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만필 - 조선 어의 이수귀의 동의보감 실전기
이수귀 지음, 신동원 외 옮김 / 들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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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만필(歷試漫筆)은 영조의 어의를 지낸 이수귀가 자신이 두루 시험한 것을 임상 에세이형식으로 남겨놓은 책이다. 이수귀(李壽龜)는 166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과거를 거쳐 전문기술직 의관으로 출사한 뒤 18세기 전반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의업에 종사했다. 그는 서울과 경기도, 황해도 지역에서 중앙관료, 지방관료 혹은 좌막으로 일하거나, 사적인 영역에서도 의료 활동에 종사하면서 여러 문인 및 관료들과 교유했다. 위로는 정승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다양한 환자를 진료했던 그는 기술직 중인 가문 및 관료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었고, 의료를 매개로 형성된 환자-의사 연결망의 중심 고리였다. 특히 홍세태(洪世泰)를 위시한 여항 문인들과의 교유는 그의 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 후기 기술전문직 종사자들의 정체성을 지식, 실행,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할 때 연구의 기본 텍스트가 되고 있다. 


의안(醫案)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진단 및 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선언적 성격의 정보 위주로 나열되어 있는 의서의 한계를 보완할 뿐 아니라 시대별 의학 사조의 특징과 역사 문화적 맥락까지 읽어낼 수 있는 서술 장르인데, 역시만필은 의론서에 부기된 일부 치험사례나 국가간 교류의 흔적인 필담창화집의 의사필기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치험 사례, 그리고 문집에서 산견되는 치료 경험 기사를 제외하면 18세기 의안류 문헌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사실상 유일하다.

 
저 ‘역시’(歷試)라는 용어는 단지 경험만이 아니라 ’고방‘(古方)을 누누이 시험해서 체화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여기에 등장하는 의안은 대부분 18세기 전반의 치험 사례를 담고 있다. 이때는 동의보감(1613)이 출간된 지 100여 년이 지나 그 의학적 성과가 임상에 배어날 즈음이고 여항문학운동이 발흥하는 등 기술직 중인들의 기예가 높아지고 자의식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역자들은 저자 이수귀가 자신의 전문가적 기예를 드러내고 바람직한 의사상을 제시하면서 자신을 전문지식인으로 차별화하려는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역서 또한 한의학자, 과학사가 등 4인에 의한 공동작업으로 해제, 역주, 평석, 관련논문 소개 등 번역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印刊을 목적으로 130꼭지로 이루어진 필사본인 원저를 12개의 범주로 나누어 재배치한 점 역시 가독성을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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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세계를 보다 - 동아시아 해부학의 성립과 발전 문명지평 10
김성수.신규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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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에서 해부학의 수용 문제는 의학의 근대화와 서양 의학의 도입과 관련하여 중요한 지표인 만큼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용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동아시아의 전통 의학의 정체성과 각국 의학의 발전 과정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주제라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2. 하여 저자들은 동아시아의 해부학적 전통을 개괄하고,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삼국이 서양의 해부학을 수용하면서 나타난 해부학 전통의 변화를 개괄하고자 각국이 서양 의학을 도입한 과정과 그를 통한 변화의 맥락에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근대 사회에서 해부학이 어떤 운명에 처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근대적 의료 체계의 형성에 해부학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검토하고 있다.

3. 하지만 저자들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해부학의 수용과 근대 의학의 형성이 전혀 이질적인 양상으로 전개된 차이가 왜 발생된 것인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읽으면서 몹시 궁금했고, 그에 대해 상세한 분석을 가하고 있는 이종찬 선생의 ≪동아시아 의학의 전통과 근대≫를 다시 들추어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16세기 이래 중국의 해부학적 인식의 발전과정이 명청 시기 뇌주설의 확대 및 실증주의 학풍의 내재적 발전이 해부학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해부학적 인식의 전환이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뒤늦은 것은 서양 의학의 전면적인 도입에 의존하지 않고 그것이 내재적 발전과 결합되어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현듯 다케우치 요시미가 떠올랐다.

4. 일본의 경우, 난학을 통해 서양의학 서적을 번역하였던 근대화론자들은 메이지 유신을 맞아 자신의 ‘전통의학’을 폐기하면서 제도적으로 서양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근대의학은 ‘국체’를 확립하는 데 봉사해야 했다. 독일의 근대적 위생학을 배우고 돌아온 제국의 의학자들은 국가 위생 시스템을 통해, ‘제국의 몸’이 강건해야 한다는 천황이데올로기를 일본 국민들의 몸에 체화시켜 나갔다. 아울러 메이지 통치자들은 군진 위생에도 힘을 쏟아, 군인들이 ‘싸우는 기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서 근대적 위생과 의학은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하는데도 도덕적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5. 전쟁에 대한 불감증과 전쟁책임에 무관심한 일본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다케우치가 찾아낸 길은 근대 일본에서 아시아적인 원리를 지향하는 '전통'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었으니, 곧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발상이 그것이다. 그 내용은 일본이 근대화하는 동안 억압되었던 민중의 실천과 사상을 재통합하는 길, 곧 저항하는 주체의 형성이며, 그 모델은 이미 중국혁명에서 실례로 나타났던 바 있다. 오늘날 일원적 진보주의의 근대관을 벗어나게 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다케우치가 검토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케우치의 아시아론은 서양 근대성에 대한 반항이라는 이유에서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풍요로운 원천으로 전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케우치 사상이 빛을 발하는 대목은 주체의 자기부정 혹은 저항으로서의 절망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주체형성의 지점들에 대한 통찰이기에 결국 '동아시아'의 유효성이 있다면 국민국가의 틀 속에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주체의 존재영역을 발견할 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케우치는 주체 형성의 계기로서만 아시아를 사고했기에, 그리고 아시아의 역사적 실체에 주목하지 않은 탓에 대안적 가치 또한 제시할 수 없었던 점이 여러 비판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6. 19세기 서양의학사를 ‘진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의사학자들에 따르면, 근대 서양의학의 주춧돌은 과학적 의학, 실험실, 병원이다. 실험실은 과학적 의학을 이론적으로 만들어내고 검증하는 공간이며, 병원은 과학적 의학의 실천적 공간이다. 하지만 서구 중심적 ‘진보’관에 매몰되어 있는 그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이 서구의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선 거의 주목하지 않고 있다. 19세기 근대 임상의학과 공중위생의학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제국의 의학’으로 어떻게 변모해갔는지에 설명하지 않고 그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을 서구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따른 ‘과학적 의학’의 ‘진보’라고 이해한다. 문제는 1970년대부터 서구의 의료인류학자와 의사학자들은 서양의학의 근대성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7. 모든 책들이 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읽으면서 답을 찾거나 미루어 짐작할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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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 - 대의민주주의의 덫과 현능정치의 도전
대니얼 A. 벨 지음, 김기협 옮김 / 서해문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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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집단지도체제, 시대정신에 맞는가, 오현철, 녹색평론 156, 2017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다. 정치학자 오현철 교수의 '차이나 모델'에 대한 서평을 읽으며 든 생각이지만, 마침내는 그의 강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압도된다. 아니, 저 촛불정국이라는 '정치부재' 사태를 겪은 즈음에 누가 감히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진작에 국회의원에 대한 낙천낙선운동을 "광복 후 처음으로 정치집단에 대한 대규모 저항운동이 폭력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했던 바 있다.(시민불복종 - 저항과 자유의 길책세상,  2001)


대니얼 A. 벨은 선거 민주주의의 폐해를 네 가지로 지적한다. 첫째, 비이성적인 다수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소수를 억압하고 나쁜 정책을 채택하는 ‘다수의 전횡’, 둘째 경제력을 장악한 소수가 정치 과정에 개입해 公共善에 부합하는 변화를 가로막거나 자신들 이익에 맞는 정책을 관철할 위험, 셋째 미래 세대나 외국인처럼 정책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투표권을 갖지 못한 집단과 투표권을 가진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후자의 입장이 언제나 관철되는 문제, 마지막은 ‘경쟁적 개인주의 전횡’으로 선거는 사회갈등을 완화하기보다는 격화시킬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그는 중국 정체체제의 ‘1인1표’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선거민주주의의 치명적인 결함들을 보완하는 데 현능주의 이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리고 현능주의 정치체제의 장점과 단점을 검토하고 민주주의와 현능주의를 결합하는 여러 방법을 살펴본 다음, 중국에서 빚어져온 민주적 현능주의 체제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바람직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바닥은 민주주의, 꼭대기는 현능주의, 그리고 그 사이는 실험 공간으로 이뤄지는 이 체제를 그는 ‘차이나 모델’이라 부르며 다른 나라에서도 참고할 만한 점을 지적한다. 그는 중국에서 긴 역사를 가졌을 뿐 아니라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발전의 지표가 될 가능성을 가진 현능주의 정치이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 교수는 서구 만주주의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벨처럼 유교 정치제제의 복원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의 재봉건화를 자청하는 시대착오적인 퇴행으로 간주한다. 벨의 차이나 모델은 중국공산당이라는 거대 권력집단이 자가수정을 통해 엘리트를 스스로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유기적인 제도라며 엘리트주의를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차이나모델이 간과한 것으로, 1) 벨의 주장엔 인간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세계관의 문제, 2) 중국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통치계급이라는 정치체제의 정당성 문제, 3)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전문성을 특권화 하는 전문가의 속성의 문제, 4) 전문가의 집단적 편향성 문제, 5) 관점의 차이와 의견충돌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부분의 문제에서 일치하지 않는 문제, 6) 주인에게 봉사해야 할 대리인이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딜레마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요컨대 차이나 모델은 관료정치집단에 전권을 위임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여 그는 국민이 선거로 대표를 선출하고 대표들을 일상적으로 비판 감시하며, 중요한 국가적 문제는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공론조사나 시민의회 같은 토의민주주의의 시민참여 제도는 관료정치체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서서, 대안 정치체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ps.

오 교수는 이 책의 핵심 주제인 'meritocracy'를 일반적으로 쓰이는 '능력주의' 대신 '현능주의'로 번역한 데도,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의 통치를 지향하는 유교적 가치판단이 개입되어 있다면서 이 용어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하고자 '능력주의'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쯤에서 은근히 역자 김기협의 이 서평에 대한 반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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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 근대 학문과 예술은 어떻게 열대를 은폐했는가 서강학술총서 91
이종찬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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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압도하는 책. 이런 주제를 이만한 스칼러쉽을 가지고 소화해내고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참고도서와 찾아보기를 보시라!

 

그는 서구중심주의 역사학의 중심 개념들에 대한 대안적 개념으로, ‘자연사’(natural history), ‘열대’(tropics), ‘생물지리적 탐험’(biogeographical exploration), 공간의 발명’, ‘문화융합’(transculturation)을 제시하며, 유럽의 대안적 공간으로 열대를, 인류사(human history) 중심의 역사에 매몰되어 왔던 유럽중심주의의 대안적 역사로 자연사를 살펴보고 있다. 그에게서 자연사는 지구가 형성된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구 근대 국민국가와 자연사의 형성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더 나아가 서구는 열대를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사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대 자연사가 서구 인류사에서 은폐되어 왔다는 것은 대단한 역설이다. 열대의 자연사는 대부분 은폐되거나 기껏해야 근대 국민국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에피소드 정도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유럽인들은 열대 자연사 탐험을 통하여 유럽의 식물, 동물, 광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열대의 그것들을 접하면서 유럽중심의 인류사와는 구분되는 열대 자연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하여 열대는 서구의 생물지리적 탐험에 의해 발명된 역사지리적공간이다. 저자는 단적으로 말한다. "생물지리적 탐험이 유럽이 열대 공간을 발명한 일차적 방법이라면, 자연사는 그것의 역사인식론이다."

    

우리는 그동안 거의 자연사를 알지 못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열대자연사를 연구하고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육과 연구는 근대 서구에서 혁명적 사유가 정치경제의 영역에서만 일어났다는 점을 주로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인식은 열대 자연사에서 인간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간과하였다. 이 시기에 인간과 식물, 동물, 광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혁명이 이루어졌다. 열대 자연사는 서구인의 오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낭만주의가 열대 자연사가 촉발시켰던 감성의 세계를 문학과 예술로 녹여내었지만, 근대 국민국가 중심의 인류사적 역사인식은 열대자연사의 감성을 다시 억압하였다. 저자에 의하면 인류사 중심의 근대 서양사가 과학혁명,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이름으로 열대 자연사를 은폐시켜 왔기 때문이다. 하여 인류사 중심의 서구 정체성의 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는 것을 저자는 열대학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꼽고 있다. 아직도 이 틀이 제국주의 시기보다 더 강력한 역사지질학적 힘으로 자연사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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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어느 사학자의 에고 히스토리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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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사학자의 에고 히스토리-, 임지현, 소나무, 2016

역사가되기의 어려움. 역사학보 228, 임지현, 2015

 

1. 그는 역사학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글에서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본질주의적 파악보다는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identification)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이 더 적절한 방법이라며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되짚는다.

 

2. 일찍이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전공으로 택할 당시, 그는 서양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비추어 한국사회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서구의 헤게모니적 거울에 비추어 우리도 자생적 근대가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정받으려는 비서구 역사학의 ‘인정투쟁’은 애초부터 ‘결과론적 서구중심주의’를 껴안고 출발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민족주의적일수록 더 서구중심주의적으로 되는 비서구 민족주의의 모순이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에선 1980년대 운동권의 NL-PD 논쟁을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 맑스-엥겔스의 민족 문제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맑스/엥겔스의 ‘서구중심주의’를 ‘자본중심주의’(Capitalo-centrism)라는 신조어로 바꾸어 변호한다. 사회주의가 성숙한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 한 맑스의 ‘자본중심주의’는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서구중심주의’는 ‘자본중심주의’의 불청객이라는 것이다. ‘문명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의 식민주의를 승인했던 맑스-엥겔스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선 1867년 이후 아일랜드 민족해방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변화된 맑스-엥겔스의 태도를 강조하며 비껴간다. 그를 일러 '맑시스트'라는 학위 논문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 스스로를 '맑솔로지스트'라고 변명하는 부분을 읽다가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3. 그를 폴란드로 부른 것은 ‘맑스 이래 최고의 두뇌’라는 찬사를 받던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맑시스트 로자 룩셈부르크였지만, 그 덕분에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게 되는 역설과 마주한다. 냉전체제가 무너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서구중심적 맑스주의, 붉은 오리엔탈리즘, 맑스주의적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가능했으며, ‘서양사’라는 학제적 정체성을 의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담론적 위치에 따라 움직이는 유동적 개념으로서의 ‘동양’과 ‘서양’은 결과적으로 ‘한국’과 ‘폴란드’의 교차점에서 서유럽과 동유럽, 동아시아를 함께 바라볼 수 있었던 독특한 포지션 덕분에 가능했으며, 독일 사회민주당의 실용적 개혁노선과 볼셰비키의 혁명적 주의주의의 가교 역할을 했던 폴란드 사회주의 운동의 독특한 위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볼셰비키 혁명처럼 좋은 헤게모니가 나쁜 헤게모니 대신 권력을 장악해서 물적 토대로부터 상부구조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변혁을 주도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했다. 현실은 훨씬 녹녹치 않았으며, 법과 제도, 구조를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의 인식 지평 자체가 생산관계와 제도의 영역에 고정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권력의 지배와 착취가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여했고 그 최악의 결과는 당과 국가기관 노멘클라투라의 권력을 정당화해버렸다는 점이다.”

 

4.『당대비평』의 특집 '우리 안의 파시즘'을 기획하고 ‘일상적 파시즘의 코드 읽기’라는 역사-정치 에세이를 쓴 것은 이러한 반성의 결과었다. 법과 제도 차원의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서 역사적 행위자들의 매일매일의 사유와 실천이 민주화 되지 않는다면, 현실 사회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사회의 민주화도 ‘자유’와 ‘해방’의 이름으로 억압을 내재화하는 일상적 파시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지였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이는 것이 그의 에세이에 대한 일관된 관심이다. 역사학자라면 당면한 사회문제들과 대결하면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실천적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인문학 위기에 대한 처방전이 되기도 하는데,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트랜스내셔널 기억 연구 등의 아이디어는 먼저 계간지 등에서 에세이를 통해 개진했고 한국 지식장에서 실천적 논쟁을 거치며서 생각이 더 다듬어지고 발전했다는 점을 술회하고 있다. 

 

 

뒤이은 ‘대중독재’론은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의식을 20세기의 독재 연구에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학문적으로는 먼저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해석을 둘러싸고 폴란드 현대사가들이 제기한 도발적 문제 제기에 힘입은 바 컸음을 고백한다.

폴란드 민중이든 한국의 민중이든 현실사회주의나 박정희 체제같은 나쁜 권력을 지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덕분에 좌파독재와 우파 독재든 세계사적 근대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들이 서로 경합하면서도 서로에게 배우는 ‘트랜스내셔널한 사회 구성체’로서 ‘대중독재’를 보겠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한다. 특히 연구가 진행되면서 식민주의적 폭력과 홀로코스트의 연속성에 주목하게 되자, 민주주의와 독재를 서구와 비서구, 근대와 전근대, 혹은 정상과 일탈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범주화하는 세계사의 ‘상식’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게 된다.

5. 이후 그는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라는 한·일 지식인 모임을 결성하여 동아시아의 지역 차원에서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국사’ 패러다임에 대한 동시다발적 비판을 시도한다. 한·중·일 삼국의 ‘국사’에 대한 동시다발적 비판을 강조한 것은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를 드러내서 해체한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적대적 공범관계’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우경화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라는 판단이었다. 그 밑에는 일본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데 공동전선을 결성해온 일본의 좌파 지식인과 한국의민족주의 지식인들 간의 신성동맹이 한반도의 민족주의를 정당화하고 결과적으로 다시 일본 열도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정당화해 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한·중 간의 역사논쟁도 상황은 유사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를 중국사의 공간적 범주로 규정하는 중국의 역사 교과서와 한민족의 역사적 활동공간을 한국사의 공간적 범주로 간주하는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곧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국과 중국의 고구려사 논쟁은 오히려 더일찍 일어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고구려사의 국가적 귀속에 대한 주장만 다를 뿐, 근대 국민국가의 ‘국경’ 개념을 고구려라는 먼 과거에 적용하여 전유하려는 ‘국사’의 인식론은 논쟁 당사자들이 모두 공유하는 인식의 틀이었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창립기념 국제학술대회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고구려사를 고구려인에게!’라는 모토로 ‘변경사’의 시각에서 고구려사 논쟁을 되짚어봄으로써, ‘국사’ 패러다임에 대한 학문적·정치적 대안으로 ‘변경사’를 제시하고자 했다

 

 

‘국사’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지구사’ 혹은 ‘트랜스내셔널 역사’를 살피며 그는 종속이론이나 섭얼턴 연구, 맑스주의 세계체제론이나 페미니즘의 이론과 문제의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국민국가를 주역으로 삼는 서구중심주의적 역사상에 대한 비서구의 대안적 역사상으로서의 ‘지구사’의 의미를 강조한다. 지구적 관점에서 19세기 이후 근대 역사서술의 역사를 보면, ‘국사’는 유럽의 근대 국민국가에서 시작되어 식민주의의 이동경로를 따라 주변부에도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변부의 저항 민족주의가 실은 식민주의의 거울 효과라는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주변부의 ‘국사’는 민족주의의 형태로 식민주의 혹은 유럽중심주의적 담론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6. 그는 ‘서양사’ 연구자로 출발하여 동·서양의 경계를 넘는 ‘역사가’를 꿈꾸다, 이제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의 ‘기억 활동가’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그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세습적 희생자 의식’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예컨대, “섭얼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스피박(Gayatri Spivak)의 질문을 “역사가는 들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되묻는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나 일본군 성노예 희생자들의 증언을 보면, 섭얼턴이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이 듣지 못한 것이어서, 제노사이드나 일본군 성노예 같은 트라우마를 겪은 증인들과 만나는 장은 문헌 증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증인들을 취조하는 역사의 취조실이 아니라, 사실과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아니 사실과 어긋나기 때문에 증인들이 드러내는 ‘깊은 기억’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진정성을 복원하는 ‘기억 활동가’(memory activist)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역사가들의 작업은 곧 과거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작업이며, 이 점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역사가’는 ‘기억 활동가’라는 것이다.

7. 그가 늘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인문사회과학의 독창성이라는 것은 개인의 학문적 수월성 여부를 떠나서 연구자 자신의 개인적 역사적 삶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천착하면서 그 경험을 추상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문제화할 수 있는 힘에 있다. 자신의 삶에 뿌리박은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학문적으로 형상화 할 수 있는 역량이 뒷받침될 때 나름의 독자적 이론이 가능하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역사학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디에 착목하여 자신의 사론을 펼쳐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다. ​분투에 분투를 거듭하며 자생적인 학문의 정립과 본격적인 인문학을 위한 그의 노력에 격려의 응원 아끼고 싶지 않다. 그는 내 가장 사랑하는 저자 중 한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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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조 2016-12-28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소나무 출판사 홍보 담당자 유현조입니다.

정성들여 작성해주신 리뷰를 보니,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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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