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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공동묘지 - 상 ㅣ 밀리언셀러 클럽 33
스티븐 킹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월
평점 :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을 읽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삶이 때때로 예기치 않게 준비하는 기막힌 우연의 일치이다. 아리에스가 꼼꼼한 관찰과 문헌 연구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준 죽음을 대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자세가, 이 책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는 작가인 스티븐 킹의 통찰력을 통하여 예리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W. W. 제이콥스의 '원숭이 발Monkey'sPaw'이라는 단편을 읽은 분들이라면 이 소설의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짧지만 놀라운 공포를 안겨주는 이 단편은 무덤에서 돌아온 아들이 실제로 그들 부부에게 나타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악마적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스티븐 킹은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을 구상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리에스가 말했듯이 현대인들에게 죽음은 말해져서는 안 될 어떤 것, 삶을 갑작스럽게 중단시키는 무시무시한 침입자, 낯설고 불결한 힘이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리 상태, 내세의 보장이 위안이 되지 않는 현대인의 심리 상태는 이 소설의 밑바탕이 된다. 킹의 다른 많은 소설들에서처럼 여기도 낯선 곳에 정착하려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언니의 때이른 죽음으로 인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아내 레이첼과 달리 주인공인 의사 루이스 크리드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실제가 되자 그 역시 그 고통과 상실감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크리드의 선택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고뇌를 그려내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힘이다.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어린 게이지와 크리드의 연날리기 장면은 다가올 비극의 전조이고 그 무시무시한 선택을 정당화시키는 장치이다. 과연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킹의 소설 치고는 공포의 강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