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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에 나와 있는 에셔의 알쏭달쏭한 그림처럼 이 소설은 매우 알쏭달쏭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에셔의 불가사의한 계단처럼 소설은 기묘하게 중첩된 구조를 갖고 있다.
소설은 베네치아 상선을 타고 여행하던 주인공이 오스만 투르크 해적에게 잡하면서 이스탄불로 건너가 '호자'의 노예가 되면서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모험담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이 섬기게 되는 호자가 그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함께 술탄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고, 자신의 악업을 나열한 글을 쓰고, 제국을 더욱 강력하게 해 줄 무기를 개발하면서 쌍둥이처럼 닮은 주인과 노예는 애증의 세월을 보내면서 내면까지도 더욱 닮아 가게 된다. 급기야 실패한 신무기가 투입된 전장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을 바꾸는데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아니 실제로 이 두사람이 존재하기는 했던 것인지, 그냥 자신의 쌍둥이에 대한 상상은 아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도 닮아 있다. 거기서도 쌍둥이 형제가 등장하지만 그 둘이 과연 실제의 쌍둥이였는지 아니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쌍둥이였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 자체가 이 소설의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의 호자는 '나는 왜 나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주 어릴 적에 나 역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나의 느낌은 다른 사람과 공유되지 않고 '나에게만' 속해 있는 것일까 - 이런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소설 속의 두 사람은-그들이 정말 둘이었다면-서로의 지식과 사상, 기억, 추억들을 공유하면서 점점 더 구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간다. 그렇다면 한 인간을 그이게 하는 것은 그의 행위와 기억들 뿐인가? 글쎄, 이건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파묵이 터키 작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터키의 정체성에 대한 소설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에 대부분의 영토를 갖고 있지만 터키는 언제나 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호자와 정체성이 혼돈되는 주인공이 이탈리아 인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