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한자권과 한국의 문자 교체 - 국한문 독본과 총독부 조선어급한문독본 비교 연구, L-098 연세근대한국학총서 125
임상석 지음 / 소명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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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초에 관심은 근대국가가 국민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작동했던 '국어'와 '국사'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근대언어학은 일정한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는 균질적인 공동체를 전제하는데, 이 근대언어학이 제기하는 '언어적 근대'라는 문제 설정은 무척이나 독서 욕구를 자극했고, 그 불을 당겨 준 것은 이연숙의 ≪국어라는 사상≫이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11171650081&code=900308&fbclid=IwAR0Q78QOeA3gU2SbSt_tMKeRcxeu4yj75jeqiH0pDiWjb8NoiRGhBRyIdwo

2. 기왕의 ‘국어사’에서 다루는 ‘근대 국어’는 대개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 사이의 한국어를 가리키는데, 이 시대 구분이 언어 외적 요인들과는 무관한 언어 내적 사실, 즉 음운이나 문법 체계들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언어 외적 환경과 맥락을 다루지 않는, 혹은 다룰 수 없는 현재의 언어 연구 풍토가 어디서 ‘기원’하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근대’라는 문제 설정에 다시 주목한다. ‘근대’라는 문제 설정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러나 이전 시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생활 습속과 의식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병문은 그 근원을 주시경에 두고 논의를 시작한다. 주시경은 이른 시기부터 ‘국문’과 ‘국어’에 대한 자각을 통해 지속적인 발언을 했으며, 또 ‘주시경 일파’라 부를 수 있는 집단을 형성해 사회 운동적 차원에서 언어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의 이른바 ‘한글 운동’은 물론이고 해방 후의 언어 운동 및 정책 역시 그의 직접적인 제자들이나 그의 이론을 따른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 역시 주시경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주시경에 접근했을 때, 앞서 언급한 일종의 토론 부재의 상황을 타개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여 김병문은 ‘언어적 근대’라는 문제 설정을 통해 주시경에 접근한다면, 기존 국어학계의 성과를 살리면서도, 근대의 초입에 어떠한 새로운 인식과 의식적 노력이 언어와 관련해서 있었고, 결국 이것이 현재에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에 논의를 전개한다. (김병문, 언어적 근대의 기획- 주시경과 그의 시대, 2013)

3. 한편 이중어사전이 한국어의 근대적 재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문제설정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이병근, 황호덕, 이상현의 연구 역시 비상한 관심을 끈다.

"둘 이상의 한자 어휘가 조합되며 생성된 한자 문명어는 비록 그 음가는 한국어로 읽힐지 모르나, 이를 구성하는 개념과 이 한자 어휘의 조합은 일차적 기원으로 근대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경유의 과정이, 보다 더 근원적인 기원에는 서구 문명어에 대한 개념 번역의 과정이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형태의 번역 혹은 중역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 즉 번역가능성이 한국과 일본 사회 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리라는 가정도 가능할 것이다."

"서구어의 번역으로부터 자국어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되는 일본의 근대 학술 편성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서구어-한국어의 상호 형상화 도식은 ‘이입된 신조어들을 영어 문맥 안에 고정하려는 외국인(주로 선교사)들의 노력’을 통과해 진행되고 있었던 측면이 더해져 있었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당연히 그러한 언어들의 생성지인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어휘집 및 사전들을 참조하게 되는 경향을 통해 일본과 중국으로부터의 언어유입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살피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량의 신생 한자어, 즉 신조어들이 근대 한국어 안에 기입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입된 언어들의 목록 ―즉 이중어사전들이 한국어 정리작업의 원천으로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의 연구는, "사전에 등재된 말은 그 말의 최초 용례나 그 용례의 도입 순간보다 더욱 결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사전은 용례보다 늦게 오는데, 최소한의 언중의 합의가 없는 한 어떤 그럴듯한 시도도 사전에는 등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확정된 의미, 사회적 합의를 상상하며 번역의 과정을 연구하려 할 때, 이중어사전은 가장 표준적이고 확실한, 가장 기능적인 한편 계량화가 가능한 지표가 된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고 있다.

4. 어제 오늘, 새롭게 ‘식민지 한자권’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임상석의 저작을 대한다. 이 책 ≪식민지 한자권과 한국의 문자 교체≫는 한국인의 국한문 독본과 일제의 조선어·한문 독본에 나타난, 국문과 한문 및 조선어와 한문의 역사적 전개를 연구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저자는 갑오개혁~일제강점 시기의 두 독본을 비교 연구하여 한국어의 역사적 전개와 식민지 어문정책의 길항 관계를 분석하고 있는데, 생경한 용어가 많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서론과 결론을 두어 차례 읽고 나니 가까스로 논지가 가늠된다.

식민지 위기에서 짧게 타오른 계몽의 희망으로부터 폐색되고 굴절된 식민지의 이상과 허상까지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난 한국 어문의 축도이다. 식민지 한자권이란 경사자집의 전통으로 대변되는 전근대의 한자권이 식민과 제국의 도래와 함께 재구성되고 해체된 과정을 집약한 용어이다. 한자권에서 전근대 중화의 질서를 대체하려 한 일제의 독본과 그 대응물인 한국인의 독본을 식민지 한자권의 역사적 증거로 제시한 셈이다. 식민지 한자권은 현재의 한국에도 영향을 드리운 것으로 그 가운데 주요한 현상은 한문-국한문-한글전용의 단계를 거친 문자 교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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