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작가의 <열정>을 상당히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집어든 책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열정>만한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 책의 주인공들이 내가 도저히 공감하기 어려운 정신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열정>과도 비슷하게 이 소설도 주인공의 일생에서 중요한 하루를 쫓는다. 언니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뺏기고 먼 친척 노파와 외롭게 살고 있는 에스터는 옛 애인의 방문을 받는다. 에스터의 회상과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저간의 사정들이 펼쳐 지면서 해묵은 감정들이 들춰지고, 결국 그녀의 번뻔스러운 애인은 마지막 남은 것까지 모두 가지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나는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이 허풍과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라요스라는 남자도, 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거절하지 못하는 에스터도 모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담담하고 시적인 문체, 세월을 뛰어 넘어 회오리치는 감정의 변화들을 표현한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면서도 결코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에는 서류에 서명하는 에스터로부터 서류를 뺏어 찢어버리고픈 심정이었다...

어쩌면 사랑과 이성은 공존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표지의 그림은 벨기에 화가인 페르낭 크노프가 그의 누이를 그린 그림인데 책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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