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기도 -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신실한 여정
김요한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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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하는 사람' 김요한 목사의 글과 강의를 즐겨 읽고 듣는다. 용서하시라.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당신들께선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 손에 잡은 책이다. 많이 공감하며 즐겁게 읽고 있다. 쌓은 공력을 간결하게 펼쳐내며 핵심을 짚고 있어 눈에 쏙쏙 잘 들어온다. 게을러 보잘 것 없는 내 생활을 돌이켜 볼 많은 물음과 공부할 꺼리를 던져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2. "흔히 성경을 가리켜 '계시'라 부른다. 계시란 말의 원 뜻은 '숨겨진 것이 밝히 드러남'이다. 그럼 왜 계시가 필요할까? 한마디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과의 무한한 질적 차이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 먼저 선제적으로 자신을 알려주셔야만, 인간은 그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계시의 본질이다. 공부란 하늘과 땅을 잇는 작업이다. 신인(God-and-Man)이신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을 잇는 계시적 존재다. 그는 유일무이한 중보자(Mediator)로서, 자신 안에 있느 신성을 통해 하나님을 대표하며, 또한 자신 안에 있는 인성을 통해 인간을 대표하여 두 세계를 연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기도를 통해 하늘과 땅을 잇는 작업에 동참한다. 그러므로 기도란 궁극의 공부, 곧 계시 체험이라 할 수 있다.“

 

"기도의 신학적 뿌리는 삼위일체론에 근거한다. 삼위일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동일본질 혹은 같은 존재방식으로 실재하신다는 이야기다. 다마스쿠스의 요한 이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관계는 '페리코레시스(περιχώρησιϛ 회오리, 회전)'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되어왔다. 성부, 성자, 성령은 각기 구별되는 위격적 존재인 동시에 서로 간에 페리코레시스적 순환을 통해 상호 침투, 내주, 환대를 행하신다. 그런데 삼위일체 교리는 다름 아닌 기도의 고백 속에서 등장한다. 특별히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적 삶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도야말로 삼위일체적 삶에 참여하는 가장 훌륭한 방정식이다.“

 

"성경에서 믿음의 기능은 믿는 자와 믿음의 대상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것이다. 곧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분 '안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자리에 오셔서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처럼, 또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다. 우리가 기도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해지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거룩해짐의 핵심에는 바로 '사랑'이 있다.“

 

3. 차준희 교수의 추천사가 빈 말이 아니다. "이 책은 기도에 관해 성서학적으로 성경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조직신학적으로 그 개념을 명료화하고 있으며, 교회사적으로 사례를 훑고 있는 동시에, 실천신학적으로 예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기도와 관련된 영적 세계와 영적 실체에 대한 신뢰할 만한 학술도서인 동시에 신앙도서이기도 하다."


4. 다시 읽어보니 새삼 마음에 와 닿는 게 있다. 진작에 사도 바울을 읽으며 '믿음'에 대한 의문이 들어 무엇에 대한 믿음이며 무엇을 위한 믿음인가, 몹시 궁금했다. 믿음이란 존재의 근원이자 내 안에 와 계신 하늘에 대한 믿음이며, 그 하늘과 하나 되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불가의 대승기신론만 하더라도 우리로 하여금 眞如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책이며, 이 믿음을 통해 나를 살리고 일체 생명을 살리는 길, 곧 대승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일진대 이러한 믿음이란 타고 가야 할 것이라 하겠다. 절집에 가서 면벽하고 참선에 든 스님에게 물어보시라. 궁극의 참 나를 만나기 위한 것이지 않겠는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의로움은 곧 하늘이 드러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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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한의학 - 근대, 권력, 창조
김종영 지음 / 돌베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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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좀 충격적이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실험실이라는 ‘근대적 공간’을 인류학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한의학에 대한 과학적 사실의 구성이 데이터와 논문의 끊임없는 생산이며 이를 통해 어떻게 한의학 연구자들이 과학자본과 과학 시민권을 획득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실험실 연구의 대표적 사례로 라투르와 울가의 연구(Latour and Woolgar, 1986) 사례를 든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과학적 사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구했다. 라투르는 1880년대 파리고등사범연구소에서 탄저균을 발견한 것과 이에 대처하는 백신의 개발이 어떻게 프랑스 사회를 바꾸어놓았는지를 설명한다. 라투르는 파스퇴르의 실험실이 탄저균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관심을 '등록'시키고 이 문제를 해결하여 프랑스 농업의 실행과 구조 자체를 바꾼 권력의 창출자라고 분석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한의학의 근대화에서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국가 의료 체계로의 진입, 국민건강보험의로의 편입, 한의대의 설립, 근대 병원의 도입, 실험실에서의 한약과 침의 과학화, 한의학의 산업화, 진료실에서의 양의학과의 퓨전은 하나의 원칙이나 원리에 따라 한의학이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소와 행위자들에 의해 '다양한 논리와 다양한 방식'으로 근대화된 것이다. 이는 어떤 법칙이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이고 집합적인 성취물이다. 한의학의 '변화의 세트들의 세트들'이 곧 한의학의 근대화로 간주된다.

저자는 경험연구로부터 추출하고 과학기술학 이론에서 응용한 ‘창조적 유물론’과 ‘권력지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의학의 근대화, 과학화, 산업화, 세계화를 탐구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저자에게 한의학은 ‘식민화된 약자의 근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서,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권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저자는 한의학의 근대를 양의학과 과학, 그리고 국가와의 권력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한의학의 근대는 혼종적 근대인데, 이는 한의학세트들의 세트들을 생산함에 있어 과학, 양의학, 병원 조직 체계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합되어 생산된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한의학의 근대는 심대한 권력지형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과학/양의학과의 투쟁인 동시에 구집합체로서의 전통의학의 권력을 사회적, 물질적으로 변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신집합체로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요컨대 근대를 '총체적이고 단일한 거대변화'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창조와 갈등의 신집합체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한의학의 근대를 양의학과 과학, 그리고 국가와의 권력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한의학의 근대는 혼종적 근대인데, 이는 한의학세트들의 세트들을 생산함에 있어 과학, 양의학, 병원 조직 체계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합되어 생산된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한의학의 근대는 심대한 권력지형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과학/양의학과의 투쟁인 동시에 구집합체로서의 전통의학의 권력을 사회적, 물질적으로 변화시키고 확장시키는 신집합체로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요컨대 근대를 '총체적이고 단일한 거대변화'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창조와 갈등의 신집합체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근대를 바라보는 눈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의학이 타고 넘은 근대가 이렇게 힘들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저자의 시선을 빌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그렇다.


근대를 바라보는 눈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의학이 타고 넘은 근대가 이렇게 힘들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저자의 시선을 빌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그렇다.

덧. 저자는 양한방병원이라는 새로운 의료 집합체의 전개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병원이나 진료실 같은 의료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두 의학이 결합되도록 법적,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지만 현실에서는 ‘의료기사 지휘권’이 양의사에게 있어 한의사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양한방협진 체제와 한의대의 교육 과정에서 한의사는 근대적 시선을 기꺼이 체득하고 환자의 몸의 신호들에서 포착할 수 있는 ‘현상학적 시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는 진단과 처방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 서있다. 한의학의 인식론이자 한방 진료 과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變症論治’가 그것이다. 한의사는 통상 사진(望聞問切)에 의해 몸의 신호와 징후를 포착하고 여러 병인론을 통해 해석하고 처방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서양의학과 대비되는 인간 중심적, 신체 중심적 접근방식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의학이 근대 사회의 의학이 되려면 새로운 사회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이 점, 이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가 살펴보고 있듯이, “실험실에서의 한의학의 과학화가 새로운 권력지형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과학과 투쟁하고 타협하는 창발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양의학과 한의학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는지는 행위체의 창조적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며 동서협진을 '세트들의 세트들'로 명명한다.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변해나가는 것이라지만 세트들의 세트들이 이루어내는 혼종성을 한의학의 정체성으로 강변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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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의 삶 - 베네딕트 앤더슨 자서전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손영미 옮김 / 연암서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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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 아닌 겨울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덕분에 베네딕트 앤더슨의 자서전 ≪경계 너머의 삶≫을 통독했다.

2. 1936년 중국 쿤밍에서 태어난 앤더슨은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베트남인 보모 손에서 자라나 아일랜드와 영국, 미국 등에서 공부하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며 현장연구를 수행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그가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무렵 미국이 처한 상황과 거기에서 태동한 동남아시아 관련 ‘지역연구’,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주저 ≪상상의 공동체≫를 쓰게 되었던가 하는 것이다.

3. 1960년대 들어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우주선을 발사하자 큰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대학 교육의 후진성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전쟁, 마오쩌둥 치하 중국의 성장, 인도차이나의 위기 심화, 동아시아의 전쟁,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 등 다른 문제도 많았다. 그래서 1960년쯤부터 장학금, 언어 교육 프로그램 등의 형태로 엄청난 돈이 대학으로 유입된다.

이어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이 격화되고 대학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이 전개되자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갑자기 미국 전역, 그리고 전국 주요 대학에서 동남아시아 관련 강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대학 측에서는 이에 호응해야만 했다.

4. 전후 미국에서 지역 연구가 부상했다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게 된 새로운 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국 정부는 서유럽 이외 지역의 현대 정치 및 경제 연구에 막대한 돈과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정책 분야, 특히 ‘국제 공산주의’의 위협과 관련된 연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처럼 연구 분야들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CIA, 국무성, 국방성이었다. 하지만 록펠러 재단이나 포드 재단 같은 사설 기관들도 정부의 역할 중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변화에 기여했다.

이들 대다수는 더 깊이 있고 역사에 토대를 둔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개방적인 대학에서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들은 또 그런 연구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갖춘 도서관, 그리고 전쟁 전에는 거의 가르치지 않았던 여러 언어에 대한 능률적인 교수법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 앤더슨은 당시 서구인의 눈에 비친 ‘동남아시아’를 ‘남양’과 ‘남방’을 들어 설명한다. 南洋은 북경에서 바라본 중국 동남 해안 지역을 가리키기도 하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섬들과 말레이 반도를 뜻하기도 했다. 일본어 南方은 메이지 시대 들어 더 명확하고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는데, 오늘날의 동남아시아는 물론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위임통치하게 된 서태평양의 넓은 지역을 가리켰다.

현대적인 의미로 동남아시아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서양 학자는 버마 전문가인 존 퍼니발(John Funival)이다. 이 말이 지금의 뜻으로 굳어진 것은 일본이 그랬듯이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전 지역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야심 때문이었다. 유럽 열강은 이 지역을 자기들끼리 나눠 갖고 각자의 식민지를 관리하는 데 그쳤지만, 미국이 이렇게 나오면서 그 지역을 연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6. 동남아시아의 1970년대는 아직 혁명의 시대였다. 반제국주의를 내건 유혈 전쟁이 끝난 후 사회주의 정부가 베트남과 라오스에 들어섰고, 캄보디아의 프놈펜에는 크메르루즈가 입성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국경없는 연대와 국제주의적 평화를 이루어 내지 못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중국과 베트남이 서로를 침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앤더슨은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이론 모두 적절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던 민족주의라는 현상을 탐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온 세계적 과정을 살펴본 앤더슨의 대표작 ≪상상의 공동체≫는 이렇게 탄생한다.

≪상상의 공동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온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서’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동생 로리(페리 앤더슨)의 마르크스적 시각과 ≪뉴 레프트 리뷰≫를 접하면서 받은 커다란 영향이 있다. 그는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생겨나 비슷한 형태로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유럽중심적인 사고방식, 전통적인 마르크시즘과 자유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를 진보주의, 마르크시즘, 사회주의, 보수주의 같은 수많은 개념들의 체계 또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강력한 전통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앤더슨은 ‘민족’을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유기적이고 초역사적인 실체가 아니라 서구에서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본다. ‘민족주의’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경제 및 소통 방식의 변화로 기독교 및 라틴어의 권위와 절대 왕권이 약화된 결과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쇄술인데, 활자화된 매체들을 통해 각 언어의 철자와 문법이 통일 고착되고, 구성원들에게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동질감을 주면서, 그들을 다른 공동체로부터 구분해 주는 국경이 있고, 주권을 지닌 민족국가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앤더슨은 ‘민족’을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유기적이고 초역사적인 실체가 아니라 서구에서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본다. ‘민족주의’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경제 및 소통 방식의 변화로 기독교 및 라틴어의 권위와 절대 왕권이 약화된 결과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쇄술인데, 활자화된 매체들을 통해 각 언어의 철자와 문법이 통일 고착되고, 구성원들에게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동질감을 주면서, 그들을 다른 공동체로부터 구분해 주는 국경이 있고, 주권을 지닌 민족국가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기원은 식민 지배에 항거하는 반식민주의(anti-colonialism)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즉 국가(state) 없는 민족(nation)에게서 민족주의의 봄날, 청준, 기원을 찾는 그의 관점은 민족주의가 영국, 프랑스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의미를 가지는 민족국가들’ 간의 갈등에서 비로소 시작되었고, 반식민주의 민족주의는 후대의 일탈 내지는 변종이라는 유럽중심주의적인 사고와는 전혀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또한 최초의 민족주의를 일궈낸 주역이 남 북 아메리카의 크리올, 즉 대서양을 건너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식민자들의 후예라는 그의 주장은 배타적인 영토에 뿌리박은 배타적인 언어, 문화, 종족성을 민족주의의 전제로 삼는 낭만주의적 경향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민족을 이루는 것은 외부의 관찰자들이 판단하여 정하는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족 구성원들의 수평적이 동지애 위에 세워진 주권을 가진 정치공동체를 향한 ‘상상’이라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7. ≪경계 너머의 삶≫은 앤더슨이 이런 민족주의 개념을 토대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천착한 과정을 보여주는 연구사로 읽혀진다. 딱딱한 논문보다 이런저런 고민과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노트’가 흥미롭듯이, 한 생애를 들어 연구과정의 속살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바이오그래피는 시사하는 바 많아, 늘 독서 욕구를 진작시켜준다.

*

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

베네딕트 앤더슨 저, 서지원 역, 길, 2018

원제 | Imagined Communities

베네딕트 앤더슨, 서지원,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학문의 제국주의 - 오리엔탈리즘과 중국사

폴 A. 코헨 저, 이남희 역, 순천향대학교출판부, 2013

원제 : Discovering History In China : American Historical Writing on the Recent Chinese Past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 근대 중국의 새로운 해석

프라센지트 두아라 저, 손승회, 문명기 역, 삼인. 2004

원제 : Rescuing History from the Nation: Questioning Narratives of Modern China

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 – 유산과 프로젝트로서의 과거

아리프 딜릭 저, 황동연 역, 창비, 2005

원제 : Postmodernity‘s Histories: The Past as Legacy and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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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찰스 그레이버 지음,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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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계가 건강한 자기 세포를 지키려고 설치해둔 ‘면역관문’을 교란하여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암세포와
이에 대응해 관문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면역관문 억제제’를 개발하는 과학자의 무기경쟁, 항암면역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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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한자권과 한국의 문자 교체 - 국한문 독본과 총독부 조선어급한문독본 비교 연구, L-098 연세근대한국학총서 125
임상석 지음 / 소명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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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초에 관심은 근대국가가 국민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작동했던 '국어'와 '국사'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근대언어학은 일정한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는 균질적인 공동체를 전제하는데, 이 근대언어학이 제기하는 '언어적 근대'라는 문제 설정은 무척이나 독서 욕구를 자극했고, 그 불을 당겨 준 것은 이연숙의 ≪국어라는 사상≫이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11171650081&code=900308&fbclid=IwAR0Q78QOeA3gU2SbSt_tMKeRcxeu4yj75jeqiH0pDiWjb8NoiRGhBRyIdwo

2. 기왕의 ‘국어사’에서 다루는 ‘근대 국어’는 대개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 사이의 한국어를 가리키는데, 이 시대 구분이 언어 외적 요인들과는 무관한 언어 내적 사실, 즉 음운이나 문법 체계들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언어 외적 환경과 맥락을 다루지 않는, 혹은 다룰 수 없는 현재의 언어 연구 풍토가 어디서 ‘기원’하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근대’라는 문제 설정에 다시 주목한다. ‘근대’라는 문제 설정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러나 이전 시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생활 습속과 의식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병문은 그 근원을 주시경에 두고 논의를 시작한다. 주시경은 이른 시기부터 ‘국문’과 ‘국어’에 대한 자각을 통해 지속적인 발언을 했으며, 또 ‘주시경 일파’라 부를 수 있는 집단을 형성해 사회 운동적 차원에서 언어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의 이른바 ‘한글 운동’은 물론이고 해방 후의 언어 운동 및 정책 역시 그의 직접적인 제자들이나 그의 이론을 따른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 역시 주시경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주시경에 접근했을 때, 앞서 언급한 일종의 토론 부재의 상황을 타개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여 김병문은 ‘언어적 근대’라는 문제 설정을 통해 주시경에 접근한다면, 기존 국어학계의 성과를 살리면서도, 근대의 초입에 어떠한 새로운 인식과 의식적 노력이 언어와 관련해서 있었고, 결국 이것이 현재에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에 논의를 전개한다. (김병문, 언어적 근대의 기획- 주시경과 그의 시대, 2013)

3. 한편 이중어사전이 한국어의 근대적 재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문제설정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이병근, 황호덕, 이상현의 연구 역시 비상한 관심을 끈다.

"둘 이상의 한자 어휘가 조합되며 생성된 한자 문명어는 비록 그 음가는 한국어로 읽힐지 모르나, 이를 구성하는 개념과 이 한자 어휘의 조합은 일차적 기원으로 근대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경유의 과정이, 보다 더 근원적인 기원에는 서구 문명어에 대한 개념 번역의 과정이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형태의 번역 혹은 중역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 즉 번역가능성이 한국과 일본 사회 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리라는 가정도 가능할 것이다."

"서구어의 번역으로부터 자국어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되는 일본의 근대 학술 편성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서구어-한국어의 상호 형상화 도식은 ‘이입된 신조어들을 영어 문맥 안에 고정하려는 외국인(주로 선교사)들의 노력’을 통과해 진행되고 있었던 측면이 더해져 있었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당연히 그러한 언어들의 생성지인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어휘집 및 사전들을 참조하게 되는 경향을 통해 일본과 중국으로부터의 언어유입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살피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량의 신생 한자어, 즉 신조어들이 근대 한국어 안에 기입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입된 언어들의 목록 ―즉 이중어사전들이 한국어 정리작업의 원천으로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의 연구는, "사전에 등재된 말은 그 말의 최초 용례나 그 용례의 도입 순간보다 더욱 결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사전은 용례보다 늦게 오는데, 최소한의 언중의 합의가 없는 한 어떤 그럴듯한 시도도 사전에는 등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확정된 의미, 사회적 합의를 상상하며 번역의 과정을 연구하려 할 때, 이중어사전은 가장 표준적이고 확실한, 가장 기능적인 한편 계량화가 가능한 지표가 된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고 있다.

4. 어제 오늘, 새롭게 ‘식민지 한자권’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임상석의 저작을 대한다. 이 책 ≪식민지 한자권과 한국의 문자 교체≫는 한국인의 국한문 독본과 일제의 조선어·한문 독본에 나타난, 국문과 한문 및 조선어와 한문의 역사적 전개를 연구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저자는 갑오개혁~일제강점 시기의 두 독본을 비교 연구하여 한국어의 역사적 전개와 식민지 어문정책의 길항 관계를 분석하고 있는데, 생경한 용어가 많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서론과 결론을 두어 차례 읽고 나니 가까스로 논지가 가늠된다.

식민지 위기에서 짧게 타오른 계몽의 희망으로부터 폐색되고 굴절된 식민지의 이상과 허상까지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난 한국 어문의 축도이다. 식민지 한자권이란 경사자집의 전통으로 대변되는 전근대의 한자권이 식민과 제국의 도래와 함께 재구성되고 해체된 과정을 집약한 용어이다. 한자권에서 전근대 중화의 질서를 대체하려 한 일제의 독본과 그 대응물인 한국인의 독본을 식민지 한자권의 역사적 증거로 제시한 셈이다. 식민지 한자권은 현재의 한국에도 영향을 드리운 것으로 그 가운데 주요한 현상은 한문-국한문-한글전용의 단계를 거친 문자 교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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