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너머의 삶 - 베네딕트 앤더슨 자서전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손영미 옮김 / 연암서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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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 아닌 겨울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덕분에 베네딕트 앤더슨의 자서전 ≪경계 너머의 삶≫을 통독했다.

2. 1936년 중국 쿤밍에서 태어난 앤더슨은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베트남인 보모 손에서 자라나 아일랜드와 영국, 미국 등에서 공부하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니며 현장연구를 수행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그가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무렵 미국이 처한 상황과 거기에서 태동한 동남아시아 관련 ‘지역연구’,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주저 ≪상상의 공동체≫를 쓰게 되었던가 하는 것이다.

3. 1960년대 들어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우주선을 발사하자 큰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대학 교육의 후진성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전쟁, 마오쩌둥 치하 중국의 성장, 인도차이나의 위기 심화, 동아시아의 전쟁,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 등 다른 문제도 많았다. 그래서 1960년쯤부터 장학금, 언어 교육 프로그램 등의 형태로 엄청난 돈이 대학으로 유입된다.

이어 19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이 격화되고 대학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이 전개되자 동남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갑자기 미국 전역, 그리고 전국 주요 대학에서 동남아시아 관련 강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대학 측에서는 이에 호응해야만 했다.

4. 전후 미국에서 지역 연구가 부상했다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게 된 새로운 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미국 정부는 서유럽 이외 지역의 현대 정치 및 경제 연구에 막대한 돈과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정책 분야, 특히 ‘국제 공산주의’의 위협과 관련된 연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처럼 연구 분야들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CIA, 국무성, 국방성이었다. 하지만 록펠러 재단이나 포드 재단 같은 사설 기관들도 정부의 역할 중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변화에 기여했다.

이들 대다수는 더 깊이 있고 역사에 토대를 둔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개방적인 대학에서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들은 또 그런 연구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갖춘 도서관, 그리고 전쟁 전에는 거의 가르치지 않았던 여러 언어에 대한 능률적인 교수법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 앤더슨은 당시 서구인의 눈에 비친 ‘동남아시아’를 ‘남양’과 ‘남방’을 들어 설명한다. 南洋은 북경에서 바라본 중국 동남 해안 지역을 가리키기도 하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섬들과 말레이 반도를 뜻하기도 했다. 일본어 南方은 메이지 시대 들어 더 명확하고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는데, 오늘날의 동남아시아는 물론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위임통치하게 된 서태평양의 넓은 지역을 가리켰다.

현대적인 의미로 동남아시아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서양 학자는 버마 전문가인 존 퍼니발(John Funival)이다. 이 말이 지금의 뜻으로 굳어진 것은 일본이 그랬듯이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전 지역을 지배하려는 미국의 야심 때문이었다. 유럽 열강은 이 지역을 자기들끼리 나눠 갖고 각자의 식민지를 관리하는 데 그쳤지만, 미국이 이렇게 나오면서 그 지역을 연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6. 동남아시아의 1970년대는 아직 혁명의 시대였다. 반제국주의를 내건 유혈 전쟁이 끝난 후 사회주의 정부가 베트남과 라오스에 들어섰고, 캄보디아의 프놈펜에는 크메르루즈가 입성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국경없는 연대와 국제주의적 평화를 이루어 내지 못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중국과 베트남이 서로를 침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앤더슨은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이론 모두 적절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던 민족주의라는 현상을 탐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민족주의가 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온 세계적 과정을 살펴본 앤더슨의 대표작 ≪상상의 공동체≫는 이렇게 탄생한다.

≪상상의 공동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온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서’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동생 로리(페리 앤더슨)의 마르크스적 시각과 ≪뉴 레프트 리뷰≫를 접하면서 받은 커다란 영향이 있다. 그는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생겨나 비슷한 형태로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유럽중심적인 사고방식, 전통적인 마르크시즘과 자유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를 진보주의, 마르크시즘, 사회주의, 보수주의 같은 수많은 개념들의 체계 또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강력한 전통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앤더슨은 ‘민족’을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유기적이고 초역사적인 실체가 아니라 서구에서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본다. ‘민족주의’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경제 및 소통 방식의 변화로 기독교 및 라틴어의 권위와 절대 왕권이 약화된 결과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쇄술인데, 활자화된 매체들을 통해 각 언어의 철자와 문법이 통일 고착되고, 구성원들에게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동질감을 주면서, 그들을 다른 공동체로부터 구분해 주는 국경이 있고, 주권을 지닌 민족국가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앤더슨은 ‘민족’을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유기적이고 초역사적인 실체가 아니라 서구에서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본다. ‘민족주의’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경제 및 소통 방식의 변화로 기독교 및 라틴어의 권위와 절대 왕권이 약화된 결과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쇄술인데, 활자화된 매체들을 통해 각 언어의 철자와 문법이 통일 고착되고, 구성원들에게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동질감을 주면서, 그들을 다른 공동체로부터 구분해 주는 국경이 있고, 주권을 지닌 민족국가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기원은 식민 지배에 항거하는 반식민주의(anti-colonialism)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반식민주의 민족주의, 즉 국가(state) 없는 민족(nation)에게서 민족주의의 봄날, 청준, 기원을 찾는 그의 관점은 민족주의가 영국, 프랑스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의미를 가지는 민족국가들’ 간의 갈등에서 비로소 시작되었고, 반식민주의 민족주의는 후대의 일탈 내지는 변종이라는 유럽중심주의적인 사고와는 전혀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또한 최초의 민족주의를 일궈낸 주역이 남 북 아메리카의 크리올, 즉 대서양을 건너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식민자들의 후예라는 그의 주장은 배타적인 영토에 뿌리박은 배타적인 언어, 문화, 종족성을 민족주의의 전제로 삼는 낭만주의적 경향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민족을 이루는 것은 외부의 관찰자들이 판단하여 정하는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족 구성원들의 수평적이 동지애 위에 세워진 주권을 가진 정치공동체를 향한 ‘상상’이라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7. ≪경계 너머의 삶≫은 앤더슨이 이런 민족주의 개념을 토대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천착한 과정을 보여주는 연구사로 읽혀진다. 딱딱한 논문보다 이런저런 고민과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노트’가 흥미롭듯이, 한 생애를 들어 연구과정의 속살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바이오그래피는 시사하는 바 많아, 늘 독서 욕구를 진작시켜준다.

*

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

베네딕트 앤더슨 저, 서지원 역, 길, 2018

원제 | Imagined Communities

베네딕트 앤더슨, 서지원,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학문의 제국주의 - 오리엔탈리즘과 중국사

폴 A. 코헨 저, 이남희 역, 순천향대학교출판부, 2013

원제 : Discovering History In China : American Historical Writing on the Recent Chinese Past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 근대 중국의 새로운 해석

프라센지트 두아라 저, 손승회, 문명기 역, 삼인. 2004

원제 : Rescuing History from the Nation: Questioning Narratives of Modern China

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 – 유산과 프로젝트로서의 과거

아리프 딜릭 저, 황동연 역, 창비, 2005

원제 : Postmodernity‘s Histories: The Past as Legacy and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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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찰스 그레이버 지음,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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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계가 건강한 자기 세포를 지키려고 설치해둔 ‘면역관문’을 교란하여 면역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암세포와
이에 대응해 관문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면역관문 억제제’를 개발하는 과학자의 무기경쟁, 항암면역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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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한자권과 한국의 문자 교체 - 국한문 독본과 총독부 조선어급한문독본 비교 연구, L-098 연세근대한국학총서 125
임상석 지음 / 소명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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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초에 관심은 근대국가가 국민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작동했던 '국어'와 '국사'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근대언어학은 일정한 언어적 규칙을 공유하는 균질적인 공동체를 전제하는데, 이 근대언어학이 제기하는 '언어적 근대'라는 문제 설정은 무척이나 독서 욕구를 자극했고, 그 불을 당겨 준 것은 이연숙의 ≪국어라는 사상≫이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11171650081&code=900308&fbclid=IwAR0Q78QOeA3gU2SbSt_tMKeRcxeu4yj75jeqiH0pDiWjb8NoiRGhBRyIdwo

2. 기왕의 ‘국어사’에서 다루는 ‘근대 국어’는 대개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 사이의 한국어를 가리키는데, 이 시대 구분이 언어 외적 요인들과는 무관한 언어 내적 사실, 즉 음운이나 문법 체계들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언어 외적 환경과 맥락을 다루지 않는, 혹은 다룰 수 없는 현재의 언어 연구 풍토가 어디서 ‘기원’하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근대’라는 문제 설정에 다시 주목한다. ‘근대’라는 문제 설정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러나 이전 시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생활 습속과 의식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병문은 그 근원을 주시경에 두고 논의를 시작한다. 주시경은 이른 시기부터 ‘국문’과 ‘국어’에 대한 자각을 통해 지속적인 발언을 했으며, 또 ‘주시경 일파’라 부를 수 있는 집단을 형성해 사회 운동적 차원에서 언어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의 이른바 ‘한글 운동’은 물론이고 해방 후의 언어 운동 및 정책 역시 그의 직접적인 제자들이나 그의 이론을 따른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 역시 주시경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주시경에 접근했을 때, 앞서 언급한 일종의 토론 부재의 상황을 타개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여 김병문은 ‘언어적 근대’라는 문제 설정을 통해 주시경에 접근한다면, 기존 국어학계의 성과를 살리면서도, 근대의 초입에 어떠한 새로운 인식과 의식적 노력이 언어와 관련해서 있었고, 결국 이것이 현재에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에 논의를 전개한다. (김병문, 언어적 근대의 기획- 주시경과 그의 시대, 2013)

3. 한편 이중어사전이 한국어의 근대적 재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문제설정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이병근, 황호덕, 이상현의 연구 역시 비상한 관심을 끈다.

"둘 이상의 한자 어휘가 조합되며 생성된 한자 문명어는 비록 그 음가는 한국어로 읽힐지 모르나, 이를 구성하는 개념과 이 한자 어휘의 조합은 일차적 기원으로 근대 (중국어나)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경유의 과정이, 보다 더 근원적인 기원에는 서구 문명어에 대한 개념 번역의 과정이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형태의 번역 혹은 중역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 즉 번역가능성이 한국과 일본 사회 내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리라는 가정도 가능할 것이다."

"서구어의 번역으로부터 자국어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되는 일본의 근대 학술 편성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서구어-한국어의 상호 형상화 도식은 ‘이입된 신조어들을 영어 문맥 안에 고정하려는 외국인(주로 선교사)들의 노력’을 통과해 진행되고 있었던 측면이 더해져 있었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당연히 그러한 언어들의 생성지인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어휘집 및 사전들을 참조하게 되는 경향을 통해 일본과 중국으로부터의 언어유입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살피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량의 신생 한자어, 즉 신조어들이 근대 한국어 안에 기입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입된 언어들의 목록 ―즉 이중어사전들이 한국어 정리작업의 원천으로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의 연구는, "사전에 등재된 말은 그 말의 최초 용례나 그 용례의 도입 순간보다 더욱 결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사전은 용례보다 늦게 오는데, 최소한의 언중의 합의가 없는 한 어떤 그럴듯한 시도도 사전에는 등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확정된 의미, 사회적 합의를 상상하며 번역의 과정을 연구하려 할 때, 이중어사전은 가장 표준적이고 확실한, 가장 기능적인 한편 계량화가 가능한 지표가 된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고 있다.

4. 어제 오늘, 새롭게 ‘식민지 한자권’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임상석의 저작을 대한다. 이 책 ≪식민지 한자권과 한국의 문자 교체≫는 한국인의 국한문 독본과 일제의 조선어·한문 독본에 나타난, 국문과 한문 및 조선어와 한문의 역사적 전개를 연구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저자는 갑오개혁~일제강점 시기의 두 독본을 비교 연구하여 한국어의 역사적 전개와 식민지 어문정책의 길항 관계를 분석하고 있는데, 생경한 용어가 많아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서론과 결론을 두어 차례 읽고 나니 가까스로 논지가 가늠된다.

식민지 위기에서 짧게 타오른 계몽의 희망으로부터 폐색되고 굴절된 식민지의 이상과 허상까지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난 한국 어문의 축도이다. 식민지 한자권이란 경사자집의 전통으로 대변되는 전근대의 한자권이 식민과 제국의 도래와 함께 재구성되고 해체된 과정을 집약한 용어이다. 한자권에서 전근대 중화의 질서를 대체하려 한 일제의 독본과 그 대응물인 한국인의 독본을 식민지 한자권의 역사적 증거로 제시한 셈이다. 식민지 한자권은 현재의 한국에도 영향을 드리운 것으로 그 가운데 주요한 현상은 한문-국한문-한글전용의 단계를 거친 문자 교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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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만필 - 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기
이수귀 지음, 신동원 외 옮김 / 들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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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만필(歷試漫筆)은 영조의 어의를 지낸 이수귀가 자신이 두루 시험한 것을 임상 에세이형식으로 남겨놓은 책이다. 이수귀(李壽龜)는 166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전문기술직 의관으로 출사한 뒤 18세기 전반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의업에 종사했다. 그는 서울과 경기도, 황해도 지역에서 중앙관료, 지방관료 혹은 좌막으로 일하거나, 사적인 영역에서도 의료 활동에 종사하면서 여러 문인 및 관료들과 교유했다. 위로는 정승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다양한 환자를 진료했던 그는 기술직 중인 가문 및 관료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었고, 의료를 매개로 형성된 환자-의사 연결망의 중심 고리였다. 특히 홍세태(洪世泰)를 위시한 여항 문인들과의 교유는 그의 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후기 기술전문직 종사자들의 정체성을 지식, 실행,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할 때 연구의 기본 텍스트가 되고 있다. 


의안(醫案)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진단 및 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선언적 성격의 정보 위주로 나열되어 있는 의서의 한계를 보완할 뿐 아니라 시대별 의학 사조의 특징과 역사 문화적 맥락까지 읽어낼 수 있는 서술 장르인데, 역시만필은 의론서에 부기된 일부 치험사례나 국가간 교류의 흔적인 필담창화집의 의사필기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치험 사례, 그리고 문집에서 산견되는 치료 경험 기사를 제외하면 18세기 의안류 문헌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사실상 유일하다.

 
저 ‘역시’(歷試)라는 용어는 단지 경험만이 아니라 ’고방‘(古方)을 누누이 시험해서 체화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의안은 대부분 18세기 전반의 치험 사례를 담고 있다. 이때는 동의보감(1613)이 출간된 지 100여 년이 지나 그 의학적 성과가 임상에 배어날 즈음이고 여항문학운동이 발흥하는 등 기술직 중인들의 기예가 높아지고 자의식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역자들은 저자 이수귀가 자신의 전문가적 기예를 드러내고 바람직한 의사상을 제시하면서 자신을 전문지식인으로 차별화하려는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역서 또한 한의학자, 과학사가 등 4인에 의한 공동작업으로 해제, 역주, 평석, 관련논문 소개 등 번역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印刊을 목적으로 130꼭지로 이루어진 필사본인 원저를 12개의 범주로 나누어 재배치한 점 역시 가독성을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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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세계를 보다 - 동아시아 해부학의 성립과 발전 문명지평 10
김성수.신규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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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에서 해부학의 수용 문제는 의학의 근대화와 서양 의학의 도입과 관련하여 중요한 지표인 만큼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용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동아시아의 전통 의학의 정체성과 각국 의학의 발전 과정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주제라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2. 하여 저자들은 동아시아의 해부학적 전통을 개괄하고,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삼국이 서양의 해부학을 수용하면서 나타난 해부학 전통의 변화를 개괄하고자 각국이 서양 의학을 도입한 과정과 그를 통한 변화의 맥락에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근대 사회에서 해부학이 어떤 운명에 처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근대적 의료 체계의 형성에 해부학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검토하고 있다.

3. 하지만 저자들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해부학의 수용과 근대 의학의 형성이 전혀 이질적인 양상으로 전개된 차이가 왜 발생된 것인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몹시 궁금했고, 그에 대해 상세한 분석을 가하고 있는 이종찬 선생의 ≪동아시아 의학의 전통과 근대≫를 다시 들추어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16세기 이래 중국의 해부학적 인식의 발전과정이 명청 시기 뇌주설의 확대 및 실증주의 학풍의 내재적 발전이 해부학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해부학적 인식의 전환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뒤늦은 것은 서양 의학의 전면적인 도입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이 내재적 발전과 결합되어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현듯 다케우치 요시미가 떠올랐다.

4. 일본의 경우, 난학을 통해 서양의학 서적을 번역하였던 근대화론자들은 메이지 유신을 맞아 자신의 ‘전통의학’을 폐기하면서 제도적으로 서양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근대의학은 ‘국체’를 확립하는 데 봉사해야 했다. 독일의 근대적 위생학을 배우고 돌아온 제국의 의학자들은 국가 위생 시스템을 통해, ‘제국의 몸’이 강건해야 한다는 천황이데올로기를 일본 국민들의 몸에 체화시켜 나갔다. 아울러 메이지 통치자들은 군진 위생에도 힘을 쏟아, 군인들이 ‘싸우는 기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서 근대적 위생과 의학은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하는데도 도덕적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5. 전쟁에 대한 불감증과 전쟁책임에 무관심한 일본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다케우치가 찾아낸 길은 근대 일본에서 아시아적인 원리를 지향하는 '전통'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었으니, 곧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발상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일본이 근대화하는 동안 억압되었던 민중의 실천과 사상을 재통합하는 길, 곧 저항하는 주체의 형성이며, 그 모델은 이미 중국혁명에서 실례로 나타났던 바 있다. 오늘날 일원적 진보주의의 근대관을 벗어나게 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다케우치가 검토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케우치의 아시아론은 서양 근대성에 대한 반항이라는 이유에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풍요로운 원천으로 전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케우치 사상이 빛을 발하는 대목은 주체의 자기부정 혹은 저항으로서의 절망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주체형성의 지점들에 대한 통찰이기에 결국 '동아시아'의 유효성이 있다면 국민국가의 틀 속에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주체의 존재영역을 발견할 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케우치는 주체 형성의 계기로서만 아시아를 사고했기에, 그리고 아시아의 역사적 실체에 주목하지 않은 탓에 대안적 가치 또한 제시할 수 없었던 점이 여러 비판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6. 19세기 서양의학사를 ‘진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의사학자들에 따르면, 근대 서양의학의 주춧돌은 과학적 의학, 실험실, 병원이다. 실험실은 과학적 의학을 이론적으로 만들어내고 검증하는 공간이며, 병원은 과학적 의학의 실천적 공간이다. 하지만 서구 중심적 ‘진보’관에 매몰되어 있는 그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이 서구의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선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다. 19세기 근대 임상의학과 공중위생의학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제국의 의학’으로 어떻게 변모해갔는지에 설명하지 않고 그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을 서구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따른 ‘과학적 의학’의 ‘진보’라고 이해한다. 문제는 1970년대부터 서구의 의료인류학자와 의사학자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7. 모든 책들이 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읽으면서 답을 찾거나 미루어 짐작할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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