이 살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가진다. ( 이러한 죄책감은 엄마에 의해 더더욱 강화된다. )
형에 대한 죄책감, 엄마에 대한 숨겨진 분노와 증오속에서 자라는 하룬은,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다.


1962년 27살의 하룬은 새벽 2시 즈음, 달빛 아래에서 한 프랑스인 ( 조제프 라르케 )를   '우물에 빠뜨린다'.  ( 책속의 화자 노인 하룬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


뫼르소와 하룬의 공통점은,  엄마로 인해 살인을 했다는 것이고, 재판을 통해 증오받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오후 2시 ( 주드)와 새벽 2시 /  햇빛과 달빛  등의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피해자의 '이름'에 관심을 두는가 아닌가 일것이다.
뫼르소는 자신의 범행에 의한 피해자의 이름을 모른다. 관심도 없다. 다만, '어떤 아랍인'일 뿐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이는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다. ( 햇빛이 눈부셔서 그러했다는 뫼르소는 햇빛살인자이다. )
가해자와 재판정(프랑스인들)은 피해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한 '무관심'으로 인해 엄마와 하룬은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 심지어, 하룬은 1963년에서야  미리엄에 의해서 '그 책'을 접하므로써, 살인자가 책을 썼음을 알게 된다. )

그에 반해, 하룬은 자신의 범행 피해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특히 하룬의 엄마는 프랑스인 조제프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다. ( 엄마의 조제프를 향한 증오는 어이없을 따름이다. )

우발적인(?) 혹은 계획적인(?), 아니 국가간의,  민족간의 증오로 인해 벌어진 살인사건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한 가족 ( 엄마와 하룬)의 해소되지 못한 욕구( 형, 무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나?)로 인한 사건일 것이다.

실제 살인은 하룬이 행했지만, 하룬의 의식 90% 이상을 장악한 사람은 하룬의 엄마이다. '프랑스인 조제프 살인 사건'에서 하룬은 도구에 가깝다. 물론, 하룬 역시도 형 무싸를 죽인 뫼르소(프랑스인)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책은 목차도 없고, 소제목도 없다. 각 장의 시작마다 번호 number가 있을 뿐이다.
한군데 특별한 챕터가 있는데,  그곳은 번호 number로 된 것이 아니라 "미리엄"이라는 소제목이 존재한다. 

하룬에게 미리엄은 무척이나 큰 의미를 지닌듯하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15살에 학교에 가게 된 하룬은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언어와 다른 언어"를 배우고자 한다.  그렇게 배운 언어 덕분에 28살의 하룬은 미리엄과 '그 책 <타인> (이방인)'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룬과 미리엄의 러브스토리(?)는 추측컨대 하룬만의 짝사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책 <이방인>에 대한 논문, 자료 준비를 위해 늙은 하룬을 찾아온 대학생 청년(?)처럼, 미리엄 역시 그러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룬의 중구난방, 어수선함, 횡설수설에 가까운 말 등은,  7살 하룬이 형의 사망(실종) 이후로 제대로 된 보살핌없이, 혼자, 스스로, "생존해야"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룬의 엄마는 사실상 하룬의 정서적 측면에서는 '엄청난 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해당 언어 (프랑스어)를 배운 후로,  하룬은 언제나 엄마에게 신문을 읽어주어야 했다. "오후 2시 아랍인 살인 사건 ( 일명, 주드 - 아랍어로 오후2시라고 함 )".  엄마는 '주드'가 자신의 아들 무싸일거라고 100% 확신하지만, 어디에도 증거는 없다. ( 게다가, 지배국가 재판정에서는 피해자 관련 인물 조사조차 전혀 하지 않는다. )

사건 당시는 1942년이었고,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지배국가의 국민 "프랑스인 - 뫼르소"가   알제리에서 "어떤 아랍인"을 죽였기에, 그들(프랑스인, 프랑스 재판)에게 그다지 큰.범.죄.는 아니었을 것이다.  ( 피해자가 프랑스인이 아니라,  피지배인 아랍인이었기에 더더욱 )
해당 (지배국가) 재판정에서 '아랍인 살인'에 대한 죄보다,  뫼르소 엄마 장례에 대해 더 집중한 것에서 그러한 점을 느낄 수 있다.

 

 
1962년 7월 5일이 알제리 독립기념일이라고 한다. 하룬은 프랑스인 살해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싶고, 증오를 받고 싶다. ( 마치, 뫼르소처럼 ).

'주드 살인사건'에서 당시 프랑스 재판정은 뫼르소 엄마의 장례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피해자인 '아랍인'에는 관심이 없다.  "왜, 엄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는가?" - 하는 질문이 그들이 하고픈 말이다.

'조제프 살인사건'에서 당시 알제리 재판정(?)은 범행 '시기'에 관심을 더욱 기울인다.   "왜, 알제리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 하는 질문이 그들이 하고픈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7살의 어린 하룬에게 '엄마'외에 다른 누군가 1명이라도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룬의 엄마는 왜 그렇게 무싸에게 집착했던 걸까 ㅡ 하는 의문도 생긴다. 하룬의 아버지의 부재 역시도 궁금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다. 다만 무싸의 죽음에 대한 비난만 있을 뿐.

 

알제리ㅡ프랑스 /  식민지배환경에서의 재판과정은  조선ㅡ일본이라는 식민지배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오후 2시 아랍인 살인 사건 - 주드 '라는 불평등하고 이상한 재판,  피해자의 이름도 없는 이상한 일.

재판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에 본 영화 <박열>이 생각났다.  박열의 재판도 식민지배국가의 이상하고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재판이었기 때문에 연상이 되는 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하룬은 불신론자 , 무신론자, 신성 모독자(?)라는 느낌이 무척이나 강하게 들었다. ( 신, 코란 등 )

저자 '카멜 다우드'는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으로, 이슬람 종교재판 파트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종교든지) 독실한 신자라면, 화자 하룬의 화법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과 함께한 서평은 블로그 참고   :  http://xena03.blog.me/22105123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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