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세계를 보다 - 동아시아 해부학의 성립과 발전 문명지평 10
김성수.신규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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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에서 해부학의 수용 문제는 의학의 근대화와 서양 의학의 도입과 관련하여 중요한 지표인 만큼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용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동아시아의 전통 의학의 정체성과 각국 의학의 발전 과정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주제라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2. 하여 저자들은 동아시아의 해부학적 전통을 개괄하고,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삼국이 서양의 해부학을 수용하면서 나타난 해부학 전통의 변화를 개괄하고자 각국이 서양 의학을 도입한 과정과 그를 통한 변화의 맥락에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근대 사회에서 해부학이 어떤 운명에 처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근대적 의료 체계의 형성에 해부학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검토하고 있다.

3. 하지만 저자들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해부학의 수용과 근대 의학의 형성이 전혀 이질적인 양상으로 전개된 차이가 왜 발생된 것인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몹시 궁금했고, 그에 대해 상세한 분석을 가하고 있는 이종찬 선생의 ≪동아시아 의학의 전통과 근대≫를 다시 들추어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16세기 이래 중국의 해부학적 인식의 발전과정이 명청 시기 뇌주설의 확대 및 실증주의 학풍의 내재적 발전이 해부학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해부학적 인식의 전환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뒤늦은 것은 서양 의학의 전면적인 도입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이 내재적 발전과 결합되어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현듯 다케우치 요시미가 떠올랐다.

4. 일본의 경우, 난학을 통해 서양의학 서적을 번역하였던 근대화론자들은 메이지 유신을 맞아 자신의 ‘전통의학’을 폐기하면서 제도적으로 서양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근대의학은 ‘국체’를 확립하는 데 봉사해야 했다. 독일의 근대적 위생학을 배우고 돌아온 제국의 의학자들은 국가 위생 시스템을 통해, ‘제국의 몸’이 강건해야 한다는 천황이데올로기를 일본 국민들의 몸에 체화시켜 나갔다. 아울러 메이지 통치자들은 군진 위생에도 힘을 쏟아, 군인들이 ‘싸우는 기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서 근대적 위생과 의학은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하는데도 도덕적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5. 전쟁에 대한 불감증과 전쟁책임에 무관심한 일본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다케우치가 찾아낸 길은 근대 일본에서 아시아적인 원리를 지향하는 '전통'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었으니, 곧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발상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일본이 근대화하는 동안 억압되었던 민중의 실천과 사상을 재통합하는 길, 곧 저항하는 주체의 형성이며, 그 모델은 이미 중국혁명에서 실례로 나타났던 바 있다. 오늘날 일원적 진보주의의 근대관을 벗어나게 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다케우치가 검토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케우치의 아시아론은 서양 근대성에 대한 반항이라는 이유에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풍요로운 원천으로 전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케우치 사상이 빛을 발하는 대목은 주체의 자기부정 혹은 저항으로서의 절망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주체형성의 지점들에 대한 통찰이기에 결국 '동아시아'의 유효성이 있다면 국민국가의 틀 속에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주체의 존재영역을 발견할 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케우치는 주체 형성의 계기로서만 아시아를 사고했기에, 그리고 아시아의 역사적 실체에 주목하지 않은 탓에 대안적 가치 또한 제시할 수 없었던 점이 여러 비판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6. 19세기 서양의학사를 ‘진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의사학자들에 따르면, 근대 서양의학의 주춧돌은 과학적 의학, 실험실, 병원이다. 실험실은 과학적 의학을 이론적으로 만들어내고 검증하는 공간이며, 병원은 과학적 의학의 실천적 공간이다. 하지만 서구 중심적 ‘진보’관에 매몰되어 있는 그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이 서구의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선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다. 19세기 근대 임상의학과 공중위생의학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제국의 의학’으로 어떻게 변모해갔는지에 설명하지 않고 그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을 서구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따른 ‘과학적 의학’의 ‘진보’라고 이해한다. 문제는 1970년대부터 서구의 의료인류학자와 의사학자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7. 모든 책들이 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읽으면서 답을 찾거나 미루어 짐작할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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