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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0월
평점 :
도서관 가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요즘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다. 그래서 내 손에 잡힌 게 이책, 장미의 이름. 아마도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당시 동네 서점에서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샀던 게 기억난다.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으면서도 '추리 소설'이란 외양이 주는 흥미진진함에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이제 십여 년이 지나 다시 읽은 소설은 그때와는 또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다. 책도 너무 유명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내용은 많은 분들이 아실 것이니 생략하기로 한다. 겉모양은 추리소설이지만 범인 찾기 그 이상으로 이 책은 중세, 그 중에서도 중세의 정신세계에 관한 책이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청빈에 관한 논쟁과 그에 따른 이단의 문제, 그리고 역시 예수가 웃었는가 웃지 않았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웃음에 관한 논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갈등은 새로운 지식을 마다하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윌리엄 수도사와 광신적 신앙에 사로잡혀 새로운 지식을 두려워하는 호르헤 수도사,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그 시대의 정신의 충돌로부터 온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 나오는 호르헤 수사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로부터 왔을 것이라고는 전부터 생각해왔지만 책을 다시 읽어 보니 서문에서 책을 찾는 과정에서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등장하고 있었다. 더우기 이 미로의 장서관이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등장하는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또 한가지, 수사를 하는 윌리엄 수도사와 언제나 나중에 깨달으면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아드소는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를 연상시킨다. 윌리엄이 '배스커빌의 윌리엄'인 것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이것은 정말 추측일 뿐이지만 여기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수도원, 이탈리아 북부에 있다고만 언급된 이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저자가 염두에 둔 것은 그의 고향인 피에몬테의 알레산드리아가 아닐까 싶다. 이 도시는 그 이름이 같음으로 인해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고대에 존재했던, 사라진 거대한 도서관이 있던 곳-과 연결되기 때문이다.