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만필 - 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기
이수귀 지음, 신동원 외 옮김 / 들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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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만필(歷試漫筆)은 영조의 어의를 지낸 이수귀가 자신이 두루 시험한 것을 임상 에세이형식으로 남겨놓은 책이다. 이수귀(李壽龜)는 166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전문기술직 의관으로 출사한 뒤 18세기 전반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의업에 종사했다. 그는 서울과 경기도, 황해도 지역에서 중앙관료, 지방관료 혹은 좌막으로 일하거나, 사적인 영역에서도 의료 활동에 종사하면서 여러 문인 및 관료들과 교유했다. 위로는 정승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다양한 환자를 진료했던 그는 기술직 중인 가문 및 관료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었고, 의료를 매개로 형성된 환자-의사 연결망의 중심 고리였다. 특히 홍세태(洪世泰)를 위시한 여항 문인들과의 교유는 그의 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후기 기술전문직 종사자들의 정체성을 지식, 실행,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할 때 연구의 기본 텍스트가 되고 있다. 


의안(醫案)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진단 및 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선언적 성격의 정보 위주로 나열되어 있는 의서의 한계를 보완할 뿐 아니라 시대별 의학 사조의 특징과 역사 문화적 맥락까지 읽어낼 수 있는 서술 장르인데, 역시만필은 의론서에 부기된 일부 치험사례나 국가간 교류의 흔적인 필담창화집의 의사필기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치험 사례, 그리고 문집에서 산견되는 치료 경험 기사를 제외하면 18세기 의안류 문헌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사실상 유일하다.

 
저 ‘역시’(歷試)라는 용어는 단지 경험만이 아니라 ’고방‘(古方)을 누누이 시험해서 체화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의안은 대부분 18세기 전반의 치험 사례를 담고 있다. 이때는 동의보감(1613)이 출간된 지 100여 년이 지나 그 의학적 성과가 임상에 배어날 즈음이고 여항문학운동이 발흥하는 등 기술직 중인들의 기예가 높아지고 자의식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역자들은 저자 이수귀가 자신의 전문가적 기예를 드러내고 바람직한 의사상을 제시하면서 자신을 전문지식인으로 차별화하려는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역서 또한 한의학자, 과학사가 등 4인에 의한 공동작업으로 해제, 역주, 평석, 관련논문 소개 등 번역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印刊을 목적으로 130꼭지로 이루어진 필사본인 원저를 12개의 범주로 나누어 재배치한 점 역시 가독성을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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