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의 인간
필립 아리에스 지음, 고선일 옮김 / 새물결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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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거의 목침 만큼이나 두껍다. 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중세 이래 현대까지, 죽음이 우리 인간에게 미친 영향과 그 결과물들을 고찰한다. 그만큼 꼼꼼하며, 관련 자료들도 충실히 검토되어 있다.

무덤, 매장 방식, 묘비명, 유언장 등의 자료들을 통해 저자는 죽음의 역사를 파헤친다. 필멸의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 죽음은 달갑지 않으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시대의 감수성은 이 피할 수 없는 손님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이런 죽음에 대한 다른 태도들은 당연히 그 시대 인간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리에스는 이런 미묘한 변화들을 분석하여 펼쳐 보임으로써 죽은과 우리 자신, 그리고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프랑스인이 쓴 이 책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와 성인 곁에 매장하고 육탈된 뼈들을 뒤섞어 아무런 개인적 표시도 없이 쌓아올리는 관습은 우리에게 너무도 낯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중세 이후 유럽의 기독교 사회, 그리고 근대 이후의 미국 사회에 대해서 분석한 글이다. 하지만 소위 서구화가 진행된 이후, 이들의 태도와 우리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아주 많이 닮아 있다. 말하자면, 예전 우리에게도 아주 길었던 애도 기간은 점점 짧아졌고,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된 것, 이것이 다만 산업사회의 시간 관념 때문만이 아니라, 죽음을 우리 삶으로부터 내몰고, 적어도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척이라도 하려는 태도라는 사실은 현재 우리의 상황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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