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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ㅣ 까치글방 132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서성철 옮김 / 까치 / 1997년 8월
평점 :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히스패닉 세계'와 비슷한 느낌이다. 단지, 존 엘리엇이란는 영국인 저자의 그 책은 객관적이고 다소 건조한 느낌이라면 멕시코인이 쓴 이 책은 보다 주관적이면서도 저자의 '뜨거움'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1492년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라는 제노바인이 에스파냐의 배를 이끌고 인도인 줄 착각하면서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부터 라틴 아메리카와 에스파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이 책에서 푸엔테스는 그러한 상호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거울'을 골랐다. 서로가 서로를 비춰 볼 때, 더욱 뚜렷해지는 것이 라틴 아메리카와 에스파냐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라는 몰개성적이고 무미건조한 제목보다는 원제인 '묻혀진 거울'을 쓰는 편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에스파냐를 비롯한 유럽과 아메리카의 인디오 양쪽을 선조로 가진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역사이다보니, 이 책은 에스파냐의 역사와 그들이 발견한 신세계의 역사를 함께 아우른다. 라틴 아메리카는 유럽의 문화와 토착 문화가 충돌하면서 융합되는 현장이었지만 침략과 착취, 억압의 기억은 어느 한 쪽을 부정하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융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난 것은 오직 문화의 측면일 뿐이고, 정치, 경제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푸엔테스는 아쉬워한다.
에스파냐 제국이 변화에 뒤처지면서 붕괴된 것처럼,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국들 또한 그들의 독립된 지위에 걸맞는 정치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하면서 독재와 내전에 시달렸고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현재까지도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근현대사에 나타난 군부의 부상과 독재 정권의 부침은, 우리에게도 낮선 이야기가 아니었다. 또한 에스파냐로부터 멀어지면서 급부상하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적 세력, 이웃이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존재인 미국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푸엔테스는 이야기한다.
이 책은 분명히 역사에 관한 책이지만 하나의 '시적인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그만큼 푸엔테스는 풍부한 비유와 은유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문화가 가진 여러 측면들을 드러낸다. 여러 시각 자료들도 이해를 돕는다.
책 첫머리에, 로마인들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에 관한 이야기에서 저자는 에스파냐인들이 전쟁에서 보이는 행동을 지방주의, 게릴라 전쟁, 개인주의라는 특징으로 요약한다. 즉 그들은 자신의 지방, 자신의 지도자를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우지만 상호간의 연합은 거부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나라로써 통일된 힘은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에스파냐 축구 대표팀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리그엔 좋은 팀들도 많고, 좋은 선수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에스파냐의 이름 아래서 출전한 대회에서는 언제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런 전통(?)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